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2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2권 15장 의역 (완) (순수한 인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6. 11. 17:40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2권 15장 순수한 인식


 
15장 개괄

 

 

 

15장은 달과 같은 존재, 이상사회를 바라지만 노력하지 않는 존재들을 분석하고 그들에게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장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2권 9~11장」을 통해서 좌절하였고, 그에 따라서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할 열의가 한층 꺾이게 된다.

물론 차라투스트라는 이 상태에서 여전히 의지를 다잡는 상태로 나아가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의 존재들은 「차라투스트라, 서문 2장」의 늙은 성자처럼 세상을 등지고 탐구하고 사색하며 살아가게 된다.

15장의 달/고양이로 지칭되는 존재는 늙은 성자와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15장은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좌절한 자들에게 의지를 다잡으라고 지적하고 설득하는 장인 것이다.

 


 

 

본문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 사람들은 이상 사회를 추구하며, 이상 사회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앎을 나누려고 하죠.

저는 이러한 자를 저는 <태양>과도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올바른 이해를 나눠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려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종종 이상 사회를 긍정하고 올바른 이해를 갖추긴 했지만, 이상 사회를 위해서 앎을 나누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이상 사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자들을 <달>과 같은 자라고 부릅니다.

스스로는 밝게 빛나지만,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지는 않으니까요.

 

어제 저는 <달>과 같은 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많은 것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저는 그가 자신이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려는 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러한 모습이 성숙한 자의 모습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성숙한 존재로 거듭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성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는 했지만, 성숙한 존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상 사회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지만,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더라도 홀로 조용히 바라보다가 숨어버리는 것이죠.

 

이들이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노력해봤는데, 성과도 보람도 없으니 부질없다는 것을 느껴버린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걸 포기해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사람들의 삶이 고통 속에 있기를 바라고, 그들이 잘 지내는 것을 보게 되면, 눈꼴 시려 합니다.

 

저는 <달>과 같은 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부조리를 보고도 조용히 넘어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의 삶은 사색에만 전념할 수 있고, 그래서 평온하고 경건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 올바른 사람이라면 부조리를 보고서 넘어갈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달>과 같은 자들은 정직하지 않은,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런 자들을 자신만 빛나는 <달>과 같다고, 조용히 걸어다니는 고양이 같다고 말합니다.

 

 

빛을 선사하던 태양이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되면, 열의를 잃고 달이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들도 분명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올바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릇된 것을 보고도 넘어가는 나쁜 양심을 지닌 것이죠.

이들이 올바름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라고 말했었죠.

 

그래서 이들은 이상 사회를 바라면서도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고, 혼자 사색하며 즐기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욕망도 갖지 않는 것,

     어떤 의지도 갖지 않은 채로 순간순간의 사색함의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관망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것이 내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이다.

 

     사색과 탐구의 즐거움, 이 순수한 즐거움 외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며,

     나는 만물의 이치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해 나가는 것만을 원한다.”

 

오,  <달>과 같은 자들이여,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자들이여.

여러분의 욕망은 순수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지적하는 것도 바로 그릇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올바름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그릇된 가치관들은 없애고 부조리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니까요.

 

진정 순수한 욕망은 그저 탐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탐구를 하고 그 탐구의 내용을 실현하려고 할 때, 이때 탐구자의 욕망이 가장 순수합니다.

그래서 올바른 게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올바름을 위해 행동하는 자가 제게 있어 가장 순수한 욕망을 가진 자입니다.

여러분은 순수한 욕망이 좌절되면서 변질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아름다움 역시 올바름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

즉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존재,

올바른 게 무엇인지 알아보고 아이디어로서 가지고만 있지 않고 실제로 노력하는 존재,

이 존재 안에 자리하는 것입니다.

 

이상 사회를 사랑하는 것과 그래서 앎을 나누는 것.

이것은 늘 짝을 이룹니다.

이상 사회가 구현되길 바라고 유지되길 바라면,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상 사회를 바라는 자들은 자신들의 과업을 수행하며 죽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달>과 같은 자들, 이상 사회를 바라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를 겁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들의 비겁한 모습들을 “고요를 추구하는 모습”,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부르려고 합니다.

