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2권 19장 예언자
19장 개괄
19장은 희망이 사라진 차라투스트라가 꿈을 바탕으로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장이다.
처음 나오는 예언자의 이야기는 부조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갖는 기본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이 사회의 부조리를 근절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절망하고 그에 따라 염세적이게 되는데, 예언자는 이 상태를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가 느끼게 되는 부분은 일반인의 염세보다 더 나아간다.
차라투스트라는 절망하던 세계에서 노력하는 존재로, 처음에는 부조리에 따른 일반적인 염세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올바른 이해를 선사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이상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의지를 다잡게 되는데, 앞서 「차라투스트라, 2권 9~11장」에서 사람들의 노력하지 않음에 따라서 그 의지가 꺾인다.
이에 따라서 추가적인 절망을 느끼게 되는데, 이 순간부터 다시금 차라투스트라는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을 느낀다.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꿈의 내용인 것이다.
제자는 여기에 대해서 나름의 긍정적 해석을 해주지만, 제자의 해석은 차라투스트라가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다 절망하기 전의 상태에 따른 해석이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는 제자의 해석에 고개를 젓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금 차라투스트라는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18장에서 말하는 때와 같은 때로, 이 때는 현재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한 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곧 ‘홀로 될 때’를 말한다.
본문
한 예언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한 큰 절망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을 긍정하게 하기 위해서 앎을 선사하는 자들도 자신들의 일에 지쳐버린 것이죠.
*이 예언자는 4권 2장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러면서 다시금 하나의 깨달음이 나타났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고 덧없고 부질없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희망적인 곳이 없다.'
우리는 앎을 나누었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변화가 나타나길 바랐지만,
사람들에게서 전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이처럼 변화가 없었던 것일까요?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졌으며,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 나누었던 것들은
이상적인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하게 합니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이상 사회를 구현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부정당한 것이죠.
이제 우리의 열정은 메말라 타다 남은 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부정적인 전망 속에서 지쳐버린 것이죠.
열정의 샘은 말랐고, 파도처럼 밀려들던 의지도 사그라졌습니다.
세상은 변화를 느끼고 싶어하지만, 그러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아, 우리가 깊고 깊어질 수 있는 존재, 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 있을까요?
얄팍한/그릇된 인식을 넘어서서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 지쳤습니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예언자의 말에 공감하였고, 슬프고 지친 상태로 돌아다녔다.
예언자가 말한 사람처럼 절망 속에서 지친 것이다.
허무주의를 이야기하는 예언자
세상의 부조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무의미함/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삶에 대한 열의를 가진 사람도 이 허무주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죽게 된다면, 올바른 이해를 나눌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껏 아무리 찾아다녀도 제 동료가 될 자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으니 하는 이야깁니다.
아, 어떻게 해야 제가 죽은 이후에도 올바른 이해가 유지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올바른 이해의 명맥이 끊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명맥이 끊기지 않아야, 부조리한 시대에서도 올바른 이해가 이어져 나가, 이상 사회를 전망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근심하며 배회했다.
그렇게 그는 어떤 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고, 휴식도 취하지 않고 말없이 있었다.
그러다 결국 그는 잠들었다.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걱정하며 그가 깨어날 때까지 밤을 지새우며 기다렸다.
곧 잠에서 깨어난 차라투스트라가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목소리는 먼 곳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친구들이여.
제가 꾼 꿈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꿈이 아주 기묘한데,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꿈 속에서 저는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절망을 느끼며 염세적이게 되었습니다.
염세주의는 마치 최고의 사상인 것으로 보여졌고, 저는 그 사상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제겐 절망이 가득했고, 그로 인해서 제 영혼은 답답한 상태였습니다.
누가 과연 이 절망을 걷어낼 수 있었겠습니까?
절망 속에서 저는 <달>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빛을 내지만, 어둠을 걷어내지 못하는 절망 속의 존재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홀로 웅크리고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절망을 벗어나기 위해서, 저는 종교적 방법도 택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절망을 벗어나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렇게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저는 두려움 속에서 침묵하며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있던 중에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이상 사회에 대한 긍정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노력의 결과물로 제게 주어진 것은 또 다른 절망이었습니다.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다가 나타난 절망.
