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2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2권 18장 의역 (완) (큰 사건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6. 14. 19:49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2권 18장 큰 사건들


 
18장 개괄

 

 

18장은 불만 표출에 대해서 논하는 장이다.

불개로 언급되는 불만 표출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불만 표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불만 표출로 구분이 된다.

이에 따라서 초반부의 불개는 스트레스를 위한 불만 표출, 후반부의 불개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불만 표출이라 할 수 있다.

불만 표출은 성숙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기도 하다.

왜냐면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이 있어야 더 나은 질서로 나아갈 의지를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의지만 가질 뿐, 실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공허하고 무의미한 불만 표출이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장려되지 않으므로, 정당한 이유를 갖춰야 한다.

즉 사회적으로 허용될 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불만은 이기적인 이유에서 생겨났어도, 그것이 마치 엄청난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처럼 속이는 일도 생긴다.

 

니체는 이러한 것을 불개로서 표현하여 비판하는 것이다.

 


 

본문

 

 

이상적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나아갈 때, 오롯이 이성적인 모습을 견지하여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불만을 표출하는 감정의 폭발이 있고, 그에 따라서 이상적인 존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대중들은 이러한 불만의 표출을 나쁘게 여긴다.

그래서 불만을 표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장려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좋지 않게 평가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자신만의 사색을 즐기고 있던 중에, 사람들과 대화하게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던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의 그릇됨에 불만을 느껴 토로하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그들을 이끌던 한 늙은 사람은 차라투스트라가 불만을 쉽게 표출하는 감정적인 인물이라며 비난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후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친구들 역시 그가 어디로 나아갔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토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은 그럴 리가 없고, 오히려 만약에 차라투스트라가 일전의 일로 감정적이게 되었다면, 자신의 감정을 삭히러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차라투스트라가 돌아오기를 바랐고, 차라투스트라는 자신도 모르게 "지금이 적기*다"라고 느끼며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불만의 표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언급되는 적기는 사람들을 떠나야 할 적절한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 시기를 이때 느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흐름상으로 보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전혀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고 여겨서인 것 같지만, 그렇게 볼 사건이 「차라투스트라」 2권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는 3권 2장에서 다시 언급된다.

 

화산섬

행복의 섬에 근처에 있는 폭발하는 화산섬.

이상적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규율에 대한 불만이 있어야 하기에,

불만 표출에 대한 비유로서 화산섬이 언급되는 듯하다.


 

    “이 사회는 두가지의 큰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부조리한 사람들입니다.

     이들로 인해서 사회는 병들어 있죠.

 

     다른 하나는 부조리로 인해 감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부조리하지 않지만, 부조리로 인해 감정적이게 되면서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없게 여러 말들을 늘어 놓았죠.

 

     이들이 궁금해진 저는 감정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파헤쳤고, 이제 감정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표출하고 전복하는 감정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감정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변한 것일까요?

    이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부조리를 행하면서 또는 겪으면서 꽤나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감정의 분출이 자기 표현의 일종이긴 하지만, 온전한 자기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진정한 자신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겪으면서 나타난 스트레스를 표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표출하는 것들을 잘 살피면, 우리를 기만하며 천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정적인 사람들은 감정 표출을 하면서 자신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감정 표출이 정당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이들은 별 것 아닌 것을 엄청난 것으로 만드는 허풍을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허풍은 강력해서, 둔감한 자들이라면 공감하게 할 정도죠.

 

     감정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같이 끓어올라줄 수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신들의 허풍에 둔감한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잘 받아주는 사람, 남이 뭐라하든 별 생각이 없는 사람, 억압된 경험이 많아 잘 순응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입니다.

     이들은 모두 나답지 못하게 지낸 자들인데, 자유를 원하죠.

 

이들은 분명 자유를 원합니다.