어째서 여러분은 고귀한 명칭을 여러분의 비겁한 모습에 부여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고요한 곳에 서 있는사람

사람에게 실망한 자들은 사람들을 떠나 조용히 지내고 싶어한다.


 

여러분은 분명 성숙한 존재로 거듭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올바른 이해를 갖춘다고 할 지라도 말입니다.

성숙한 존재는 올바른 이해를 갖추는 것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요.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설명할 때, 분명 긍정적으로 인식될 고상한 말들을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올바름을 나누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반면 저는 고상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기피하고 사회적으로 꺼리는 주제라고 해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저는 이런 주제들을 속에 숨겨졌던 진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여러분과 같은 위선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겠죠.

 

여러분의 대화는 늘 기분 좋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대화 속에는 여러분들의 이기성과 진실되지 못함이 있으니까요.

 

이상 사회를 바라지만,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자들이여.

용기를 내서 본인의 내면에 따라 행동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면을 따르지 않는 자는 자신을 몰이해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언제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람들에게 실망하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 가면은 여러분에게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들의 운명이라고 여길 테지만 말입니다.

 

저도 전에는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제 삶이 추구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여겼던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이상적인 모습도 아니었고, 성숙한 모습도 아닌 것입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 모습,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않는 자의 모습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면을 쓴 사람

차라투스트라는 가면을 쓰면서 안분지족하며 지내는 모습을 비판한다.


 

<달>과 같은 자들이여,

여러분들도 부디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이상 사회를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노력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이것이 세상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자신이 바라는 것에 순수히 행동하는 것, 그래서 부조리한 세상에서 올바른 것을 고안해내는 것.

이것이 태양과 같은 자의 사랑입니다.

 

태양과 같은 자들이 분투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사랑에서 열정과 고양됨을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태양과 같은 자들은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에 따라 이 사람들도 역시 이상 사회를 위한 열망이 솟구쳐 오르죠.

 

이상을 바라는 사람들 역시 어서 빨리 성장하기를 바라게 되고,

그 의지에 따라 점차 성장하여 태양과 같은 자가 됩니다.

 

진정 저는 태양이 만물을 비추는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 삶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성장하려는 자들에게 앎을 전하여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세상이 내게 준 나의 과업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 위의 태양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이 태양적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고,

사람들이 그렇게 되도록 이끄는 것이 자신의 삶의 과업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볼 거리들

 

달은 무엇을 말하는가?

ㅡ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달은 태양과 대비되는 존재를 말한다.

ㅡ태양은 어둠 속에서 빛을 선사하며 어둠을 걷어낸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를 통해서 올바른 이해를 나누는 존재로 이해된다.

ㅡ반면 달의 경우, 어둠 속에서 빛을 선사하지만, 어둠을 걷어내려고 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ㅡ그러므로 태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라 할 수 있다.

 

ㅡ태양이 걷어내는 어둠은 사회의 부조리, 그릇된 이해라고 한다면, 태양은 사회의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를 걷어내는 존재이다.

ㅡ반면 달은 전혀 어둠을 걷어내지 않으므로, 달은 사회의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를 방치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ㅡ달이 어둠을 걷어내지 않는 이유는 걷어내는 것이 무의미하거나 보람이 없다고 느껴서 그럴 수 있다.

ㅡ이런 점에 따라서, 달은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의지가 꺾인 존재로 보는 게 적절해 보인다.

 

달은 왜 아이를 밴 듯 불룩한 배를 가지고 있나?

ㅡ달은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할 의지가 꺾인 존재다.

ㅡ그런 면에서, 달은 그 자체로 올바른 이해를 갖고는 있지만, 그것을 설파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ㅡ따라서 내적 성장이 이뤄진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볼 수 있다.

 

ㅡ어쨌든 성장은 한 상태의 존재이며, 이를 배가 불룩하다고 표현했다.

