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서문 7장
서문 7장 개괄
7장은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나서, 위버멘쉬로 나아가다 실패한 자를 마주하고 나서 인간과 스스로의 길에 대한 생각을 하는 장이다.
짧게 이뤄져 있기에, 큰 해석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위버멘쉬가 되는 조건이 까다롭다는 면이 강조되고, 인간에 대한 실망감도 비춰지는 장이라 할 수 있다.
6장부터는 차라투스트라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통해서 표현하므로,
번역과 함께 의역을 남깁니다.
번역
그 사이 저녁이 되었고, 시장은 어둠에 잠겼다.
사람들도 다들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공연도 끝났고, 곡예사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죽은 곡예사 옆에 앉은 채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밤이 되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차라투스트라는 일어나면서 속으로 말했다.
“오늘 내 하루는 그래도 소득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줄을 타려고 시도하는 이 하나는 마주쳤으니 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줄을 타기에 아직 불안한 존재인 듯하다.
방해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의 운명이 크게 요동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노력은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의 의미, 위버멘쉬로 향할 때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 존재의 의미가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은 그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흥미롭지 못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이야기는 전혀 들리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나는 한심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리라.
아, 이 밤처럼 나의 길은 어둡구나.
그래도 가자, 차갑게 굳어버린 나의 길동무여.
너가 평안히 쉴 수 있는 곳까지 내가 너와 함께 갈 것이다.”
죽은 곡예사를 메고 나아가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그를 존중하여 그가 훼손되지 않을 수 있는 곳에 묻어주려 한다.
의역
시도자의 죽음을 보면, 위버멘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건이 까다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나아가려는 의지뿐만 아니라, 올바른 것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있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뚝심도 있어야 하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상사회로 나아감에 있어서, 불안한 존재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상사회를 바라고 설파하려는 저 같은 이들에게 덧없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저는 사람들에게 이상사회로 나아가라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이상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우리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현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긍정적 인식을 갖는, 먹구름 속에서 번쩍이는 번개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어서, 관심을 갖는 이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저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거나, 세상 물정과 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이겠죠.
제가 나아가는 길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이상적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쓰러진 이들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바르게 잡아주며, 이상적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사색에 잠긴 차라투스트라
그는 자신이 나아가려는 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생각해볼 거리들
사람이라는 존재는 왜 기괴하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나?
ㅡ 이 말을 하는 차라투스트라는 밧줄을 타다가 죽은 곡예사 옆에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
ㅡ 이 곡예사는 위버멘쉬로 나아가던 중, 광대의 방해에 의해서 쓰러졌다.
ㅡ 하지만 위버멘쉬로 나아가던 중에서 광대의 방해는 자기 확신이 있었다면, 확실한 자기 의지가 있었다면, 크게 영향을 줄 부분이 아니었다.
ㅡ 하지만 곡예사는 광대에 의해 크게 흔들렸고, 그러다 실패했다.
ㅡ 이런 상황이다 보니, 차라투스트라로서는 의아하게/실망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ㅡ 물론 그의 기대에 차지 않은 결과란 것일 뿐, 곡예사의 시도는 고귀한 것이지만.
ㅡ 어쨌든 위버멘쉬로 나아가는 길은 특정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나아가기 힘든 길로 보인다.
ㅡ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아니라고 보이는 것이다.
ㅡ 그러므로, 그에 대한 노력을 하는 차라투스트라는 노력의 헛됨을 느끼게 되고, 인간에 대한 실망감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ㅡ 또한 ‘기괴하다’고 표현된 단어는 “unheimlich”로 소름끼치다/불길하다/기분 나쁘다/불안하다는 뉘앙스의 단어로 보인다.
"Unheimlich"는 "Heim" (집)과 관련이 있습니다.
"Heimlich"는 "은밀한" 또는 "가정적인"을 의미하며, 여기에 부정 접두사 "un-"이
붙으면 "집과 같은 익숙함을 잃은, 낯선"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는 가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이 반대로 뒤집혀 낯설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ㅡ 이런 면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주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에 대해서 다소 실망하였고, 그에 따라서 나타난 표현이 “인간의 존재는 기괴하고 여전히 의미가 없다”는 표현이라 생각된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가르치려 하나?
ㅡ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현생을 벗어나고자 하고, 자신들의 존재의 의미/이유/가치에 대해서 찾지를 못하게 된다.
ㅡ 이들이 존재 가치를 가지고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부조리한 사회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상황이 벌어져야 하는데, 부조리한 사회의 개선이 어렵다고 느끼면서 그들은 존재 의미/가치를 상실한 상태에 고착되는 것이다.
ㅡ 이에 따라서 그들의 삶이 가치를 되찾고, 존재의 의미를 되찾으려면 이상사회의 가능성이 확인되어야 한다.
ㅡ 차라투스트라의 위버멘쉬의 경우, 그러한 이상사회의 가능성을 보고 있기에, 이를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에게 존재 의미를 알려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위버멘쉬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제한적인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ㅡ 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라고 본다.
ㅡ 위버멘쉬가 되는 과정에서 그를 돕는 존재가 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위버멘쉬가 되기는 어렵다고도 본다.
ㅡ 이와 관련해서는 「차라투스트라, 1권 10장」에서 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한다.
그대들이 인식의 성자가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인식의 전사라도 되어라.
인식의 전사는 인식적 성스러움의 길동무이자 선구자.
ㅡ 해당 구절에서 인식의 성자는 위버멘쉬를 말하는데, 위버멘쉬가 될 수 없다면, 전사가 되라고 말한다.
ㅡ 또한 「차라투스트라, 1권 10장」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도 나온다.
뛰어난 전사에게는 "너는 해야 한다"가 "나는 원한다"보다 더 편안하게 들린다.
그러니 그대들이 사랑하는 것 모두가 그대들에게 먼저 명령하게 하라.
ㅡ 전사들은 “해야 한다”에 따르는 자로 나오기 때문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
ㅡ 왜냐면 「차라투스트라, 1권 1장」에서는 “해야 한다”와 싸워서 “원한다”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ㅡ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전사들은 인식의 성자가 될 수 없어서 전사가 된 존재들이다.
ㅡ 즉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는 지적인 부분이 발달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ㅡ 이에 따라서, 당위에 따라/명령에 따라 움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 위버멘쉬는 인간이라는 먹구름에서 번쩍이는 번개인가?
ㅡ 위버멘쉬는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벗어난 존재다.
ㅡ 그래서 이들은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 인식을 갖는데, 세상에 대한 염세/허무를 먹구름이라고 보고, 세상에 대한 긍정을 가진 위버멘쉬를 그 먹구름에서 벗어난 번개로 본 것이다.
ㅡ 관련해서는 「유고 (1882년 7월~1883/84 겨울)」의 문장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17[58]
섬광이고자 하는 자는 오랫동안 구름으로 있어야만 한다.
ㅡ 여기서 구름을 먹구름으로 본다면, 염세와 허무를 견디는 끝에 위버멘쉬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바보와 시체 사이의 존재인가?
ㅡ 사람들이 보기에 차라투스트라가 하는 이야기는 바보 같은 이야기, 어리석은 이야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ㅡ 그들이 보기에 현재의 사회/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보같다고 보는 것이다.
ㅡ 그도 그럴 것이 사회는 이미 지금 현재의 규율과 질서를 바탕으로 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ㅡ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고 현 사회를 개선하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현생에서 살지 않는 자, 죽은 자로 여겨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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