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서문 의역

차라투스트라 - 서문 10장 의역 (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5. 21. 02:06

ㅡ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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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서문 10장


 
서문 10장 개괄

 
 
9장은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이 노력해야 할 대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장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염두해야 할 대상들이 군중이 아니라, 이미 자신과 같은 길로 나아가고 있는 운둔자나 둘이서 지내는 자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왜냐면,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구상한 무거운 사상에 따라서 이상 사회를 구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이상적 존재가 되게끔 교육하는 것보다, 이상사회를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존재들을 모아 이상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 된다.
따라서 설득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함께 노력할 존재가 우선 되는 것이다.


 

6장부터는 차라투스트라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통해서 표현하므로, 
번역과 함께 의역을 남깁니다.


 
 

번역
 
 

차라투스트라가 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했을 때, 태양이 중천에 있었다.
그때 자신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새의 소리가 들렸고, 차라투스트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그러자 독수리 한 마리가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독수리의 목*에 뱀이 둘러져 있었는데, 위급한 느낌은 없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보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독수리는 긍지를 말하고, 뱀은 지혜를 말한다.


    “저것들은 나의 동물들이다!
     태양 아래에서 가장 긍지 높고 현명한 동물들!
     그들은 내가 아직 살아있는지 알아보려고 나왔나 보구나.
 
     그런데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게 맞는가?
     나는 자연 속에 있을 때보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더 위험하다고 느꼈다.
     나는 위험한 길을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디 이 길을 가는 동안 내 동물들이 나를 인도하기를 바란다.”
 
그 순간 차라투스트라는 늙은 성자가 했던 말을 생각*했고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 2장에서 늙은 성자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되고 배척당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에 수긍하지 않았는데,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늙은 성자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서 한숨을 내쉰 것이다.


    “나도 좀 더 현명해지고 싶다.
     나의 뱀처럼 나의 본성이 현명하면 좋겠다*.

*현명하다면, 오판이나 오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에게 오판이나 오류는 가장 기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것이지.
     그래서 나는 내 자부심이 항상 내 현명함과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다 내가 더는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현명함은 늘 달아나기를 좋아하니,
     자부심이 내 어리석음과 함께 내게서 멀리 날아가버리기를**!”

*현명하지 않은데 자부심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리석음이 존재하는 순간 자부심이 사라지길 바라고 있다.

 
그렇게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은 시작되었다.
 

차라투스트라의 동물들
독수리는 긍지를 나타내고, 뱀은 지혜를 나타낸다.
긍지는 성숙한 존재로서 갖는 긍지이며,
지혜는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고 대상 자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의역

 
제가 나아가려는 길은 그리 안락한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으며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길을 나아가는 나에게 비난과 조롱에도 버틸 수 있는 긍지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번 현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렵겠지요.

그러니 제가 현명할 수 있을 때에만 긍지를 가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올바른 이야기를 하면서 버틸 수 있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현명하지 못한 순간이 오면, 제 긍지도 사라져 버리기를 바랍니다.

그릇된 이야기를 하면서 긍지를 가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이 시작되었다.
 
 

위험한 길로 나아가는 차라투스트라
이상 사회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차라투스트라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게 했다.


 생각해볼 거리들

 
 
독수리와 뱀은 무엇을 살피려고 나온 것일까? 차라투스트라의 생존여부를 살피러 나온게 맞나?
ㅡ 이야기상 흐름을 본다면, 독수리와 뱀은 차라투스트라의 생존을 확인한다기 보다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긍지와 지혜를 형상화하며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
ㅡ 따라서 독수리와 뱀은 애초에 무언갈 살피러 나타난 것이 아닌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숲 속의 성자가 한 이야기를 떠올렸나?
ㅡ 숲 속의 성자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지 말라고 했었다.
ㅡ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ㅡ 그런 이야기를 무시하던 차라투스트라였지만, 실제 그에게 벌어진 것은 성자가 염려하던 것들이었다.
ㅡ 이에 따라서 차라투스트라는 성자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자신이 잘 몰랐다는 것을 인정한 듯하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긍지에게 지혜와 함께 하기를 바라나?
ㅡ 매번 현명하면 좋을 일이지만, 매번 현명할 수 없기에, 차라투스트라는 현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문제는 일으키지 않게끔 바라게 된다.
ㅡ 니체는 최대한 어리석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긍지에 따르는 것을 이야기한다.
ㅡ 여기서 긍지란 성숙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ㅡ 왜냐면 위버멘쉬를 지향하거나 부조리를 개선하려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ㅡ 성숙한 존재로서의 긍지를 갖는 사람의 특징은 미숙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ㅡ 그래서 성숙한 존재로서의 긍지를 갖는다면, 자신이 무언가 으시대거나 잘 모르면서 아는 체를 하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이 긍지만 가질 뿐 행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ㅡ 아무튼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지혜가 작동하지 않을 때, 미숙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긍지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혜가 사라지면, 왜 긍지 또한 날아가기를 바라나?
ㅡ 긍지는 성숙한 모습에서 비롯되고, 그 성숙한 모습은 올바른 이해/판단에서 드러난다.
ㅡ 그런데 올바른 이해나 현명한 판단이 어려워지게 되면, 성숙한 존재로서의 긍지도 사라져야 한다.
ㅡ 그러지 않으면 지혜는 사라지고 긍지만 남게 되어, 속이 텅 빈 호두와 같은 어리석은 자/미숙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ㅡ 그래서 지혜가 사라진다면, 긍지도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ㅡ 추태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왜 지혜는 달아나기를 좋아하나?
ㅡ 지혜로움은 붙잡아 둘 수 있는 요소가 아니며, 지혜로운 자도 실수하고 오판하곤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