ㅡ즉 올바른 이해를 갖춰서 성숙한 존재가 되거나, 후대의 성숙한 존재를 양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ㅡ이를 임신했다/잉태했다고 표현하고, 이상 사회/위버멘쉬를 출산할 수 있는 존재로 이해하게 된다.

 

달은 왜 임신한 것처럼 차라투스트라를 속였나?

ㅡ달은 이상 사회나 위버멘쉬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 없다.

ㅡ이상 사회나 위버멘쉬를 위해 노력할 생각을 자신 안에 품고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ㅡ하지만 분명 올바른 이해를 하므로, 차라투스트라는 그가 이상 사회/위버멘쉬를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ㅡ그러나 그런 기대에 어긋나면서 자신을 속였다고 말하는 중이다.

 

달은 왜 여자가 아닌 사내인가?

ㅡ올바른 이해를 갖춘 사람이 이상 사회/위버멘쉬를 위해 노력하면, 후대에 이르러 이상 사회/위버멘쉬가 나타날 수 있다.

ㅡ이를 “올바른 이해를 갖춘 사람이 노력하여 낳았다”고 차라투스트라는 이해한다.

 

ㅡ이런 점에서 볼 때, 달은 이상 사회/위버멘쉬를 위해 노력할 의지가 없으므로, 이 사회/위버멘쉬를 낳을 수 없다.

ㅡ즉 임신할 수 없는 존재로 여자가 아닌 남자로 취급되는 것이다.

 

왜 달은 사내답지 않은가?

ㅡ후행되는 내용을 보게 되면, 달은 살금살금 걸어다니는 존재로 묘사된다.

ㅡ이는 곧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그릇되거나 부조리한 것을 어떤 트러블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려는 존재로 볼 수 있다.

ㅡ차라투스트라는 그릇됨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자의 덕이라고 보므로, 그릇됨과 부조리를 넘기는 달과 같은 이들의 행동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달과 같은 이는 밤에만 쏘다니며, 환락을 추구하는 몽상가라고 평가되는가?

ㅡ달과 같은 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을 기피한다.

ㅡ사람들과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ㅡ그러면서 이러한 존재는 개인적 의문들을 풀며 탐구해 나가는 것을 즐기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현실의 즐거움을 위해서 산다기 보다는 지적 즐거움/정신적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양새가 된다.

ㅡ따라서 비현실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런 면에서 몽상가로 취급된다 할 수 있다.

 

왜 달과 같은 이는 비뚤어진 양심을 갖고 지붕 위를 거닌다고 하나?

ㅡ달과 같은 이는 올바른 것을 알면서도 그릇된 것을 묵인한다.

ㅡ왜냐면 그렇게 열성적으로 다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ㅡ그래서 이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를 표현한 것이다.

 

왜 달 속의 수도사는 탐욕과 시샘에 차나?

ㅡ달과 같은 이는 사람들에게 실망해서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할 의지를 잃었다.

ㅡ그래서 안분지족 하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기적 욕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ㅡ또한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실망했기에, 사람들에 불만을 가져, 사람들이 잘 지내는 것에 대해서 눈꼴시어 한다.

ㅡ이를 시샘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달 속의 수도사들은 대지와 사랑하는 자들의 행복 일체를 탐하고 있나?

ㅡ앞서 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들이 비뚤어진 양심을 지녔다고 이야기를 했다.

ㅡ지금의 구절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ㅡ달과 같은 이들은 분명 이상 사회를 바라고 노력했던 이들이지만, 사람들에 대한 실망으로 인하여 노력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ㅡ이런 자들은 여전히 이상 사회를 좋아하긴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상태다.

ㅡ그러므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따르면 사람들의 그릇됨과 부조리를 지적해야 하지만, 그것을 방치한다.

ㅡ따라서 이들이 이상 사회를 여전히 바라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이 구절을 통해서 설명하며, 이상 사회를 여전히 바라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니 비뚤어진 양심을 지녔다고 표현하게 된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를 좋아하지 않나?

ㅡ이들은 부조리와 그릇됨을 보고서 방치하기 때문이다.

