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1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1권 20장 의역 (완) (아이와 결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5. 11. 22:19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1권 20장 아이와 결혼


 
 

20장 개괄
 

 
20장에서는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기본적으로 니체는 성숙한 존재를 기르고 양육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을 때 결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결혼하는 남녀는 신성한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욕구를 위한 결혼은 문제가 있다고 평가한다.
일반적인 결혼은 성적 욕구의 만족을 위해서 나타나는 경우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인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자들도 신성한 결혼을 함에 있어서는 실패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이성적으로 배우자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배우자를 살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본문

 
 
형제여,
당신의 영혼의 깊이를 알고 싶어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당신은 젊고, 그러기에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이를 가지기에 적합한 사람입니까?
당신은 사회적 규율에 벗어나 성숙한 의식을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사회적 규율에 벗어나더라도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종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지배하는 사람이며, 자신만의 규율을 가지고 늘 자기 검열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려는 이유가, 당신은 본능과 욕구의 만족 때문에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외롭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것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결혼을 통해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렇습니까?

 
저는 당신이 아이를 원하는 이유가 당신의 성숙함에서 비롯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이제 사회적 관점을 벗어나, 스스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여겨서,
즉, 아이를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이를 가지려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겨서 아이를 갖는다면, 아이를 키우는 그 과정은 당신의 성숙함을 증명하는 시험이 될 것이며,
당신이 올바르게 아이를 양육한다면, 아이는 당신의 성숙함을 증명하는 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아이를 올바르게 기르기 위해서,

당신은 사회적 관점에 길들여진 당신을 넘어서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성숙한 존재가 되어야 하며,
성숙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인간과 자신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당신은 단순히 자녀를 낳고 기르기만 해선 안 됩니다.
당신의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의 결혼이 이 과제를 이룰 수 있기를!
  
당신은 자녀가 올바름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게끔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즉 당신은 아이가 자기의 본성을 억압하지 않고,
어떤 보상이 없어도 올바른 이상을 따르려 노력하는,
자신만의 가치관과 규율을 지니면서도 자기 검열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위버멘쉬*를 낳고 기르려는 의지를 가진 두 사람이 하는 것,
위버멘쉬를 낳고 기르려는 의지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존경하면서도 서로를 소중히 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당신이 하는 결혼의 의미이기를 바랍니다.

*부조리를 극복하려 노력하면서 올바름을 추구하는 존재를 말한다.

위버멘쉬를 위한 관계
남녀가 위버멘쉬를 목적하며 결혼하는 것을 차라투스트라는 신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잉여로운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은 이와 다릅니다.
이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결혼>정신적으로 빈곤한 영혼들의 짝지음이자,
오로지 본능과 욕구의 만족을 위해서 나타나는 안타까운 짝지음입니다.
이것을 그들은 결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저들은 말합니다.
자신들의 결혼은 자신들의 신이 맺어준 것이므로 신이 자신들의 결혼을 축복한다고.
제가 보기에, 저들의 신은 자신이 이들을 맺어준 줄도 몰랐는데, 와서 그들을 축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들의 신도 그렇고, 신이라는 덫에 걸린 저들도 그렇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제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하지만 이런 결혼을 어리숙한 자들의 결혼이라며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성숙한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결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기형적 신이 축복하는 결혼
성욕의 합법적인 수단인 결혼에 대해서, 차라투스트라는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제가 신뢰하던 한 남자, 진리를 추구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그를 보았는데, 그가 결혼을 하여 아내가 있다는 것,
그 아내가 위버멘쉬를 의지하는 여자가 아닌, 일반적인 여자와 같다는 것을 보고서,
세상에 온전한 이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올바른 인식을 원했기에, 아무나 만나 교제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자신을 지지하고 지원해 줄 여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욕구에 이끌려 이상적인 관계 구축하려던 자신의 목표를 망쳐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여자를 만나, 여자의 종이 되었고,
이제는 종을 넘어 그 여자를 위해 더 숭고한 노력해야 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남자가 욕구를 위한 결혼을 하고 싶어할 때
무의식 중에라도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결혼하지 않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진리를 추구하다가 진리로 나아가는 삶이 아닌 욕구적 만족에 이르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결혼이라고 합니다.
 