유일한 희망에서 비롯된 절망.
이 절망은 마치 이상적인 존재들이 실패한 저를 두고 비웃는 듯 여겨졌습니다.
이에 저는 공포에 질려 소리치다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 것이죠.”
공포에 질린 차라투스트라
이상 사회에 대한 노력마저 헛되이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차라투스트라는 침묵했다.
그는 아직 꿈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의 애제자 중 하나가 일어나 차라투스트라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제가 보기에 그 꿈은 당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상 사회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존재이니까요.
당신은 부조리에 대한 악의를 지녔으며, 천사 같은 모습을 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절망하는 자들에게 나아갑니다.
그들의 염세주의를 비웃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삶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염세주의자들, 절망하는 자들은 당신의 모습에 자신들의 무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것이 당신의 능력입니다.
당신이 죽은 이후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고 당신이 남겨준 것들을 잘 존속시킬 테니 말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이상 세계의 가능성과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삶에 대한 긍정을 할 수 있게 해주었죠.
이제는 절망하는 자들에게서 희망이 솟아날 것입니다.
절망을 날리는 희망 말입니다.
당신은 이 희망에 대한 보증인이자 예언자입니다.
어쩌면 꿈에서 당신은 당신의 적들에 대한 꿈을 꾼 것입니다.
부조리에 절망하고 있는 자들 말입니다.
당신이 꿈에서 깨어 돌아온 것처럼, 그들도 절망에서 깨어나 당신에게 올 것입니다.”
애제자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제자들도 차라투스트라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손을 잡고, 그가 자신들에게 돌아오게끔 설득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을 낯선 사람 보듯이 보며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제자들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의 눈이 변화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상황에 대해서 파악한 듯했고, 강한 목소리로 제자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이제 절망하던 모습에서 참회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만찬을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허무주의에 대해 말하던 예언자도 제 옆에서 먹고 마실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
니다.
저는 그가 허무주의를 벗어나서 열과 성을 다해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다시 갖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꿈을 해석한 애제자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자들을 바라보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을 낯설게 바라봄과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된다.
생각해볼 거리들
거대한 슬픔은 무엇을 말하나?
ㅡ이는 세상에 대한 절망, 부조리의 극복 불가능을 말한다.
ㅡ이렇게 보게 되는 이유는 이 슬픔으로 인하여 허무주의에 빠지기 때문이다.
ㅡ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어떤 노력의 무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인데, 이를 슬픔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가장 뛰어난 자들도 그들의 일에 지치나?
ㅡ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도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ㅡ여기서 언급되는 뛰어난 사람은 대중들에게 올바름을 선사하는 자가 아닐까 싶다.
만사가 다 공허하고 똑같고 끝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신념인가?
ㅡ이는 허무주의/염세주의를 말한다.
모든 언덕에서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는 것은 무얼 말할까?
ㅡ언덕은 장소를 말하는 듯하다.
ㅡ이에 따르면, 모든 장소에서 허무주의가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즉 “세상에 허무주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곳이 없다. 세상은 허무한 곳이다”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추수를 했는데 왜 열매는 썩어 갈색이 되나?
ㅡ여기서 말하는 추수는 세상의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ㅡ앞서 「차라투스트라, 2권 1장」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 후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산으로, 자신의 동굴 속 고독으로 돌아가 사람들로부터 벗어났다.
그는 마치 씨를 뿌려놓은 농부처럼 때를 기다리며 지냈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앎을 선사하고서 사람들이 성장하기를 기다렸고, 성장한 사람들을 수확하기를 바랐다.
ㅡ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성장하지 않고, 썩어 수확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ㅡ이는 결국 노력이 부질없음을 말한다.
ㅡ이에 따라서 “노고가 헛된 것이 된다”고 이야기가 된다.
사악한 달로부터 무엇이 내렸다고 묻는가?
ㅡ수확이 제대로 되지 않음에 따라서 무언가가 사람들에게서 작용하지 않았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ㅡ즉 사람들이 올바른 것을 알고도 노력하지 않은 이유를 사악한 달의 작용이라고 본 것이다.
ㅡ물론 그 이유가 명확히 언급되지는 않는다.