ㅡ차라투스트라는 부조리와 그릇됨을 보면 맞서라고 이야기를 한다.

 

왜 달과 같은 이는 수고양이로 불리나?

ㅡ달과 같은 이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고, 미래에 이상 사회와 위버멘쉬를 낳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ㅡ갈등을 피하는 것을 살금살금 걷는 것이라고 보고, 이렇게 걷는 고양이로 비유한다.

ㅡ또 미래에 이상 사회와 위버멘쉬를 낳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자로 비유한다.

ㅡ이에 따라서 달과 같은 이는 수컷 고양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반쯤 닫힌 창가를 살금살금 기어 다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ㅡ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양이가 빈틈을 찾아 늘 빠져나가는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즉 달과 같은 이들이 갈등을 피해 다니는 모습을 비유하는 것이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은 경건하게 말없이 별들의 양탄자를 걸어 다니나?

ㅡ달과 같은 이들은 이상 사회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만, 탐구심이 사라진 상태는 아니다.

ㅡ그래서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서 탐구는 지속하는데, 이걸 두고서 사람들과 다투려 하지 않는 경향성을 보이게 된다.

ㅡ따라서 다투지 않는 경향을 경건하게 말한다고 표현하고, 탐구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별들의 양탄자를 걸어 다닌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별들은 올바른 이해를 가졌던 자들을 말하는데, 이들 사이를 다닌다는 것으로 보인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은 순수한 인식을 하는 자라 자신을 부르나?

ㅡ이들은 순수한 의도로 탐구할 뿐, 다른 의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ㅡ어떻게 보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 탐구하는 것이 탐구 본연의 의도를 변질시킨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착안한 순수함으로 보인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의 정신은 지상의 것을 경멸하라고 설득당했나? 이들의 오장육부까지는 설득하지 못했다는 건 무얼 말하나?

ㅡ달과 같은 이들은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을 해봤던 자들이다.

ㅡ이들은 노력했던 경험에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한다.

ㅡ이 실망으로 인하여, 이들은 세상을 경멸하게 된다.

ㅡ이것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된다.

 

ㅡ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상 사회를 바라긴 한다.

ㅡ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실망시켜도 이상 사회를 바라는 것은 변치 않는 것이다.

ㅡ이 이상 사회를 바라는 건 자신의 본성의 경향성을 말한다.

ㅡ이 본성을 내장/오장육부라고 차라투스트라가 표현한 것이다.

 

ㅡ이전에도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인간의 의식은 머리/가슴/배에서 이뤄지는데, 가장 본성적인 것은 배에서 이뤄진다.

ㅡ오장육부는 이 점에 착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ㅡ어쨌든 달과 같은 이들은 세상을 경멸하고 싫어하게 되긴 했지만, 본성적으로 이상사회를 바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은 오장육부의 뜻을 따르는 걸 수치스러워하고, 샛길로 나아가게 되나?

ㅡ이들은 사람들에게 실망하였고, 그에 따라서 세상에서 노력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게 된다.

ㅡ더불어 노력을 한다해도, 멸시당하기 쉬운데, 이들은 굳이 멸시당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ㅡ그래서 이들은 이상 사회를 바라면서도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ㅡ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삶의 모습은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지적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ㅡ이것이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이고, 삶의 샛길이자 자기 본성을 속이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 된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의 정신은 욕망없이 살려고 하고, 세상을 바라만 보려고 하는가?

ㅡ달과 같은 이들은 현 사회에서 실망한다.

ㅡ그러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려 하게 된다.

ㅡ따라서 어떤 욕망도 세상에 품지 않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ㅡ그럼에도 삶에 즐거움이 있어야 하니, 세상을 올바르게 파악하려는/탐구하려는 욕심을 갖는다.

ㅡ이를 표현한 것이다.

 

사물들로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사물들 앞에 거울처럼 누워있는 것은 왜 때묻지 않은 인식이라고 불리나?

ㅡ사물들 앞에 거울처럼 누워있는다는 것은 사물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한다.