이제 저는 남자들에 대한 하나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구매할 때, 사람들은 판매자에게 당하고 싶지 않아서, 물건을 꼼꼼히 살피고 자신이 이득을 보려는 둥 이성적으로 고르려고 노력하지만,
아내를 고를 때에는 이성적으로 고르지 않고, 감정적으로 고른다는 사실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비이성적인 판단/감정적 판단을 자주 하는 것,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결혼은 이 비이성적 판단의 종지부입니다.
결혼을 통해서 사람들은 긴 어리석음 속으로 나아갑니다.
 

잘못된 만남
성숙하려는 남자가 일반적인 여자를 만난 경우, 성숙하려는 여자가 일반적인 남자를 만난 경우,
각각은 성자와 거위, 성녀와 돼지의 관계로 니체는 묘사하지 않을까?


 
사람들의 이성을 향한 사랑이 올바름에 대한 사랑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의 사랑은 올바름보다는 본능과 욕구를 위한 사랑입니다.
 
사실 최고의 사랑이란 여러분이 더 성숙한 존재가 되려 노력하는 것을 지칭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는 최고의 사랑은,

여러분의 욕구를 미화시키는 것이며,

욕구를 향한 맹목적인 열정을 멋있게 꾸며낼 뿐입니다.
 
여러분은 최고의 사랑, 올바름에 대한 사랑을 해야만 합니다.
우선은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을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인 사랑을 경험해 보면, 그 이상함에 올바름을 향해 나아갈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올바름에 대한 사랑, 이것은 우리를 목마르게 합니다.

올바른 것을 사랑할 수록, 올바름이 지배하는 이상 사회를 바라게 할테니까요.
 
올바름에 대한 갈증, 올바름이 지배하는 이상적 미래를 바라는 것,
형제여, 이것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의지에 따라 결혼한다면, 저는 여러분의 결혼이 신성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위버멘쉬를 사랑하는 자들의 결혼
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쉬를 사랑하는 두 남녀의 결혼이 신성하다고 말한다.


생각해볼 거리들

 
결혼을 원하는 이에게, 왜 질문을 하는가?
왜 승리를 원하는자/자신을 제어하는 자/관능의 지배자/덕의 주인인지를 묻는가?
- 결혼을 하는 사람은 성숙한 자여야 한다고 차라투스트라가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 승리라는 것은 사회적 규율로부터 정직함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정직의 승리.
- 자신을 제어한다는 것은 사회적 규율에서 벗어났음에도 방종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말한다.
- 관능의 지배자는 욕구와 본능을 지배할 수 있느냐, 욕구와 본능에 휘둘리지 않는지를 말한다.
- 덕의 주인은 덕들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덕들을 검열하고 보완/수정해 나갈 수 있는지를 말한다.
- 이 각각의 것들은 앞서 차라투스트라가 언급한 위버멘쉬/성숙한 인간의 모습이다.
- 따라서 성숙한 자로서 결혼을 바라는 것인지 묻는 중이다.
 
왜 소망으로부터 짐승과 절박함이 말을 한다고 하는가? 외로움과 자신과의 불화는 왜 나오나?
- 결혼하고자 하는 소망이 본능적 충동에 의한 것인지 확인하는 질문이라 볼 수 있다.
- 또한 홀로 있기 어려움에 따른 것인지 묻는다.
- 자신과의 불화는 애매한 부분이기는 한데, 성숙하지 않은 채로 하는 결혼은 자기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라 할 수도 있기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승리와 자유가 아이를 열망하길 바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승리는 부조리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을 말한다.
- 자유라는 것은 사회적 규율에서 자유로움을 말한다.
- 이 둘은 곧 성숙한 의식을 지닌 상태를 말한다.
- 즉 너가 성숙한 상태가 되어서 아이를 바라는 것이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다.
 