왜 우리의 포도주는 독이 되었나?
ㅡ사람들을 통해서 차라투스트라가 얻은 결과물은 실망스러운 결과물이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고, 그의 멘탈에 악영향을 준다.
ㅡ이러한 좌절과 절망은 차라투스트라에게 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ㅡ즉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앎을 선사함으로써, 좋은 포도주/좋은 결과물을 바랐는데, 돌아온 것은 자신의 멘탈을 취약하게 하는 것이 왔다는 것이다.
왜 사악한 눈길이 들판과 심장을 누렇게 태우나? 왜 바싹 말랐나? 왜 재가 흩날리고, 불덩이마저 지치나? 왜 모든 샘은 바닥을 드러내나?
ㅡ모두 사람들로부터 실망스러운 결과를 마주하면서, 열의를 잃게 된 것을 나타낸다.
왜 바다마저 뒤로 물러선다고 하나?
ㅡ이 역시도 열의의 소진을 나타내는 표현이긴 한데, 여기서는 의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감이 아니라 뒤로 물러섬을 나타낸다.
왜 모든 땅은 갈라지려 하는데 심연은 삼키려 하지 않나?
ㅡ이 부분은 “모든 땅이 갈라지려고 하지만, 이 모든 땅이 심연은 삼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ㅡ즉 모든 땅에 해당되는 존재가 겉만 갈라지고 깊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ㅡ따라서 모든 땅은 대중을 말하고, 그러므로 이 구절은 “대중은 뭔가 깨어있는 척 하기 위해서 부조리에 대해서 알려는 의지를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부조리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된다.
익사할 정도로 깊은 바다는 무엇인가?
ㅡ깊은 바다는 모든 부조리를 이겨낼 수 있는 사상을 말한다.
ㅡ그런데 여기서는 부조리의 근본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ㅡ따라서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사상이 있을 수 있는지 묻는 것과 같다.
ㅡ익사한다는 것은 죽는 것을 말하므로, 삶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ㅡ익사할 정도로 깊은 바다가 있냐는 질문은 즉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다면, 목숨을 바치고 싶은데, 과연 극복할 수 있는 사상이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같다.
깊은 바다에 대한 의문이 탄식이 얕은 늪들 너머로 울려 퍼진다는 것은 무얼 말하나?
ㅡ탄식이 얕은 늪들은 사고의 수준이 얕은 존재들을 말한다.
ㅡ즉 사고의 수준이 얕은 존재들은 “과연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사상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왜 우리는 너무 지쳐서 죽지 못하나?
ㅡ죽음에 선뜻 나서지 못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 이유는 죽음이 답을 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ㅡ여기서 말하는 무덤은 절망을 말한다.
ㅡ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살아도 산 것이 아니므로, 죽은 상태,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산다는 이야기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예언자의 말에 반응했나?
ㅡ차라투스트라도 「차라투스트라, 2권 9~11장」에서 같은 절망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ㅡ즉 차라투스트라도 허무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긴 황혼을 말하며, 빛을 지켜내야 한다고 걱정하는가?
ㅡ차라투스트라는 부조리에 맞서는 존재, 함께 사람들에게 올바른 이해를 나눌 존재를 찾았었다.
ㅡ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실망하면서 그러한 존재를 찾는 게 어렵다고 보게 되었다.
ㅡ이렇게 되면, 올바른 이해를 나누는 것은 자신이 죽은 이후 지속이 불가능하다.
ㅡ그런 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걱정하는 것이다.
ㅡ올바른 이해를 나누려는 자의 명맥이 끊기는 것이니 말이다.
ㅡ그래서 비탄 속에서 이 빛이 질식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곧 올바른 이해를 나누는 것이 끊어져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빛은 먼 세상과 가장 먼 밤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나?
ㅡ차라투스트라의 빛은 부조리에 맞서는 올바른 이해다.
ㅡ이 올바른 이해는 이상 사회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ㅡ그런데 문제는 이 이상 사회가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ㅡ그래서 이상 사회는 먼 곳으로 표현되며, 올바른 이해가 여전히 사회에서 조금 지지될 것이므로, 이상 사회가 올 때까지 세상은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을 것이다.