ㅡ이는 곧 올바른 이해를 갖추는 것이다.

ㅡ이 문장은 즉, 사물들로부터 올바른 인식을 얻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ㅡ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탐구의 관점에서는 가장 순수한 탐구의 방법이므로, 달과 같은 이들은 자신들에 대해서 때묻지 않았다/순수하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들의 욕망에 무죄가 결여되어 있다고 말하나?

ㅡ무죄라는 표현은 Unschuld의 번역어인데, 무죄로 일반적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순수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ㅡ왜냐면 달과 같은 이들의 욕망은 본래 이상 사회를 바라는 것인데, 이것이 순수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차라투스트라가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ㅡ정리하면, 달과 같은 이들은 이상 사회를 바라면서도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있기에 순수함이 결여된 상태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은 창조/생식/생성을 기뻐하는 자로서 대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ㅡ창조자/생식하는 자/생성을 기뻐하는 자는 모두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ㅡ창조자는 올바른 가치를 창조하는 자이고, 생식하고 생성을 기뻐하는 자는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할 후학들을 양성하는 자를 나타내는데, 이는 모두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ㅡ반면 달과 같은 이들은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ㅡ따라서 이상 사회를 노력하는 자로서 세상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무죄는 왜 생식의지가 있는 곳에 있다고 하는가?

ㅡ무죄는 앞서 말했다시피 순수함을 말한다.

ㅡ이에 따라서 이 문장은 “순수함은 생식의지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ㅡ그럼 왜 순수함은 생식의지에 있다고 말하는가?

ㅡ우선 순수함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낼 때 순수하다고 말한다.

ㅡ달과 같은 자나 태양과 같은 자는 이상 사회를 바라는데, 이상 사회를 바라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노력할 때 순수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ㅡ순수하게 이상 사회를 바라는 자들은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후학을 양성하려는 의지를 갖는데, 이를 차라투스트라는 생식의지라고 표현한다; 의지를 이어갈 대상을 낳는다는 의미에서의 생식 의지다.

ㅡ즉 이상 사회에 대한 욕망을 순수하게 드러낸 것이 생식의지인 셈이다.

ㅡ따라서 생식의지에 순수함이 있다고 표현한다.

 

ㅡ물론 생식의지에 따라 나아가는 과정에서는 자기극복과 같은 정신적 성장을 요구한다.

 

아름다움은 왜 하나의 상이 하나의 상으로 머물지 않게끔 하는 곳에 있다고 하나?

ㅡ차라투스트라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모습은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다.

ㅡ이상 사회는 태양과 같은 자들이 전력을 다해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ㅡ그런 점에서 모든 의지를 기울이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ㅡ또한 이상 사회에 대한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다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취급할 수가 없다.

ㅡ단순히 이상 사회에 대한 아이디어만 갖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실현되게 하려는 모습, 실제로 이상 사회를 추구하는 모습, 그래서 이상 사회를 위해 자신의 앎을 나누는 ‘하강’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것과 몰락하는 것은 왜 짝을 이루나?

ㅡ이상 사회에 대한 사랑을 갖는다면, 이상 사회를 위해서 앎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ㅡ그래야 이상 사회의 구현과 존속이 가능하다; 이상 사회에 대한 앎을 나누지 않는다면, 과연 이상 사회가 구현되거나 지속될 수 있을까?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비겁자는 누구인가?

ㅡ차라투스트라는 이상 사회를 바라지만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노력하지 않는 자들을 비겁자라고 부른다.

ㅡ왜냐면 그들은 실망을 핑계로 도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과 같은 이들이 말하는 관조와 아름다움은 무엇을 말하나?

ㅡ달과 같은 이들은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현생의 계몽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ㅡ그러므로 이들은 사람들과 마찰하지 않고 부조리나 그릇됨을 관망하는 것을 미덕적으로 본다.

ㅡ또한 세상이 어찌되든 간에 올바른 이해만 얻으려고 사색하고 탐구하는 것을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취급한다.