그렇게 이들이 자유를 외치자, 자유는 온갖 이질적인 것들로 변하더니 그들의 소란 속에서 덧없는 것이 되어버리더군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감정적인 자들이여,  

제 이야기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깨달음의 순간은 그렇게 요란하게 한다고 해서 오지 않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사색할 때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세상 역시 소란스러운 자들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새로운 가치와 앎을 창조하는 자들을 따라 나아갑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정을 표출하며 소란을 피우더라도, 실제 달라지는 건 많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감정 표출한 것만 보면, 뭔가 세상은 달라져야 했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고 있죠.

그렇게 감정 표출을 하여 난리법석을 부리는 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입니까?

 

감정 표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행동은 세상을 바꾸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되려 여러분의 감정 표출을 겪으면서 더 숭고한 것으로, 더 위대한 것으로 여겨질 뿐일 겁니다.

 

     이에 따라 왕과 교회와 그릇된 덕을 말하는 자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사람들의 불만에 저항하지 말고 그냥 따라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올테니까요.”

 

불개

불개는 이기적인 목적에 따라 불만을 표출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그러자 불만을 토로하는 자가 말했다.

    “교회라고? 그게 무엇이지? 왜 여기서 언급되는 것이지?”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국가가 시민들에게 그릇된 규율을 강요하듯이, 교회도 그릇된 것을 옳다고 말하는 사회적 장치 중 하나입니다.

 

     국가든 교회든 불만을 토로하는 당신이든, 모두 위선적이라는 비슷한 특징을 보이지 않습니까?

     어떤 것에 대해서 올바른 통찰을 하지 못하면서/그릇된 것을 주장하면서 사람들에게 고상해 보이려고 하니 말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국가와 교회 모두 사람들에게 특별하고도 중요한 존재로 자리하여,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스운 것은 이런 국가와 교회의 노력에 부응하듯, 사람들은 국가와 교회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믿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불만을 잘 토로하는 자가 격앙된 상태로 씩씩대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국가와 교회가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거기에 낚여서 국가와 교회를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고?

      나 역시도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어서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이냐!”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격앙됨에 따라 그가 쓰러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조용해졌고, 차라투스트라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화난 것을 보니 제가 정곡을 찔렀나 보군요.

     제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올바르게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테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앞서선 그저 감정을 표출하려는 경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모든 감정 표출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는 정말 자신을 위해서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불만 토로는 개인을 행복으로 나아가게 하며, 성숙함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들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이야기하려 하기에,

     온갖 미사어구를 사용하지도 않고, 애매하게 말하며 사람들을 선동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불만을 표출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만 감정을 표출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불만 표출은 유익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행복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들의 불만 표출이 유익하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 행복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신경질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자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다른 불개

차라투스트라에 의하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는 두 가지로,

개인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고,

올바름을 위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다.

이 중 후자는 이상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은 차라투스트라의 감정 표현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과 논쟁할 때 감정을 토로했던 것에 대해서 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의 반응을 보고, 당황하며 어떻게 이들을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격앙된 감정 표현은 자제해야겠다고 느꼈다.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 자신을 두고 온갖 상상을 해대는데, 잘못하면 자신의 명성에 괴팍하다는 오명이 씌어져 사람들에게 반감을 살 수도 있겠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차라투스트라는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이 적기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제자들

차라투스트라는 불만 표출의 정당성을 언급하지만 이들은 관심이 없다.


생각해볼 거리들

 

지복/행복의 섬 근처에 있는 화산섬은 무엇인가?

ㅡ여기서 말하는 화산섬은 감정적 폭발/불만의 표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ㅡ즉 행복으로 나아가는 중에 불만의 표출이 선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개인이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선 부조리하고 그릇된 것에 대한 불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왜 대중 중에서도 늙은 여자가 말하나? 왜 화산섬은 하계로 향하는 곳인가?

ㅡ늙은 여자는 차라투스트라에서 지혜/진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그런데 대중 중에 존재하는 늙은 여자이므로, 대중적 진리/지혜라고 보아야 적절해 보인다.