ㅡ그래서 올바른 이해는 가장 먼 부조리 사회까지 영향을 미치는 빛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삶을 거부하고, 죽음의 산성에서 무덤의 파수꾼이 되나?
ㅡ이 부분에서 묘사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과 같다.
ㅡ즉 부조리의 극복이 어렵다고 여기면서, 절망하고, 그에 따라서 염세적이게 된 것이다.
ㅡ무덤의 파수꾼이란 염세주의를 말한다.
ㅡ죽음의 산성은 절망이 가득한 곳을 말한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죽음의 관을 지키고 있었나?
ㅡ염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곰팡내나는 천장에는 죽음이 차지한 승리의 징표가 있나? 유리로 된 관 속에서 죽음이 이겨버린 삶이 나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이는 염세주의/허무주의가 이 세계의 최고의 사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먼지 자욱한 영원의 냄새를 맡았나? 왜 차라투스트라의 영혼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답답함에 누워있나?
ㅡ이는 이 부조리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나타낸다.
ㅡ즉 먼지 자욱하다는 것은 답답함/텁텁함을 말하는데, 현재 차라투스트라에게 텁텁함을 제공할 것은 부조리의 극복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누가 이런 곳에서 자신의 영혼에 바람을 통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나?
ㅡ현재 부조리의 극복이 불가능하므로, 답답한 상태인데, 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자가 누구냐는 이야기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한밤 중의 밝음이 감싸나?
ㅡ차라투스트라는 부조리를 겪으면서 올바른 이해를 쌓아가지만, 그것을 활용할 수 없다고 느끼기에 세상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ㅡ이를 한밤 중의 밝음인 달로 표현한다.
ㅡ만약에 차라투스트라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면 태양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가진 녹슨 열쇠는 무엇을 말하나? 왜 가장 삐걱거리는 문을 열 수 있나?
ㅡ차라투스트라가 가진 녹슨 열쇠는 문을 여는데 좋지 못한 열쇠이다.
ㅡ여기서 문이란 것은 절망이 가득한 곳을 나가는 문을 말한다.
ㅡ문제는 절망을 나가는 방법이라고 고안되는 것이 여러 가지란 건데, 하나는 종교적인 것이고, 하나는 절망을 나가지 않고 즐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ㅡ이중에서도 절망을 벗어나는 법으로 언급되는 게 종교적인 것, 즉 교리에 따라 살면서 내세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ㅡ하지만 이는 굉장히 기괴하고 무지한 판단이라고 차라투스트라는 본다.
ㅡ그런 점에서 좋은 방법이 아닌 나쁜 방법이 되고, 삐걱거린다고 표현된다.
ㅡ그런 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 문을 여니 불길하게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를 낸다고 말한다.
ㅡ즉 이 문을 통해서 나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ㅡ이에 따라 차라투스트라는 절망 속에서 벗어나지 않고 홀로 있게 된다.
ㅡ여기까지의 상황은 서문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산에 오르는 상황까지의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ㅡ즉 종교적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 세상에 절망하면서 사색의 길로 나아간 상황까지의 차라투스트라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란 게 존재했다면, 왜 차라투스트라에게서 지나가고 달아나버렸을 거라고 말하나?
ㅡ이 차라투스트라가 절망 속에서 지내던 시간은 무의미하고 덧없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렇기에 만약 시간이 어떤 사람이거나 존재였다면, 자신 곁에 있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다.
차라투스트라를 잠에서 깨우는 일이 일어났다는데, 이건 무엇을 말하나?
ㅡ이는 곧 절망을 이겨낼 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말한다.
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나고, 천장에서 세 번 메아리 나?
ㅡ이는 분명히 알 수 없다.
ㅡ하지만 뭔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는 있는데, 「유고 (1882년 7월~1883/84 겨울)」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13=ZI4. 1883년 여름
세 번의 천둥과 세 번의 섬광이 한밤중에 ‘아니다!’라고 부르짖지 않았던가?
13=N Ⅵ 4. 1883년 6월~7
10[10]
그러나 보라.
내 삶 자체가 이러한 꿈을 암시하고 있었다.
보라, 내 현재가 내 과거를 구제하고 그 안에 사로잡힌 의미를 구제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또 그런 일이 발생했다.