 

ㅡ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관망과 탐구를 미덕적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ㅡ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관망과 아름다움은 고귀한 이름을 이상한 곳에 붙인 상태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은 분만할 수 없나?

ㅡ이들은 이상 사회/위버멘쉬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ㅡ그래서 이들로부터 이상 사회/위버멘쉬가 나타날 수는 없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은 자신의 입을 고상한 말로 채우고 있나? 왜 이들의 심장이 넘쳐흐르고 있다고 믿지 못하나?

ㅡ이들은 사람들과의 대립을 피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는 것에만 맞춰져 있다.

ㅡ따라서 고상하게 보이는 듯하다.

 

ㅡ그런데 대립을 피하고 있으므로, 올바른 이해를 제대로 전달하려는 열의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ㅡ그런 점에서 심장이 넘쳐흐르고 있다고 보지 못한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변변찮고 멸시당하고 유창하지 않은 말인가?

ㅡ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부조리와 그릇됨을 보고서 대립하기 때문이다.

ㅡ대립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이 변변치 않고, 이상한 개똥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들이 식탁 밑으로 흘리는 것을 줍는다고 말하나?

ㅡ달과 같은 이들은 대립을 피하는데,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취하지 않고 식탁 밑으로 떨어뜨린다고 보았다.

ㅡ그런 면에서 달과 같은 이들은 대립하지 않을 주제로만 대화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달과 같은 이들이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으로도 진리를 말할 수 있다고 하나?

ㅡ달과 같은 이는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 주제를 선별하여 부조리한 자들/그릇된 자들과 대화한다.

ㅡ그래서 대립적 주제는 피한다.

ㅡ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올바른 것을 세우기 위해서 대립적 주제도 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

ㅡ이를 어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선자는 누구인가? 왜 차라투스트라가 주운 물고기 뼈와 조개껍질, 가시 달린 잎은 위선자들의 코를 간질이나?

ㅡ여기서 말하는 위선자는 부조리한 자/그릇된 자를 말한다.

 

ㅡ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가 피한 부조리한 자와 그릇된 자와의 대립을 피하지 않는다.

ㅡ그러면 이 부조리한 자/그릇된 자는 무조건적으로 차라투스트라와 대립하게 될 것이다.

ㅡ이를 어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의 식탁 주변은 고약한 공기가 감도나?

ㅡ이들의 경우, 대화 주제를 선별적으로 놓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ㅡ즉 그들은 부조리와 그릇됨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들에게 오장육부를 믿으라고 하나?

ㅡ오장육부는 본성을 말한다.

ㅡ즉 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들의 본성, 이상 사회에 대한 바람을 믿고 다시금 노력해보라고 설득하려는 것이다.

 

왜 달과 같은 이들은 신의 탈을 쓰고 있나?

ㅡ이들은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탐구만 하는 존재로서 사람들 사이에 있고자 한다.

ㅡ이러한 모습을 신의 탈을 쓰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의 탈은 무엇을 말하나?

ㅡ이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의 모습으로서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왜냐면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고, 올바른 이해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ㅡ게다가 대립도 피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성숙한 모습의 존재로 보일 것이다.

 

왜 신의 탈 속에 뱀이 있나?

ㅡ신의 탈을 쓴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탐구자로서만 자리하고 대립을 피하는 것을 말한다.

 

ㅡ차라투스트라가 보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 그릇된 이해에 기반한 것이다.

ㅡ왜냐면, 성숙한 자는 그런 역경이 있어도 노력하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뱀은 부정적인 것, 그릇된 이해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달과 같은 이들의 유희 속에서 신의 영혼이 유희한다고 여기나?

ㅡ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올바른 이해만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신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왜 뱀의 더러움과 고약한 악취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는가?

ㅡ차라투스트라 역시 신의 탈을 쓴 채로,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고 탐구만 하며 사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던 것으로 보인다.

