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1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1권 18장 의역 (완)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5. 10. 00:12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1권 18장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


 
 

18장 개괄

 
 
18장은 남녀에 대한 니체의 입장을 살필 수 있는 장이다.
 
니체는 여자의 존재의 의미가 출산에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또 니체는 여자가 탐구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기에 탐구보다는 탐구하는 남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설정하라고 이야기한다.
 
남자들의 경우, 남성 특유의 경쟁문화에서 비롯되는 특징에 따라, 자신을 단련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라고 이야기한다.
 
남녀의 사랑에 있어서도 위버멘쉬를 향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위버멘쉬적 존재를 낳고 기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자의 사랑에서 드러나는 맹목성에 대해서는, 남자가 잘 이끌어야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커플로서의 방향성을 잘 갖춘다고 이야기한다.
 
 


 
 

본문

 

누군가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여, 무엇을 그렇게 숨긴 채로 살금살금 다니고 있나?”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제가 숨기고 있는 것은 작은 진리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말하게 되면 온갖 소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진리이지?”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이 진리는 여자에 대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늙은 여인이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여, 당신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아는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을 나누어 주었지 않나.
    그런데 여자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구먼.”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남자들에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늙은 여인이 말했다.
   “내게도 여자에 대해서 알려주시게.
    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불편해 하지 않으며 들을 수 있으니 말이지.”

 

늙은 여인과 마주한 차라투스트라
니체는 진리를 늙은 여인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자신이 발견한 진리의 일부를 진리에게 확인 받는 상황일 수도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아는 여자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해드리지요.
    여자의 존재는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여자란 존재가 어떤 목적에 의해 존재하는지 잘 파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목적을 지니는데,

   여자들은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기 보다는 친교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숙을 바라지 않는 여자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출산입니다.
   그래서 여자에게 남자란 자신의 존재 의미인 출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남자에게 여자는 무엇일까요?
   남성적인 남자는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고, 자신을 단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원하죠.
 
   그런 면에서 여자는 남자의 원하는 것에 부합합니다.
   여자와의 교제를 통해서 남자는 자신의 성숙함을 시험*해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갈 기회를
   마주하게 되니 말입니다.
   따라서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을 시험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남자가 여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성숙함을 시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는 남자는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남자로 제한된다고 볼 수 있다. 

 

   남자들은 부조리와의 싸움을 위해서, 올바름을 추구하기 위해서 양육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의 휴식을 위해서 양육되어야 하구요.
 
   그 이유는 남자들의 관계에 대한 태도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자신을 드높이기 위해서 경쟁하는 반면, 여자들은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서 다름을
   수용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부조리와 다투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기에는 남자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여자의 친교적 관계는 부조리와 다투거나 올바름을 추구하다 지친 남자에게 휴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자는 남자의 휴식을 위해 양육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외의 방식으로 남녀가 양육된다면, 그것은 전부 어리석은 짓입니다.
 
   남성적인 남자*들은 자신에게 너무 쉽게/일방적으로 만족과 재미를 주는 관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만족/재미와 함께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관계를 좋아합니다.

*내적 성숙을 추구하는 남자를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서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논하지 않습니다.
   즉 갈등을 피하는 관계가 대부분인 것이죠.
 
   사람들이 갈등을 피하는 이유는 서로의 불만을 토로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친구와의 관계, 지인과의 관계에서 그런 에너지를 소모시킬 가치가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의 관계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그냥 넘어가주는 것이 낫다고 보죠.
 
   하지만 이런 관계를 남성적인 남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서로 좋게 좋게 넘어가는 관계는 자신의 미숙함을 방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성적인 남자는 서로의 미숙함에 대해 토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관계를 좋아하죠.

   앞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큰 에너지 소모를 이유로 이런 미숙함을 토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토로하고 노력하는 유일한 관계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남녀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위해서 큰 에너지를 쏟고, 남들이 보기에 사소할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서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니까요.
   남녀 사이에서의 갈등을 통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남성적인 남자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기 개발을 위해서 여자와의 관계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
니체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개개의 남녀보다는
남녀에 대한 일반론적 관점에 따라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남녀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말해 본다면,

남자는 아이와 비슷하지만,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자는 아이와 다르지만, 아이를 잘 이해합니다.

 

그 이유를 살피면 이렇습니다.

