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1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1권 22장-2 의역 (완) (선사하는 덕, 2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5. 14. 18:04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1권 22장 선사하는 덕 - 2


 
 

22장 2절 개괄

 

22장 2절은 이상사회를 바라는 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기를 바라는 부탁을 하는 장이다.

 

니체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이상 사회에 흥미를 지니는 이들에게 노력을 멈추지 말고 이상사회가 다가오게끔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적/종교적 규율의 잔재와 싸워야 하는데, 아직도 잔재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또한 니체는 이 잔재들과의 다툼에서 1절에서 말한 것처럼 신체에 입각한 이해들을 바탕으로 싸우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노력은 이상사회의 밑거름이자 단초가 될 거란 이야기다.

 

니체 역시도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니체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이 싹트고 있다/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희망이 세계에 감돌고 있다’고 말한다.


 

 

본문

 

 

차라투스트라는 잠시 침묵하더니, 자신의 제자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는데, 그의 목소리가 변해 있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제가 부탁하고 간청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신들의 의지와 가치관에 따라 이 세상, 현생에 충실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누는 올바른 이해가 현생을 긍정하고 희망하는데 이바지하게 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의지와 가치관이 현생을 등지는 의지와 가치관으로 변하지 않길,

내세를 희망하는 의지와 가치관으로 변하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그러듯이,

현생을 긍정하는 가치와 규율들이 세상에 자리하게끔 노력 해주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내세나 사후세계를 바라지 않고, 현생의 만족을 바라게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현생에서의 사람들의 삶이 의미를 갖게끔 해주길 바랍니다.

 

우리는 내세나 사후세계의 삶을 위해서 노력해왔습니다.

내세나 사후세계가 허구라는 걸 아는 지금 이 노력이 얼마나 헛된 것이엇는지, 그 당시의 생각이 얼마나 망상이었는지 압니다.

우리가 내세를 위해 한동안 노력을 했었기에,

우리의 무의식 중에는 내세나 사후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 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것이

우리를 만족케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남아있습니다.

내세와 사후세계를 긍정하는 것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올바른 것을 향해 쉽게 나아가지 못하게 되죠.

 

인류에게서 이어져 온 사회적/종교적 규율의 광기가 우리에게서 폭발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종교적 규율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입니다.

사회적/종교적 규율이 우리의 행복과 무관하거나 우리의 행복을 해치는 일임에도,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의 행복과 관련된다고 여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사회적/종교적 규율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사회적/종교적 규율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필연이나 당위가 그들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저 사람들이 이 사회적/종교적 규율을 이성적으로 고찰하지 않았기에, 운이 좋았기에 사람들에게 채택되고 아직까지 유지되어 온 것일 뿐인 겁니다.

이런 우연적인 것에 인류는 여전히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부탁하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이 이상 사회를 위한 노력을 해주길 부탁하고 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정신이 이 세상을 긍정하고 희망할 수 있게끔 해주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가치와 규율이 여러분에 의해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기존 규율과 가치관에 대해 투쟁하는 자여야 하며, 새로운 규율과 가치관을 창조하는 자여야 합니다.

 

신체는 정신으로부터 이해를 받음으로써, 불만을 해소하고 만족에 이릅니다.

정신으로부터 이해 받은 신체는 다시금 행복으로 나아가려고 시도하고, 그 과정 속에서 신체는 만족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결과, 깨우친 자에게는 신체의 모든 충동은 행복에 이르는 신성한 것이 되며,

고양된 자에게 정신은 만족을 주는 것이 됩니다.

왜냐면 정신에게 신체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이고,

신체에게 정신은 자신을 알아 봐주고 이해해주는 반가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부조리한 사회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부조리한 사회를 개선하는 것은 곧 사회의 구성원을 개선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병이 든 채 살아가는 이유는

사회의 병인 부조리를 근절할 방법이 없다고 여겨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선적으로 할 것은

사람들이 걸린 병, 부조리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을 스스로 먼저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벗어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면,

사람들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선, 생각을 바꾸려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 개선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현생을 긍정하며 건강을 찾는 방법도 그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늘 탐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이상 사회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하는 염세와 허무를 없앨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자신 안에 있는 염세와 허무부터 처리해야 한다.