ㅡ즉 사회적 진리/지혜라는 것이다.

 

ㅡ앞서 화산섬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ㅡ그리고 화산섬에 대해서 설명하는 늙은 여자는 대중적 진리/사회적 진리를 나타낸다고 했다.

ㅡ이에 따라 치환해 보면, ‘사회적 진리 관점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하계로 향하는 것이다’라고 볼 수 있게 된다.

ㅡ하계를 지옥이라고 본다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지옥으로 향하는 것이란 이야긴데, 이는 사회의 규범이나 가치관 상 맞다고 볼 수 있다.

ㅡ그런 면에서 불만 토로에 대한 대중적 입장을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화산섬에 배가 내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왜 그들은 토끼를 사냥하나?

ㅡ화산섬은 감정의 폭발/불만의 표출이다.

ㅡ화산섬에 배가 내렸다는 것은 뭔가가 불만을 야기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ㅡ배에서 내린 존재들은 섬에 사는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데, 이는 곧 대화 상황으로 보면, 예민한 것을 건드리거나 불만을 갖게끔 부조리/그릇됨을 행했다고 볼 수 있다.

ㅡ즉 토끼 사냥은 언쟁/논쟁/부조리한 상황을 야기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공중에서 “때가 되었다”라는 말을 하였나?

ㅡ「차라투스트라, 3권 3장」을 보면, 이 <때>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나온다.

ㅡ여기서 보면, <사람들을 떠나야 할 시간>을 말한다.

          그런 자를 위해 그리고 그와 같은 자를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완성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행복을 거부하고 나 자신을 온갖 불행에 내맡기려 한다.

          나 자신의 마지막 시험과 깨우침을 위해.

 

          그리고 그 때는 진정 내가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방랑자의 그림자와 가장 길었던 머무름의 시간과 가장 고요한 시간, 그 모든 것이

          내게 "지금이 바로 적기다"라고 말해 주었다.

               (중략)

          이렇듯 모든 것이 징표로서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때가 되었다!"라고.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끝내 내 심연이 요동을 치고 내 사유가 나를 물어뜯을 때까지.

ㅡ이는 결국 「차라투스트라, 2권 9~11장」에서 나오는 절망감에 시달리던 차라투스트라에게 불만이 고조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ㅡ이에 따라 보게 되면, "차라투스트라는 다른 존재들과의 마찰로 인하여, 이제는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떠나야 겠다고 무의식 중에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잠시 사람들을 떠났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듯도 하다.

 

ㅡ하지만 흐름 상으로는 이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가 충분하지는 않다.

 

ㅡ또한 조금 애매한 것은 사람들을 떠나서 왜 불개와 마주했냐는 것이다.

ㅡ날아가던 차라투스트라가 불개를 마주했다는 것은 "불개를 만나기 위해서 나아갔다, 불개를 탐구할 의지를 가지고 나아갔다, 불개를 두고 생각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ㅡ그런 점에서 진행이 매끄러운 부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선원들은 왜 차라투스트라임을 보고 놀랐나?

ㅡ차라투스트라가 불만을 표출한 것을 보고 놀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ㅡ차라투스트라를 좋아하던 이들로 묘사하기 때문에, 그들은 차라투스트라의 불만 표출이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ㅡ그래서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하는 현상이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늙은 키잡이는 왜 차라투스트라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나?

ㅡ키잡이는 선원들을 리드하는 존재다.

ㅡ선원들을 일반 대중으로 본다면, 키잡이는 대중을 이끄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ㅡ대중을 이끄는 존재에게는 차라투스트라가 부정적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차라투스트라의 불만의 대상은 이 키잡이였을 수 있다.

ㅡ그런 면에서 이 키잡이는 차라투스트라의 불만 표출을 보고서 싸잡아 비난하려고 했을 것인데, 그 표현이 “차라투스트라가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표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나?