승리와 자유에 대한 살아있는 기념비란 이야기는 왜 나오나?
-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숙도가 반영이 될 것이다.
- 그에 따라서 아이를 잘 길러 낸다면, 그것은 자신의 성숙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아이는 부모의 성숙함의 기념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앞을 향해서 자신을 심는 것 뿐만 아니라, 위를 향해서도 심어야 하나?
- 앞을 향해서 자신을 심는다는 것은 그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말한다.
- 그리고 위를 향해서도 심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숙하게 자라도록 노력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 즉 단순히 애만 낳지 말고 애가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초의 움직임,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 창조하는 자는 무엇을 말하나?
- 여러번 언급되기는 했지만, 살펴보면 이렇다.
- 최초의 움직임은 어떤 원인을 갖지 않고 제 스스로 일어나는 움직임을 말한다; 제1 원인.
- 따라서 어떤 어떤 행동을 할 때 스스로 판단하여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는 어떤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즉 동력원이 없어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 사회 부조리에 맞서고 거기에 대해서 탐구하고 노력하는 것은 대체로 공감하는 이가 적어서 보상이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말한다.
 
-창조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 그렇게 가치를 창조해 나가면서, 올바른 가치관을 위한 자기 검열과 그릇된 가치관을 수정 보완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다.
 
결혼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나?
- 차라투스트라는 자신들보다 뛰어난 존재를 창조하려는 의지를 결혼이라고 한다.
- 여기서 뛰어난 존재는 위버멘쉬에 더 다가갈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
- 즉 두 남녀가 위버멘쉬적 존재를 낳고 기르기를 약속하는 것이 결혼인 셈이다.
 
- 위버멘쉬에 대한 약속을 하는 이들은 성숙한 존재로서 서로를 위해 노력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존경하면서도 배려하고 조심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 이를 서로에 대한 외경이라고 니체는 표현한다.
 
일반적인 결혼은 왜 가난하고 더러우며, 가여운 안일인가?
- 일반적인 결혼은 위버멘쉬를 목적하면서 나타나지 않는다.
- 그리고 두 남녀 역시 위버멘쉬를 목적하지 않으므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 이런 면에서 이 두 남녀는 정신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있어서 가난하다다고 표현한 듯 하다.
 
- 또 일반적인 의미의 결혼이란 성욕을 위한 관계라고 니체는 본다.
    유고(1882년 7월~1883/84 겨울)
    성교의 가장 허위적이고 기만적인 방식인 결혼은 사랑할 줄도, 우정을 나눌 줄도 모르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결핍을 기꺼이 위장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알맞을 것이다.
- 즉 성욕을 위한 관계가 결혼이란 것이므로 더럽다고 표현한 듯 하다.
 
- 따라서 일반적인 결혼은 성욕을 위한 것이며, 어떤 성숙함도 목적하지 않는 관계다.
- 이러한 부분으로 보면, 이런 결혼은 성욕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는 관계가 된다.
- 이런 점을 가엽다고 봤으며, 안일하다고 본 것 같다.
 
왜 일반적 결혼을 두고 비웃지 말라고 하는가? 일반적 결혼은 성숙하지 못한 결혼이라 비웃을만 하지 않나?
- 성욕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결혼을 비웃기에, 그렇지 않은 결혼이 얼마나 되냐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에게 사내는 왜 성숙해 보였고, 그의 아내를 보고 차라투스트라는 왜 대지가 정신병원으로 보였나?
- 이 부분에서 사내는 차라투스트라와 교제를 한 사내로 보인다.
- 왜냐면 차라투스트라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서술해주기 때문이다.
- 따라서 모든 사내에 대해서 차라투스트라가 성숙하다 말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 아무튼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사내는 진리를 추구하던 사내였다.
-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아내를 보니 위버멘쉬에 대한 의지를 지닌 여자가 아니었다.
- 이러한 상황은 차라투스트라에게 진리를 추구한다던 사내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는 상황, 비이성적인 상황으로 자진해서 나아가는 상황으로 보였던 것 같다.
- 즉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일반적인 결혼을 하는 걸로 봐서, 대지, 즉 세상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곳, 비일관적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보여졌던 것 같다.
 
성자와 거위가 짝을 이룬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하나?
- 여기서 남자가 성자로 지칭되고, 여자가 거위로 지칭된다.
- 하지만 이 남자는 조금 특수한 조건의 남잔데, 차라투스트라에게 "진리를 추구한다"고 인식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즉 모든 남자가 아니라 제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려 한다고 말한 남자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존재의 말과 실제로 진리에 대한 탐구심을 가진 것을 보고, 그를 성자로 여겼던 것 같다.
 