 

은둔자들이여,

깨어나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미래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통찰력 있는 자라면, 분명 이 좋은 소식이 들릴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은둔자들이여,

세속과 결별한 자들이여,

언젠가 여러분은 하나의 민족*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으로부터 하나의 민족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에서 위버멘쉬가 자라날 것입니다.

*부조리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 위버멘쉬 민족을 말한다

 

이 세상은 고통의 장소가 아닌 긍정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합니다.

어쩌면, 이미 세상에는 미약하게나마 희망이 싹트고 있는 듯합니다.

이상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이 말입니다.

 

 

황량한 곳에 일어나는 신비

이상 사회를 바라는 이들의 노력으로 고독하던 황야에 치유와 희망의 바람이 일고 있다


생각해볼 거리들

 

덕의 힘이란 무엇을 말하나?
- 덕의 힘이란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이 탐구하여 얻은 가치관과 규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즉 앞서 말하던 새로운 덕을 말하는 것이다.

- 개인의 행복과 성숙을 위한 가치관과 규율에 따라서 대지, 즉 세상에 충실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왜 선사하는 사랑과 깨우침이 대지의 뜻에 이바지하게 하라고 말하는가?

-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에 개인의 행복과 성숙을 위한 가치관과 규율을 제시하고 설파 하면, 그나마 부조리한 사회가 살만한 사회 또는 살만한 사회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을 맛보게 할 수 있다.

- 이러한 노력을 하기를 주문하는 것이다.

 

덕이 지상을 등지고 날아오르지 않게 하라는 것은 무엇인가?
- 제자들의 가치관과 규율의 목적이 현생이 아닌 종교나 부조리한 사회로 나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영원의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하라는 것은?

- 이는 내세/사후세계로 나아가지 말라는 것을 말한다.

 

헛되이 날아간 덕은 왜 늘 많았나?
- 종교나 부조리한 사회, 염세나 허무를 향한 가치관들이 많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날아간 덕을 다시 대지/신체/삶으로 오게 하라는 것은?

- 종교나 부조리한 사회로 나아간 가치관들, 염세나 허무로 나아간 가치관들을 설득하여 현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라는 것이다.

- 이러기 위해서는 이상 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정신이 수백번 날아오르다 떨어졌고, 신체에 정신의 망상과 실수가 자리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정신이 종교/부조리한 사회/염세/허무를 향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것을 '날아오르다 떨어졌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다.

- 날아오르다 떨어졌다는 것은 저런 가치관에 따라 살았다가 좌절을 맛봤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면 될 듯 하다.

 

- 어떤 가치관을 지닌 채로 살아가다 보면, 기본적으로 개인의 행복에 대한 반응을 보이던 신체가, 특정 가치관에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 종교적 가치관에 빠진 사람은 종교적 가치관에 따를 때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이러한 것이 지속되면, 신체는 종교적 가치관에 따를 때 만족을 느끼는 구조를 갖추게 된다.

- 이를 신체에 정신의 망상과 실수가 자리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 이처럼 신체에 특정 가치관이 자리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여 비종교적인 발언을 할 때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 그래서 비종교적 발언에 따른 불안이나 죄책감을 벗어나려고 다시 종교로 회귀하는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

 

수많은 무지와 오류가 우리에게서 신체가 되어 있는 것이란 말의 의미는?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떤 가치관이 만족과 불만족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종교에 빠졌던 사람이 비종교적 언행을 해을 때 무의식적으로 불안과 죄책감을 느끼는 것 말이다.

 

수천년 된 이성과 이성의 광기가 왜 우리에게서 폭발하나? 왜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위험한가?

-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규율은 오랜 시간 동안 구성된 사회적 이성/질서다.

- 이것을 교육받으면서 개인은 만족과 불만족의 척도로 삼게 되는데, 이것이 개인의 행복과 대립하면서 개인이 행복감을 느껴야 할 것에서 불만족을 느끼게 할 수 있다.

- 그러면서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 이런 문제는 종교적 사회적 규율을 받아들이면서 생겼던 것이고, 이를 상속했다고 표현한다면, 잘못된 상속으로 개인적 삶에 문제를 지니게 된 것이니, 위험한 것이라 보는 거이다.