ㅡ차라투스트라가 불만을 표출하고 나서 사람들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ㅡ그 과정에서 자신의 불만 표출에 대한 생각을 하였고, 그래서 불개(불만표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보인다.

 

대지는 무엇이고, 왜 인간과 불개가 질병이 되나?

ㅡ대지는 현생/세상을 말한다.

ㅡ그런 면에서 인간과 불개가 세상을 병에 걸리게 한다는 문장으로 볼 수 있다.

 

ㅡ인간과 불개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구분한걸까?

ㅡ후술되는 불개의 특징을 보면, 전복하고 선동하는 위선적인 존재로, 이런 존재는 분명 사회악적 요소다.

ㅡ그런데 이런 존재가 홀로 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ㅡ이런 위선적 존재에 동조하는 자들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ㅡ그런 면에서 ‘인간’이라 표현된 병적 존재는 부조리에 순응하고 따르는 존재로 보여진다.

ㅡ세상을 절망케 하는 것은 부조리와 그릇됨인데, 이를 선동하고 이에 따르는 자들의 결합으로 인해서 우리가 세상에 절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ㅡ그런 면에서 인간과 불개가 언급된 듯하다.

 

왜 불개에 대해 사람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게 두기도 하나?

ㅡ불개는 불만 표출을 말한다.

ㅡ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을 표출할 때, 그것이 정당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ㅡ그런 면에서 자신의 불만 표출의 동기를 본래 불만의 이유와 다르게 표현하게 된다.

ㅡ그렇게 사람들은 자기 불만의 이유를 속이고, 또 그렇게 속인다는 걸 알아도 놔둔다.

 

왜 불개는 전복과 분출의 악마인가?

ㅡ전복과 분출이 사회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자 불만의 표출로 볼 수 있다.

ㅡ그런 면에서 불개는 불만의 표출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왜 늙은 여자는 이 악마를 두려워하나?

ㅡ여기서 언급되는 늙은 여자를 단순히 기존 사회의 진리/지혜라고 한다면, 불개는 기존 질서에 불만을 토로할 수 있으므로, 기존 사회의 진리/지혜의 입장에서는 불만을 토로하는 자가 두려운 존재가 된다.

 

불개는 왜 바닷물을 마시는가?

ㅡ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구절을 보는 편이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유고 (1882년 7월~1883/84 겨울)」

          5[11]

          바다에서 갈증으로 죽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지혜가 좋은 물과 같은 맛이 나지 않도록 너희는 그 지혜에 소금을

          뿌려야 할 것인가?

ㅡ이 구절을 보면, 지혜는 마시기 좋은 물을 말한다.

ㅡ바다는 그런 면에서 보면 마시기 좋은 물이 아니다; 오히려 갈증나게 하니까.

ㅡ따라서 지혜롭지 않은 것, 그릇된 것을 바다물이라고 할 수 있다.

 

ㅡ이에 따라서 불개가 바다물을 마신다는 것은 곧 그릇된 앎을 잔뜩 지닌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ㅡ그런 면에서 소금에 절여졌다는 것도 그릇된 이해로 절여졌다고 볼 수 있다.

ㅡ또한 표면을 섭취한다는 것도 피상적인 이해를 가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여러모로 그릇된 이해를 가진 것이 불개인 것이다.

ㅡ따라서 지금 언급되는 불개는 그릇된 불만 표출로 해석할 수 있고, 이는 곧 이기적인 불만 표출로 해석해봄직 하다.

 

왜 불개는 대지의 복화술사인가?

ㅡ복화술사는 본인의 입은 가만히 있으면서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공연을 하는 자다.

ㅡ즉 인형은 실제로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ㅡ불개는 대지를 두고서 복화술을 펼치는 존재인데, 이는 곧 대지는 실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데, 불개가 대지인 것처럼 말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ㅡ그런데 대지는 세상/현생/본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ㅡ그런 면에서 불개는 세상/현생/본성이 말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ㅡ이는 다르게 보면, 불만을 토로하는 자가 세상/현생/본성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실제론 세상/현생/본성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불개는 소금에 절여지고 기만적이며 천박한가?