- 여자가 거위로 불리는 것은 여자의 경우 진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만약 여자가 진리나 위버멘쉬에 관심이 있었다면 거위가 아닌 다른 존재로 표현되었을 것 같다.
 
결혼함에 있어서, 그가 천사의 덕을 갖춘 시녀를 구하려 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 니체의 관점에서, 분석이나 탐구에 열중할 수 있는 재능은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더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그런 점에 있어서, 남녀 역할이 구분되는데, 남자가 부조리와 다투고 탐구를 한다면, 여자는 그렇게 탐구하고 지친 존재를 휴식시켜주고, 필요시 같이 생각도 해주는 지원자 역할이 된다.
- 이런 특징의 모습을 천사의 덕을 갖춘 시녀라고 표현한 것 같다.
 
왜 성자였던 사내는 여자의 시종이 되며, 시종을 넘어 천사가 되어야 하나?
- 사내가 여자의 시종이 되는 경우는 욕구적 부분으로 인한 경우로 볼 수 있다.
- 즉, 성욕을 위해서 여자를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 시종을 넘어 천사가 되는 것은 결혼을 하면서 단순히 여자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여성의 방종이나 감정적인 모습을 감수해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여기서 일반적 여성이란, 감정적이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위해서 타인을 기만하기도 하는 존재를 말한다.
 
사랑은 왜 짧고도 여러 번에 걸친 바보짓인가?
- 사랑을 할 때 감정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행동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연애하는 동안에는 이것이 순간적이고 여러번 나타나므로, 짧고 여러 번에 걸쳤다고 표현한 듯 하다.
 
왜 결혼은 여러 번에 걸친 바보짓의 종지부이며 긴 어리석음인가?
- 사랑의 결과물로 결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 문제는 사랑하는 동안의 감정적 관계에 따라서 결혼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 이러한 감정적 관계는 결혼 생활에서 요구하는 이성적 관계로 전환되기가 힘들다.
- 왜냐면 감정을 맞춰주는 관계에서 함께 생각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전환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따라서 그들은 결혼을 후회하게 되는데, 이를 긴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사랑이 고통당하고 숨겨져 있는 신들에 대한 동정이었길 바란다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신은 죽은 것 아닌가?
- 여기서 고통받고 숨겨진 신은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진리/가치를 관장하는 신을 말한다.
- 즉 부조리와 사회적 규율의 강압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올바른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 이는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올바른 인식/성숙함/위버멘쉬를 말하는데, 이를 신적 존재로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신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신이 죽었다는 것은 세간의 사람들이 바라는 신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 종교적 구원을 하는 신, 현 인류를 사랑하는 신 말이다.
 
- 차라투스트라가 언급하는 신은 위버멘쉬적 존재를 가능케하는 신이라 할 수 있다.
- 니체에 따르면, 이 신은자신이 파악한 이상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신으로, 디오뉘소스가 언급되곤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최고의 사랑은 왜 황홀한 비유이자 쓰린 열기인가?
- 사람들이 말하는 최고의 사랑은 본능과 욕구에 대한 미화이자, 본능과 욕구를 향한 열정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 욕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최고의 사랑/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을 넘어서서 사랑해야 한다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자신을 넘어서서 사랑하라는 것은 성숙하려는 의지를 가지라는 말과 같다.
- 왜냐면 넘어서야할 대상으로서의 자신은 그릇된 것들로 점철되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 자신을 넘어서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은 곧 성숙할 의지를 갖기 위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란 이야기가 된다.
- 성숙할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성숙의 필요, 즉 미성숙함에 시달리는 것이 필요하다.
- 따라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은 미성숙함을 경험하기 위해서 무언갈 하라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생각해볼 수 있다.
- 이 미성숙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을 해보라고 말하는 것이라 보인다.
- 즉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미성숙한 자들의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고의 사랑, 즉 위버멘쉬에 대한 사랑은 왜 쓴 맛이 있나?
- 위버멘쉬를 동경하고, 위버멘쉬가 되기 이해서 노력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 사회적 배척을 당할 수도 있고, 위버멘쉬에 대해서 깨닫고 알 수록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혐오가 더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점들이 위버멘쉬로 향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개인에게 있어 유쾌한 것들은 아니라서, 쓴 맛이라고 표현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