남자의 경우, 지나친 자신감에 의해 외부 위험에 대해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여자의 경우, 외부 위험에 대한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아이들의 경우, 외부 위험이 위험인지 모르고 과감한 시도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남자들이 자기 효능감에 취해서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 아이들은 어리고 약하다 보니 외부 위험에 대한 대처 능력이 낮은데, 여자들은 아이들의 이러한 면을 알아차리고, 아이들의 처지와 감정에 대해서 잘 이해하게 되죠. 

 

남자는 아이다워야 합니다.

그래야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고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과감성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자신의 가정에서도 부조리하거나 강압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과감한 남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럼 여자들은 이상적 미래를 위해서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여자들도 이상적인 미래를 바라는 존재여야 하는 건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상적 미래를 바라며 올바름을 구하려는 남자들의 관심사에 같이 관심을 가지고 소통을 즐길 수 있는 존재,
   이상적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남자들이 그릇되면 지적도 하고, 응원도 하며 그들이 더 성숙해질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관계가 위버멘쉬*에 대한 의지로 엮인 관계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미래에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하게끔 노력하며 자녀들 역시 올바름을 추구하는 존재로 키우려는 부모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랑에 부조리와 맞서는, 올바름을 추구하는 용기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부조리를 극복하려 하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존재를 말한다.

 

   또 여러분의 사랑에 명예가 함께 하기를!
   여자들의 경우, 명예보다는 사랑을 우선하죠.

   그래서 남자들이 사랑보다 명예를 추구하는 것을 두고 이해하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위버멘쉬가 되길 바라고, 위버멘쉬가 되려는 남자와 사랑을 한다면,

   여러분은 사랑을 하면서 명예를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면서, 얻은 깨달음을 타인에게도 나누기를.

   남들에게 올바른 것을 전함에 있어서 으뜸이 되려고 노력하기를.

   이것이 여러분의 사랑이며, 명예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자와 여자, 아이
남자는 아이와 유사하면서도 아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여자는 아이를 잘 이해하면서도, 아이와 다르다.


 
   남자들에게 말하건대,
   사랑에 빠진 여자를 두려워하십시오.
   사랑하는 여자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 사랑하는 것 외에는 무가치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자의 맹목성을 두려워하며 그들이 너무 맹목적이지 않을 수 있도록 제어해야 합니다.
 
   또 증오하는 여자를 두려워하십시오.
   남자가 증오를 한다면, 순간의 악행/다툼으로 증오를 표출하겠지만,
   여자가 증오를 한다면, 상대를 옥죄는 저열한 행동들로 증오를 표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자의 폭력성을 두려워하며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어떤 이를 가장 증오할까요?
   여자는 자신을 끌어당기면서도 자신을 붙들지 않는 존재,
   자신을 유희로서만 탐하는 존재,
   자신에게 온전히 사랑할 기회를 주지 않는 존재를 증오합니다.
 

   남자는 사랑이 삶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 사랑이 삶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행동함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즉, 남자는 자신이 우선으로 삼는 어떤 것을 두고 노력하려는 경향이 있고,

   여자는 자신이 우선으로 삼는 사랑을 두고 노력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사랑을 위해 좀 더 헌신적입니다.

 

   여자들은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기회,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랍니다.
   그러던 중 여자에게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온전히 노력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자들은 세상이 완전해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탐하기만 하고, 온전히 사랑할 기회를 주지 않는 존재를 증오하는 겁니다.
 
   온전히 사랑할 기회를 갖는 것은 여자에게 새로운 국면을 제공합니다.
   여자의 사색은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면서 깊어지기 때문이죠.
   그전까지 여자의 관심은 깊은 사색보다는 온전히 사랑할 대상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사랑할 사람을 찾기 전까진 사색하는 것보다는 관계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여자의 모습들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남자는 자기 증명을 하려는 본성에 따라 사색을 깊게 합니다.
   그의 사색은 깊이가 있어서, 사색에 몰두하지 않는 여자들은

   이 남자가 하는 사색의 깊이를 어느정도 감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의 사색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
사랑을 중시한다는 것이 여자의 보편적 특징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사랑을 중시하는 경향이 남자에 비해 두드러진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늙은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여러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구먼.
    특히 젊은 여자에게 적절한 말들을 말이야.
 