 

우연이라는 거인은 무엇인가?

-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규율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들이 어떤 타당한 당위나 절대적 근거를 지니면서 수천년을 존립해온 것이 아리난 것을 말한다.

- 즉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규율은 우연히/운이 좋게도 이제까지 지속이 된 것이란 이야기다.

 

- 따라서 니체는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규율의 지배를, 난센스가 인류를 지배하는 상황이라고 본다.

 

신체는 왜 앎을 통해서 자신을 정화하나?
- 여기서 앎이란 정신의 이해를 말한다.

- 즉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고, 정신이 이 신체적 반응을 이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신체로서는 자신의 반응을 정신이 받아들이고 반영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목적을 이뤄주는 것이기에 반길 일이다.

- 그리고 신체가 갖는 불편과 불만이 해소되므로 정화된다고 표현한 듯 하다.

 

앎을 가지고 신체가 시도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정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신체가 시도한다는 이야기이다.

- 신체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행복에 이르려는 시도를 한다.

- 그런데 정신이 신체를 이해하고 있고, 도우려고 하고 있다는 말이다.

 

- 정신이 신체를 억압하는 경우를 떠올리면 어떤 상황인지 감이 더 올 것이다.

- 그러면 신체의 입장에서는 협력자를 둔 것이나 같으므로, 고양되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깨우친 자에게는 왜 모든 충동/본성이 신성시 되나?

- 충동이나 본성은 신체가 보이는 반응을 말한다.

- 이러한 것은 모두 개인의 행복에 이르는 단서가 된다.

-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행복으로 나아갈 단초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모두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 된다.

 

고양된 자에게는 왜 영혼이 즐거운 것이 되나?
- 영혼보다는 흐름상 정신이 더 적절한 단어로 보인다.

- 고양되었다는 것은 신체가 고양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그리고 앞서 살핀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보면, 정신은 신체에 협력적이다.

- 신체는 정신이 알아봐주고 노력을 같이 해주므로, 자신에게 만족을 주는 반가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 이에 따라서 즐거운 것이 되는 듯 하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은 자신의 병을 고쳐야 하는가? 자신의 병은 무엇인가?

-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개선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 하지만 이 제자들만 사회의 부조리를 개선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 사람들 중에서도 한 이들이 있는데, 이들이 부조리를 개선하지 않는 이유는 부조리를 개선할 방법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 즉 무한히 쏟아지는 부조리한 인간들을 일일이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삶이 부조리하다고 인정하고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들이 고쳐야 하는 병인 것이다.

- 니체는 이를 영원회귀를 통해서 고쳤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상세히 나오지 않는다.

 

- 아무튼 사람들에게 부조리를 개선할 방법이 있고, 이상사회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사람들이 부조리를 개선할 노력과 의지를 가질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에게 천개의 발이 닿지 않은 길을 말하나?
- 이는 「차라투스트라, 1권 9장 천개이자 하나의 목표」와 관련되어 보인다.

- 즉 사회적 가치관으로 천개의 목표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언급되는 천개의 길이 그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1권 9장에서 민족들이 만든 천개의 가치관들은 한데 묶이면서 가치 충돌을 보이지만, 국가는 이를 문제 없다며 방치하게 된다.

- 이런 점에 따라서, 가치관들에 모순과 부조리가 잔존해 있음을 보여줬다.

- 22장에 이르러서 차라투스트라는 천개의 가치관이 갖는 문제들을 제거하고 일관된 가치체계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 즉 이상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미래로부터 바람이 다가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 이는 이상사회의 가능성이 다가왔음을 말한다.

- 여기서 말하는 것이 단순히 미래에는 내가 원하는 이상 사회가 올 것이다라는 막연한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하다면, 차라투스트라는 그러한 미래가 안올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부정에 무너지게 되므로, 이런 허황된 이야기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 어쨌든 섬세한 귀에 좋은 소식이 들린다고 했으므로, 뭔가 이론적으로 구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볼 수 있다.

 

- 이 부분에 대해서 깊게 본다면, 영원회귀에 대한 암시가 있다고 해석한다.

- 왜냐면 영원회귀를 기준으로 보면, 이상사회에 대한 실현은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