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서문 의역

차라투스트라 - 서문 1장 의역 (완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5. 16. 12:00

ㅡ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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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서문 1장


 

서문 1장 개괄

 

서문 1장은 고독 속에서 사색을 하며 깨달은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전달하려고 하산을 다짐하는 장이다.
이 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태양을 통하여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 태양에 대한 의미는 1권 22장에서 좀 더 생각해볼 단서들이 나오므로, 1권 22장을 본 후에 다시금 보는 것을 추천한다.

 


 

본문

 

차라투스트라가 30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고향과 고향 호수를 떠나 산으로 갔다.
그 후 차라투스트라는 10년 동안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고독 속에서 사색을 즐겼다.
마침내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새벽 무렵에 일어나, 태양*을 마주한 채로 이렇게 외쳤다.

*태양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말한다.
후술되는 동굴에 대한 이야기로 볼 때, 플라톤의 동굴 비유의 특징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고귀한 별, 올바른 이해의 빛*을 선사하는 태양이여,
 당신의 빛을 비출 대상이 없다면, 당신의 빛을 이해할 대상이 없다면, 당신에게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태양은 빛을 통해 어둠을 걷어내는데, 어둠은 그릇된 이해로, 빛은 올바른 이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태양은 올바른 이해를 빛으로 내보내고 있는 별이다.

 
 당신은 10년 동안 제 동굴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빛/당신이 알려주는 진리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면,
 당신은 부질없는 비춤에 싫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침마다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대의 빛을 받아들이며, 빛을 주심에 감사하고 당신을 축복했습니다.
 
 이렇게 당신과 지낸 결과, 제 정신은 올바른 이해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 넘치는 이 올바른 이해를 가져갈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사회에는 그릇된 이해를 전하면서 현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어서, 사회에서 인정하는 상식을 지녀서 현자라 불리곤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말과 사회에서 인정하는 상식은 그릇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들이 그릇된 이해 속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저의 앎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사회에는 올바른 이해를 전하면서 푸대접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그들이 올바른 이해를 가진 게 맞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자신의 올바름에 기쁨을 누릴 수 있게 저의 앎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저 깊은 곳, 그릇된 이해가 가득한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당신이 저녁이 되면 그러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 태양이여,
 대지만이 아니라 바다 너머의 저승에도 빛을 가져다주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여 빛을 나누는
 당신은 사랑이 넘치는 별입니다.
 
 저 역시 당신을 본받아 사람들에게 앎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런 저를 축복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앎을 나누다 보면, 큰 행복이 제게 주어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제게 주어지는 이러한 행복을 시샘 없이 바라보시겠지요.
 저의 행복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셨으니 말입니다.
 
 당신에 의해 올바른 이해가 넘쳐 흐르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이 잔을,
 이 잔에 넘치는 올바른 이해가 흘러나와
 올바른 이해를 얻는 기쁨을 널리 퍼트릴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가 가진 걸 나누길 바랍니다.
 저는 다시 사람들 사이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내려감은 시작되었다.

 
 

태양을 바라보는 차라투스트라
태양은 그에게 올바른 이해를 주는 존재다.


생각해볼 거리들

 
30살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
ㅡ30살에 어떤 일이 생겨서 속세를 떠나게 되는 일이 생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ㅡ30살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ㅡ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와 차라투스트라를 따라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ㅡ예수의 경우, 30살부터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하고, 실제 차라투스트라의 경우, 20살에 집을 나와 삶에 대해 고뇌하였고, 30살에 깨달음을 얻는다.
ㅡ하지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30살부터 10년간 고독 속에서 탐구를 진행하게 된다.
ㅡ이런 면에서 보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저들과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혹자는 차라투스트라가 30살부터 탐구를 진행한 점을 차용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ㅡ그래서 추측하는 것은, 니체는 예수를 자유정신을 지녔지만 아직 어리숙했다고 본다는 점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조금 더 성숙한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의미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ㅡ어쨌든 가장 분명한 것은 30살 즈음에 사람들 사이를 떠났다는 것인데, 나이의 의미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고, 30살 즈음에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했다는 의미로만 생각해도 될 듯하다.
 
차라투스트라에게 일어난 마음의 변화는 무엇인가?
ㅡ기존의 처음 입산했을 때의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사람들로부터 떠나겠다”고 하여 산으로 들어왔기에, 10년 동안의 사색을 한 후에 일어난 마음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태양이 비출 대상을 갖지 않는다면그의 행복이 뭐냐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ㅡ태양은 비출 대상을 찾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ㅡ태양은 이데아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데, 이데아는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탐구되기를 바란다고 할 수 있다.
 
동굴은 무엇인가?
ㅡ태양이 동굴 속으로 빛을 비춘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ㅡ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 태양은 이데아를 말하므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데아의 세계를 인식한 상태, 올바른 이해를 얻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독수리와 뱀은 무엇인가?
ㅡ먼저 독수리와 뱀은 후술될 때, 긍지가 높고 영리한 짐승이라고 이야기된다.
 