    신기한 일이야.
    여자를 잘 모르는 차라투스트라가 여자에 대해서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차라투스트라도 여자에게 관심을 두고 파악하게 할 정도라면, 여자라는 건 남자를 매혹하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지닌 거 같구먼.
 
    자네의 이야기에 대한 감사 표시로, 여자에 대한 작은 진리를 이야기하겠네.
    이것 역시 사람들 앞에서 꺼낸다면 소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니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게야.”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어떤 진리이기에 그렇습니까?

    제게도 그 진리를 알려주시죠.”

 

늙은 여인이 말했다.

   “말을 타고 나아갈 때, 채찍이 없다면, 우리의 의사는 말에게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고,

    말과 우리는 따로 놀게 될 것입니다.

    채찍은 그런 면에서 말과 기수의 소통을 돕는 것이지.

 

    사랑에 빠진 여자는 종종 맹목적이게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되면, 성숙해지려는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관계가 나아갈 수도 있네.

    따라서 남자들은 사랑에 빠진 맹목적인 여자들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채찍, 즉 성숙한 리더쉽이 필요하네.

    '남자들이 여자와 교제한다고 한다면, 여자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성숙한 리더쉽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이야기해 줄 진리이네."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늙은 여인

그녀가 전한 진리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남자에게  올바른 관계를 위해 리드할 능력을 갖추라'라는 의미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볼 거리들

 
진리는 왜 어린아이처럼 버릇이 없어서 요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나?
-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소란을 일으키는 진리를 말한다.
- 즉 여성에 대한 진리는 소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여자에게 있는 모든 것은 왜 수수께끼인가?
- 애석하게도 이 문구는 여자의 존재의 가치를 표현하는 문구다.
- 즉, '여자의 존재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서의 문구인 것이다.
- 니체가 보기에 여자는 고등 교육과 관련하여 큰 메리트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권 259절」에서 언급한다.
   "이 관계(소년에 대한 남성들의 연애 관계)가 높이 해석되면 될수록 여성과의 교제는 어린아이의 출산과
    관능적 쾌락이라는 관점에서 그만큼 더 낮게 보여졌다.—여성과의 교제에서는 어린아이의 출산과 쾌락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고려되지 않았다. 정신적인 교제는 없었고, 진정한 연애조차 없었다. 
    (중략)
    여성들에게는 아버지의 성격이 가능한 한 손상되지 않은 채로 계속 살아 있는 아름답고 강한 육체를 낳
    고, 그럼으로써 고도로 발달한 문화에 의한 신경의 자극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막는 과제만이
    있을 뿐이었다."
- 이 구절은 고대 그리스의 남성 문화에서 여자들의 교제는 가치가 낮았으며, 여자들의 역할은 아이를 낳고 이상적 존재로 양육하는 것 뿐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 또 니체는 「유고(1882년 7월~1883/84년 겨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내 형제들이여, 나는 여자들에게 '당신도 위버멘쉬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밖에는 여자를 위로할 줄 모른다."
-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볼 때, 여자의 존재 의미를 출산에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 여자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친교적 관계를 지향하는 여자들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사태가 원하는 위험과 놀이는 무엇이고, 왜 여자는 가장 위험한 놀잇감이 되는가?
- 위험과 놀이에 대해서 해당 구절만으로는 명확한 해석이 어렵다.
- 위험한 놀이에 대한 니체의 언급을 찾아 본다면, 「선악의 저편, 2장 41절」에서 다음의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독립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도록 예정되어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적당한 시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아마 그 시험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놀이 가운데 가장 위험한 놀이일지라도,
    그리고 결국 다른 심판관 앞에서가 아니라,
    증인인 우리 자신 앞에서 행해지는 시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시험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 놀이에 대해서도 살펴본다면, 「선악의 저편, 2장 27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해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중략)
    우리는 정말로 몇 가지 정묘한 해석을 해주는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해야만 한다.
    그러나 언제나 너무 편안하고 바로 친구로 편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좋은 친구들’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처음부터 오해할 수 있는 놀이 공간과 놀이터를 허용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여전히 웃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좋은 친구들을 완전히 없앨 수도 있다.
    —그래서 또한 웃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이에 따라서 위험과 놀이를 해석한다면, 위험은 자기 시험의 뉘앙스로 해석되며, 놀이는 '연습/훈련/진지하지 않은 활동/재미를 위한 활동'의 뉘앙스로 보여진다.
- 그에 따라서 위험한 놀잇감이라는 것도 보면, '자신을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연습상대/훈련상대'의 의미가 아닐까 싶어진다.
 