밤새도록 천둥이 나를 향해 세 번 울렸고 둥근 천장이 세 번 울부짖었다.
나는 ‘알파’라고 소리쳤다. 알파, 알파.
<누가> <그의> 재<를> 산으로 가져가는가?
어떠한 극복된 삶이, 야경꾼이자 묘지기인 나에게 오는가?
내가 너희를 꿈꾸었을 때, 나는 나의 가장 고된 꿈을 <꾸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
—너희의 무력함과 각성.
ㅡ확실히 어떤 의미를 지녀 보이긴 하지만, 알 수는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누가 자신의 재를 산으로 나르냐는 소리를 하나?
ㅡ이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재를 산으로 나름으로써 뭔가 세 번의 소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즉 「차라투스트라, 서문 2장」에서 언급된 시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차라투스트라는 절망을 이겨내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가 열쇠를 밀어 넣어 문을 열려고 한 것은 무얼 말하나? 왜 문은 열리지 않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이상 사회에 대한 긍정을 하게 되면서, 이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를 했고, 그것을 가르친다.
ㅡ이것은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좋지 못했고, 그것은 「차라투스트라, 2권 9~11장」에서 언급된다.
ㅡ이를 설명한 것으로, 차라투스트라가 이상 사회를 위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것을 나타낸다.
왜 사나운 바람이 문을 열고선 검은 관 하나를 내던지나? 왜 차라투스트라 앞에서 요란한 웃음을 토해내나? 왜 아이/천사/올빼미/바보/나비들이 비웃고 조소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이상 사회에 대한 구현이 가능하다는 인식에 놓였으나 실제로 이상 사회 구현을 하지 못했다.
ㅡ이로써 절망하여, 절망의 상징인 관이 등장한다; 절망하면 삶의 의미를 잃으므로, 죽은 상태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상 사회라는 희망에 의해 노력했다가 좌절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는데, 차라투스트라 입장에선 뭔가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이 자신을 우롱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ㅡ그런 점에서 이상 사회와 관련된 존재로 보여지는 아이/천사/나비들이 비웃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ㅡ물론 이상 사회가 구현되기 위한 조건이 사람들에게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차라투스트라로서는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으로 인하여 자신이 절망하게 된 것과 다름없긴 하다.
ㅡ어쨌든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 실패하면서, 차라투스트라는 깊은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제자는 왜 차라투스트라를 죽음의 성문을 연 바람으로 보았나?
ㅡ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한 번 절망을 극복했고, 그래서 노력하다가 다시금 절망을 맛보게 되었다.
ㅡ차라투스트라의 제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자들은 절망을 하는 상태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절망을 이겨낼 방법을 알려주었다.
ㅡ그러므로 차라투스트라는 절망을 극복한 존재로 인식된다.
ㅡ꿈에서 문을 연다는 것은 절망을 극복한다는 것이므로, 제자들이 보기에 꿈에서 문을 연 바람은 차라투스트라고 이해된다.
ㅡ하지만 이는 차라투스트라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에 따른 파악이라 할 수 있다.
ㅡ차라투스트라의 지금 상황은 새로운 절망에 맞닥뜨린 것인데, 이 제자는 기존 절망을 극복한 모습에 따라 꿈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다양한 악의와 찌푸린 얼굴로 가득 찬 관인가?
ㅡ차라투스트라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악의적이고, 찌푸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죽은 자들의 방에 들어가나?
ㅡ여기서 죽은 자들은 절망하는 자들을 말한다.
ㅡ그들로 나아가서 차라투스트라는 절망하지 않는 모습 희망을 가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를 웃음을 보인다고 표현한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밤의 파수꾼, 무덤의 파수꾼, 불길한 열쇠를 지닌 자들을 비웃나?
ㅡ파수꾼들은 모두 절망하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ㅡ이들은 절망 속에 있으면서 희망이 불가능한 것처럼 본다.
ㅡ따라서 희망으로부터 절망을 지키고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고, 파수꾼으로 불리게 된다.
ㅡ불길한 열쇠의 경우, 앞서 녹슨 열쇠를 말하며, 이는 곧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을 제시하는 존재들, 내세의 삶을 언급하는 존재를 말한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웃음소리는 저들을 놀라게 자빠뜨리나?