ㅡ그런데 이것이 성숙한 존재로서의 모습일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ㅡ하지만 한때 차라투스트라는 그런 모습이 괜찮다고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ㅡ왜냐면, 자신의 처지에 맞게 안분지족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ㅡ그러나 이러한 모습 속에는 개인적 안정을 바라면서 나타난 모습이기에, 성숙한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ㅡ즉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삶을 평가해야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기에 자신의 선택을 올바르다고 여겼던 것이다.

ㅡ이런 개인의 알량한 욕망이 성숙한 것처럼 둔감햇다.

 

왜 도마뱀의 간계가 탐욕에 찬 채로 있는 것이 자신에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나?

ㅡ도마뱀은 냉혈동물로 이기적인 모습을 말한다.

ㅡ반면 성숙한 존재, 올바른 인식을 가진 존재는 뜨거운 존재로 모든 것을 나누는 모습이다.

ㅡ그리고 이것이 미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에 성숙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ㅡ앞서 말했듯이 안분지족은 분명 자신의 처지/운명을 수용하는 성숙한 모습이지만, 이는 결국 이기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ㅡ그런 면에서 도마뱀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ㅡ이런 모습이 성숙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로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달은 왜 아침놀 앞에서 핏기를 잃은 채 서 있나?

ㅡ달과 같은 이들의 입장은 태양과 같은 이들의 입장에 비하면 어리숙한 존재의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ㅡ즉 어떤 상황에서도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성숙한 존재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태양의 사랑은 왜 무죄와 창조자의 열망에 대한 사랑인가?

ㅡ태양은 빛을 나누는 자고, 빛은 올바른 이해이므로, 올바른 이해를 나눠 어둠을 걷는 사람을 말한다; 어둠은 부조리나 그릇됨을 말한다.

ㅡ태양의 목적은 올바른 이해를 나눠서 이상 사회를 구현하는 것에 있다.

ㅡ이는 태양적 존재, 즉 이상 사회를 바라는 존재의 욕망이 순수히 드러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ㅡ앞서 말했다시피 무죄는 순수함을 나타내므로, 태양적 욕망과 사랑이 순수한 것이란 점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ㅡ태양의 사랑이 창조자의 열망에 대한 사랑인 이유를 보자.

ㅡ창조자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를 말하고, 이는 그릇된 가치를 부수고 올바른 가치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ㅡ이 역시도 이상 사회를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ㅡ즉 창조자의 열망은 이상 사회를 위한 열망이고, 이를 위한 사랑은 이상 사회를 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ㅡ그런데 태양은 본디 이상 사회를 추구하고 노력하고 있으므로, 태양의 사랑과 창조자의 사랑은 같은 것이 된다.

 

태양은 왜 서두르며 바다를 건너오나?

ㅡ태양적 존재가 바다를 건넌다는 것인데, 이는 어서 빨리 이상 사회를 구현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 달과 같은 이들에게 태양의 갈증과 숨결을 느끼지 못하냐고 묻나?

ㅡ달과 같은 이들은 이상 사회를 위한 노력을 포기했다.

ㅡ그런 상태에서 태양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저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포기하는 게 맞다고 느끼는지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태양은 왜 바다를 빨아들이나? 바다란 무엇인가?

ㅡ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고자 하는 자들을 말한다.

ㅡ자신의 높이까지 빨아 올리는 것 역시 실제로 흡수한다기 보다는 후술되는 것처럼, 그들을 태양적 존재로 거듭나게끔 하려고 건져 올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바다는 왜 태양에 빨아들여지기를 원하나?

ㅡ바다는 태양을 통해 성장하는 자를 말한다.

ㅡ그런 면에서 이 바다는 성장을 바라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빨아들여지기/성장되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ㅡ그렇게 바다가 성장한다면, 그는 빛을 내는 존재, 태양적 존재가 되게 되는 것이다.

ㅡ그래서 바다는 태양에 빨아들여지면서 스스로 빛이 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바다를 사랑하나?

ㅡ바다와 같은 자들이 태양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인식은 무엇을 말하나?

ㅡ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인식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으로 보인다.

ㅡ즉 자신의 삶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이해를 건네면서 성장 가능한 이들을 최대한 자신이 성장시킬 수 있는 만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