ㅡ이는 소금물을 통해서 접근하면 된다.

ㅡ즉 그릇된 이해를 갖춘 채로 기만하고 천박하다는 것이다.

ㅡ역시 이 불개는 이기적인 불만 표출로 볼 수 있다.

 

불개가 울부짖을 줄 알고, 재를 뿌려 어둡게 할 줄 안다는 것은 무얼 말하나? 왜 불개는 허풍쟁이들이고, 진흙을 끓어오르게 하는 기술을 배웠다고 하는가?

ㅡ우선 불개적 존재가 진흙을 끓어오르게 하는 기술을 갖췄다는 것은 타인에게 어떤 감정적 작용을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ㅡ이에 따라서 보면, 울부짖는다는 것은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수사적 기법으로 보인다.

ㅡ또한 불개적 존재가 허풍쟁이라는 면에서 볼 때, 재를 뿌려 어둡게 한다는 것은 무언가 본질을 가리는 듯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ㅡ이는 수사적 기법에 따라서 모호하게 표현하며 대단한 척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걸로 보인다.

ㅡ다르게 보면, 이는 곧 선동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이야기다.

 

왜 불개의 근처에는 진흙이 있나? 해면질, 속이 빈 것, 쑤셔 넣어진 것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불개가 선동하는 자라면, 자신의 선동에 따르는 자들이 주변에 있기를 바라게 된다.

ㅡ선동을 당하는 사람의 특징을 살피면, 사색이 부족하여 정신이 빈곤하고, 그 빈틈을 사회적 규율에 따름으로서 채우는 존재일 것이다.

ㅡ즉 사회에 순응한 존재들인 셈이다.

 

ㅡ사회에 순응한 존재들은 사회적 규율에 의해서 억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유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인 사회인들 중에 자유를 원치 않는 이들은 없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요란한 외침과 연기에서 큰 사건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나? 큰 사건들은 대체 무엇인가?

ㅡ이는 우리의 현실을 보아도 이해하기 편한데, 실제로 자유롭고 싶다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 자유를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

ㅡ그런 면에서 요란하게 자유를 외치지만, 실제 노력하는 이가 없으니, 차라투스트라가 실망해 버린 것이다.

ㅡ그런 면에서 큰 사건은 실제 자유를 얻거나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가장 큰 사건은 요란한 시간이 아니라 고요한 시간에 있나?

ㅡ요란한 시간은 불만을 토로하는 시간을 말하는데,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도 실제로 자유를 쟁취하려는 사건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ㅡ오히려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서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는 곧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바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특징을 서술한 것이다.

 

왜 세상은 소음을 고안하는 자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는 자를 중심으로 돈다고 하나?

ㅡ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통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설파함으로써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소음과 연기가 사라지면, 별 일이 없나?

ㅡ불만을 토로하고 그래도 별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도시 하나가 미라가 되고, 입상들이 파묻히는 게 왜 소용없다고 말하나?

ㅡ불만을 토로하는 자는 불만의 대상을 무너뜨리려고 하게 된다.

ㅡ이것이 규율이라면, 그 규율을 불합리한 것으로 만들거나 더 이상 자신을 억압하지 못하게 만드려고 한다.

ㅡ이 규율을 도시라고 본다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과 같으며, 입상이라고 한다면 입상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ㅡ그러나 불만을 토로하는 자가 단순히 그 불만의 대상을 파괴하려고만 한다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ㅡ그렇게 해도, 결국 잊혀져서 다시금 문제가 이어지기 떄문이다.

 

ㅡ따라서 문제가 있는 것을 무너뜨리고 올바른 것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한데,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는 자는 불만 표출만이 목적이기에 이런 작입이 뒤따라오지 않아, 별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ㅡ즉 부조리나 문제가 있는 규율을 개선할 수 없는 것이다.