남자는 왜 싸움을 위해서 양육되고, 여자는 왜 전사의 휴식을 위해서 양육되어야 하나?
- 이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
- 남자의 경우, 경쟁 문화를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봤던 것 같고, 여자의 경우, 친교 문화를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봤던 것 같다.
 
- 이에 대해서 남자도 역시 친교를 중시하는 문화를 갖지 않냐고 말할 수 있어 보인다.
- 여기서 약간의 변호를 해본다면, 니체는 남자들 중에서도 전사 유형의 남자를 지칭하는 듯 하다.
- 즉 진정한 남자/남성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 이에 따르면, 친교적 남자는 남성적인 남자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남자라고 볼 수 있다.
 
- 여자의 역할에 대한 부분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권 424절」아래 구절을 참고해 보면 도움이 될 듯 하다.
   "여자친구이며 조수이고 아이를 낳는 여자이자 어머니이고 가장이며 관리인이어야 하며, 
    게다가 아마 남편과는 무관하게 자기 자신의 일과 직무를 맡아야만 하는 좋은 아내는 동시에 첩이 될 수가 없다.
    (중략)
    자신들의 아내에게서 첩에게서 얻는 것보다 그다지 많은 것을 얻지 못했던 남성들은
    따로 아스파시아와 같은 여성들에게로 돌아섰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성들의 우아함과 정신적 유연성만이 제공할 수 있는,
    머리와 마음을 해방시켜주는 교제로 자극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 이러한 부분으로 보면, 여자의 역할이 남자를 지원하는 역할/쉬게하는 역할을 맡는 게 맞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달콤한 열매는 무엇을 말하나? 그리고 왜 여자는 달콤하면서도 쓰다고 말하나?
- 해당 표현은 관계에 대한 표현으로 보인다.
- 즉, "전사는 달기만 하는 관계는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와의 관계는 달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쓰기도 하다. 그래서 전사들이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 그렇다면 달기만 한 관계, 쓰기만 하는 관계는 무엇일까?
- 우선 관계가 달다는 것은 기분 좋은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따라서 갈등이 없는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 반면 여자의 관계는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고 말하는데, 달다와 쓰다가 대립된다고 본다면, '여자와의 관계는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나쁘기도 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즉 여자와의 관계는 기분 좋은 관계이면서도 갈등이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
- 그렇다면 왜 전사는 갈등이 있는 관계를 좋아하는 것일까?
- 앞서 진정한 남자/남성적인 남자는 위험한 놀잇감으로서 여자를 원한다고 했다.
- 그리고 위험한 놀잇감이란 '자신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연습 상대'를 말한다고 했다.
- '자신을 테스트한다는 것'을 풀어 생각해 본다면,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통해 자신의 미숙한 점을 찾고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가는 그런 시도를 한다'고 볼 수 있다.
- 즉 갈등은 자신의 관계 능력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 그렇다면 왜 하필 여자와의 관계만을 말할까?
- 일반적으로 가장 노력을 요구하고 갈등하는 관계가 남녀관계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자고 맺는 관계가 남녀관계이니, 이를 위한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다.
-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 남녀 관계를 제외하고서는 서로 갈등을 유발했을 때 좋을 점이 없어서, 왠만하면 갈등을 피하려고 하므로, 자신의 관계능력, 성숙도를 테스트하려는 남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선호할 만한 관계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왜 여자가 남자보다 아이를 잘 이해하나?
- 여자와 아이는 공통적으로 약함을 의식하는 존재들이다.
- 그리고 이러한 약함을 기반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데, 그때 여자가 아이의 관점을 보다 빠르게 캐치할 수 있어서 나타난 표현으로 보인다.
 
왜 남자는 아이와 유사한가?
- 남자와 아이는 위험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는 점에서 유사한 특징이 있다.
- 물론 남자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그러하고, 아이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천진난만함에서 그러하긴 하지만 말이다.
 
진정한 남자 속에는 왜 아이가 있나?
- 앞서 말한 위험에 대한 과감함이 진정한 남자에게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 진정한 남자가 아닌 남자들은 위험에 대한 과감성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는 알맞는 해석으로 보인다.
 