ㅡ또한 뱀은 1권 19장에서 태양을 휘감은 존재로서 표현이 된다.
ㅡ태양이 이데아라고 한다면, 뱀은 이데아를 인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ㅡ1권 12장에서 벗을 두고 “너의 긍지는 너를 지적하는 대중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너의 긍지는 대중들에게 거슬린다”는 이야기를 한다.
ㅡ이런 표현의 해석으로 긍지는 성숙함에 대한 자기 만족으로 볼 수 있다.
ㅡ성숙한 존재에 대한 긍지가 있기에, 미숙한 대중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또한 사람들은 이 성숙한 존재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ㅡ이런 점에서 독수리는 성숙함에 대한 긍지를 나타낸다면, 뱀은 이데아에 대한 인식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ㅡ즉 이데아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존재였다면, 태양은 스스로의 노력을 무의미하다고 여겼을 것이란 이야기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지혜에 싫증이 났나?
ㅡ실질적으로 자신의 깨달음에 싫증이 났다기 보다는, 이제 많은 걸 깨달아서, 깨달은 것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는 의미로 봐야 맞을 듯하다.
 
ㅡ상황을 살펴보면, 차라투스트라는 태양을 통해서, 이데아를 탐구하면서 지적으로 충만해진 상태에 이른 것이다.
ㅡ이를 니체는 꿀을 많이 모은 벌로 묘사하는데, 인식의 벌집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ㅡ벌과 벌집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도덕의 계보, 서문 1절」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의 보물은 우리 인식의 벌통이 있는 곳에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날개 달린 동물이자 정신의 벌꿀을 모으는 자로 항상 그 벌통을 찾아가는 중에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쓰는 것은 본래 한 가지 즉 무엇인가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것뿐이다."
ㅡ위 구절에서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사람들에게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빛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ㅡ태양을 이데아로 본다면, 이데아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른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명한 자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기뻐하나?
ㅡ현명한 자가 자기 개발을 하는 존재라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하는 것은 기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넉넉함을 기뻐하게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ㅡ가난한 자들이란 사람들에게 현자라 불리는 자와 대조되는 존재다.
ㅡ따라서 가난한 자들은 올바른 이해(부)를 가졌음에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는 존재를 말한다.
ㅡ이 존재는 자신이 올바름을 차라투스트라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태양이 시기없이 바라볼 있다는 행복은 무엇인가어떤 행복인가?
ㅡ상황을 먼저 살피면, 사람들에게 앎을 나누려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하고 있다.
ㅡ즉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일이 생기길/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기를 축복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ㅡ이는 다르게 말하면,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행복이 있기를 바라 달라는 것이며, 행복이 없어도/불행이 있어도 견딜 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ㅡ그런 면에서 태양이 마주할 행복은 차라투스트라의 행복이라고 볼 수 있다.
 
ㅡ그렇다면 태양은 왜 차라투스트라의 행복에 대해서 시샘을 하게 될까?
ㅡ우선 차라투스트라란 존재 자체의 지적 충만함은 태양이 선사한 것이다.
ㅡ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서 배운 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에게 가더니 행복한 상태가 되었다고 하자.
ㅡ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태양은 자신이 누릴 수 있던 것을 차라투스트라가 누리게 해주는 꼴이 된다.
ㅡ이러한 점에 따라 태양이 시샘할 수도 있다고 본 듯하다.
 
ㅡ그런데 왜 차라투스트라는 태양을 자신의 행복을 시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존재로 여길까?
ㅡ차라투스트라가 사람들 사이에서 누리게 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이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ㅡ우선 차라투스트라는 태양의 빛, 태양의 가르침을 통해서 성장하게 되었다.
ㅡ태양을 이데아로 본다면, 이데아를 인식하면서 성장한 것이다.
ㅡ이런 차라투스트라가 인간 세계로 나아가서 자신이 배운 것을 설파하게 된다면, 이는 이데아에 대한 설파가 될 것이다.
ㅡ그렇게 차라투스트라의 설파가 성공한다면, 이는 곧 이데아에 대한 이해/공감이 형성되고, 이데아에 따르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ㅡ그런 의미로 보면, 태양은 차라투스트라라는 존재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는 추종자/신도/종들이 생긴 것이므로, 차라투스트라의 행복/성공은 자신에게도 이롭다.
ㅡ이런 점에서 태양은 차라투스트라의 행복을 시샘할 이유가 없다.
 
ㅡ이와 관련해서는 “태양이 초월적 존재/자연적 존재이므로, 인간의 행복을 시샘할 이유가 없다”고 보기도 하고, “태양의 축복을 바라는 것은 그저 혼자 축복과 관련해서 감성에 젖어 한 말이다”라고 볼 수도 있다.
 
태양의 환희/태양이 주는 환희는 무엇일까
ㅡ태양은 이데아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 태양에 의해서 올바른 인식을 가지게 된다.
ㅡ 따라서 태양이 주는 환희는 “태양이 제공하는 올바른 인식을 통해서 환희를 맛보게 된다”는 이야기로 생각해볼 수 있다.
 
ㅡ그럼 올바른 인식이 기쁨을 주는 이유는 무얼까?
ㅡ올바른 인식은 명확한 이해를 하게 하기에 기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보다 더 기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경우다.
ㅡ니체의 글의 분위기에 따른다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절망적 인식의 개선, 이상 사회에 대한 회의적 인식의 개선이 해당될 것이다.
ㅡ이런 인식이 개선된다면, 현생에 대하여 절망적으로 보기보다는 희망적으로 볼 여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