 

ㅡ그런 면에서 “경멸의 진흙탕 속에 입상이 쓰러져 있어도, 그 경멸 속에서 다시 입상이 자라난다”라고 이야기가 나온다.

ㅡ즉 무너뜨려도 무너지지 않은 셈이다.

 

입상은 왜 더 성스럽고 고통에 차있는 매혹적인 모습이 되나?

ㅡ사람들의 불만을 접하면서, 불만스러운 점을 보완하여 나아가기 때문이다.

ㅡ여기서 입상은 사회적 규율을 말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침으로써 더 수용 가능한 그릇된 규율이 된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왕과 교회, 노쇠하고 덕이 박약한 것들에게 전복당하라고 충고를 하나?

ㅡ이들은 모두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것들로 보인다.

ㅡ이 지배적 존재들은 피지배층들의 불만을 겪게 될 텐데, 차라투스트라는 이 불만을 다루는 방법을 조언하는 것이다.

ㅡ즉 사람들의 불만에 순응하면, 문제없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불개는 왜 교회에 대해서 묻나?

ㅡ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불개는 사회적 규율에는 반감을 갖지만, 종교적 규율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렇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종교나 국가나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왜 불개와 국가와 종교는 같은 족속인가?

ㅡ이에 대해서는 후술되는데, 국가나 종교나 불개는 연기를 뿜으면서 울부짖으며 연설하기 때문이다.

ㅡ연기를 뿜는다는 것은 말을 모호하게 한다는 것이고, 울부짖는다는 것은 감성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ㅡ즉 국가도 종교도 불만을 토로하는 자도 모두 정확한 이해 없이 감성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여 자신들을 정당화한다는 점이 유사하다는 이야기다.

 

ㅡ국가나 종교,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중요하고 대단한 것으로 인식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불개는 왜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질투에 휩싸여 길길이 날뛰었나?

ㅡ불만을 토로하는 자의 탐욕스러움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다른 불개는 무엇을 말하나?

ㅡ마찬가지로 불만을 토로하는 자인데, 이들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오색찬란한 구름’, 즉 이상적이고 보기 좋은 것을 위해서 불만을 토로한다.

ㅡ이들이 바라는 것은 대지가 바라는 것인데, 대지는 본성/세상/삶을 말하고, 이것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자 이상적인 사회이므로, 이상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불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불개는 왜 꾸르륵거림과 침뱉기와 내장의 격통을 혐오한다고 하나?

ㅡ앞서 나온 불개는 꾸르륵거리고 침뱉고 내장의 격통을 갖는데, 지금의 불개는 다르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ㅡ이 불개가 보이는 모습은 모두 스트레스에 따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ㅡ즉 스트레스에 따라서 보이는 불만 표출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은 왜 선원, 토끼, 공중으로 날아간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나?

ㅡ이들은 불만 표출에 대한 탐구보다는 지금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 차라투스트라와 사람들의 언쟁, 차라투스트라의 불만 표출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ㅡ불만 표출에 대한 견해는 사실 중요치도 흥미롭지도 않은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그림자를 잡아 두어야 한다고 했나? 왜 그림자가 차라투스트라의 명성을 손상시키나?

ㅡ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는 차라투스트라가 화산으로 나아가면서 생긴 그림자다.

ㅡ즉 차라투스트라 자신이 아니고, 차라투스트라의 날아감에 따른 파생물인 것이다.

ㅡ차라투스트라가 화산으로 날아가는 것은 불만 표출이므로, 그에 따른 파생물은 불만 표출에 따라 나타난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ㅡ즉 차라투스트라가 불만을 표출한 것을 놓고서 사람들이 가지각색으로 해석하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인 것이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의 불만 표출이 올바르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에,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이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ㅡ정당한 불만 표출인데, 감정적인 존재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내키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