ㅡ파수꾼과 열쇠간수는 절망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놀라는 것이다.
기나긴 황혼과 죽음의 권태가 다가온다 해도 왜 제자들의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나?
ㅡ기나긴 황혼과 죽음의 권태는 차라투스트라의 죽음 이후를 말한다.
ㅡ즉 이 말은 차라투스트라가 죽은다 할지라도 제자들인 자신들이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잘 따르면서 가르침을 이어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ㅡ이는 앞서 자신의 빛을 앞날을 걱정하는 차라투스트라에게 걱정을 덜어주려고 하는 표현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별과 밤의 장관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무얼 말하나?
ㅡ이제까지 언급이 된 것처럼, 제자들에게 이상 사회의 가능성과 방향을 보여준 것을 표현한 것이다.
ㅡ이상 사회에 대한 것이 별이 되는 이유는, 아직 부조리한 사회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밤의 장관은 이상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관들로부터 솟아오른다는 것은 무얼 말하나?
ㅡ관은 절망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고, 아이의 웃음소리는 이상 사회에 대한 긍정이자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ㅡ즉 절망하는 자들에게서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이 솟아오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세찬 바람이 죽음의 권태에게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하나?
ㅡ죽음의 권태는 절망에 따른 허무주의를 말한다.
ㅡ세찬 바람의 경우,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ㅡ즉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이 절망에 따른 허무주의를 이겨낸다는 것이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가 바라는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이런 일에 대한 보증인이자 예언자인가?
ㅡ제자들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에 의해서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이상 사회를 증명한 보증인이자, 이상 사회를 예언한 자로 불리게 된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꿈은 차라투스트라의 적들에 대한 꿈인가?
ㅡ차라투스트라의 제자는 꿈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놀라게 한 것이 실제론 차라투스트라라고 말한다; 문을 열어젖힌 바람을 차라투스트라로 보고 있으니.
ㅡ그에 따라서 문을 열어젖힌 바람과 관을 보고 놀란 존재는 차라투스트라의 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제자들을 보면서 낯선 눈길을 했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실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제자들을 전과 같이 대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ㅡ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볼 때, 제자들과 반목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일이란 바로 현재 자신에게 찾아든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것을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제자들에게 만찬을 하자고 하나? 왜 고약한 꿈을 보상하려고 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차라투스트라, 3권」에서 언급이 된다.
ㅡ그러기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후의 만찬처럼 말이다.
ㅡ또한 고약한 꿈을 보상한다고 이야기가 나오는데, 보상을 나타내는 원어는 Buße다.
ㅡ이 단어는 보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참회/속죄”등을 나타낸다.
ㅡ즉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인데, 이는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반성과 고찰을 하여 더 나은 것을 찾겠다는 의지로 볼수 있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꿈 속에서 절망에 따라서 시달리게 된다.
ㅡ이에 따라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절망에 대해서 반성하고 고찰하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ㅡ그리고 그 절망에 대한 반성과 고찰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을 더 성장시키려고 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차라투스트라, 3권」에서 주요하게 나온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예언자도 곁에 두고 먹고 마시게 하나? 왜 이 예언자에게 그가 익사할 수 있는 바다를 보여주려고 하나?
ㅡ여기서 말하는 예언자는 제일 처음 나온 예언자로,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를 이야기하던 예언자를 말한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 예언자를 곁에 두면서 그에게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하려고 의지를 다 잡는다.
ㅡ이 예언자는 현재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 몸담고 있다.
ㅡ그런 점에서 자신의 삶을 불사를 수 있는 사상에 몸담고 있지 못하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런 존재에게 자신의 삶을 불사를 수 있는 사상을, 노력할 수 있는 사상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ㅡ즉 자신이 절망을 극복하면 이 예언자도 절망을 극복하게끔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꿈을 해몽한 제자를 바라보며 머리를 저엇나?
ㅡ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제자의 해석은 차라투스트라의 본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미 이상 사회에 대한 노력을 했고, 그에 따른 절망을 가지고 있지만, 제자는 차라투스트라의 이 심리 상태를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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