- 또한 아이는 놀이를 하는 존재,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즐기는 존재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 이에 따르면 진정한 남자는 숭고한 목표 의식에 따라 행동하지, 어떤 보상을 따르지 않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 남자 안에 숨은 아이를 찾아야 하는가?
- 내면에 아이를 품은 남자는 성숙한 의식을 가진 남자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 이는 1권 1장에서 언급한 아이를 가진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 따라서 이런 남자를 찾고, 위버멘쉬/성숙한 존재로서의 삶을 동경하는 커플이 되라고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것이다.
 
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덕들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보석이어야 하는가?
- 여기서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위버멘쉬의 세계를 말한다.
- 따라서 위버멘쉬 세계의 빛을 받고 반짝이는 존재여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곧 위버멘쉬 세계의 덕을 마주했을 때 반짝거린다는 것으로 보인다.
- 즉 흥미를 지니고 관심을 갖는다는 이야기로 보이므로, 이상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 다르게 말하면, 성숙한 의식을 지닌 존재가 하는 사회 분석이나 세태 분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왜 여자는 순수하고 섬세한 놀잇감이 되어야 하나?
- 놀잇감의 경우, 연습 상대이거나 같이 놀 수 있는 상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에 따르면, 여자는 성숙해지려는 남자와 소통할 수 있는 상대이거나 연습해볼 수 있는 상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앞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논할 수 있는 관심을 지닌 상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 같다.
 
별의 광채는 무엇을 말하나?
- 별의 광채는 위버멘쉬를 말한다.
- 따라서 두 남녀의 사랑 속에 위버멘쉬에 대한 동경도 있기를 바란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두 남녀의 사랑에 용기가 깃들어야 하나?
- 위버멘쉬를 지향한다는 것은 이상 사회를 바란다는 것을 말한다.
- 이상 사회를 바라는 것은 현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겠다는 것을 말한다.
- 그런 점에서 현사회로부터의 배척이 있게 될텐데, 이에 대해서 용기로서 견디길 바란다는 것이다.
 
왜 여자는 명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나?
- 여자는 명예보다는 사랑을 우선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따라서 명예를 중시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왜 사랑에 빠진 여자를 두려워 해야 하나?
- 사랑에 빠진 여자에 휘둘려 성숙하려는 의지가 꺾일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그러므로 성숙하려는 의지를 지키기 위해서, 사랑에 빠진 여자를 두려워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왜 남자는 증오하면 악행을 하지만, 여자는 저열해지나?
-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권 414절」을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좋다.
   "증오하는 여성
    증오 상태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위험하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여성들의 한번 격앙된 적대감은 그 어떤 정당성을 고려해서도 제어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증오는 방해받지 않고 최후의 결말까지 계속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상처 입은 자리(모든 사람과 모든 당파가 다 가지고 있는)를 찾아내어 거기를 찌르는 데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하여 그들의 비수 같이 날카로운 오성이 탁월한 업적을 수행한다
    (반면 남성들은 상처를 바라보는 것도 꺼려하여 흔히 관대하고 화해적인 기분이 된다)."
- 즉 여자의 경우, 증오하는 대상에 대한 적대감이 제어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래서 정도에 지나치는 악행이 연속되기에, 저열해진다고 표현하는 듯 하다.
 
쇠붙이는 왜 자석을 증오하나?
- 이미지를 그려본다면, 자석 근처의 쇠붙이가 자석에 달라 붙은 상태가 아닌, 자력의 영향만 받는 상태를 그려보면 좋을 듯 하다.
- 그러면 뭔가 끌림이 있기는 하지만, 밀접한 관계가 되지 못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이는 여자의 관심을 끌기만 할 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여자를 순종적인 존재로 보는가?
- 여자가 사랑을 인생의 중심에 두는 경우,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자는 순종하면서 표피의 깊이를 찾아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순종하게 되면서 여자는 현실감을 찾아 깊이 있는 사색과 통찰을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자에 대한 통찰을 듣고, 늙은 여인은 왜 여자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하는가?
- 여자를 잘 모르는 차라투스트라도 여자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 이는 곧 차라투스트라도 여자에게 관심을 두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 "즉 여자라는 것은 어떤 남자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왜 여자에게 갈 때에는 채찍을 들고 가야 하는가?
- 앞선 이야기에 따르면, 여자는 사랑에 따라 감정적이고 맹목적일 수 있는 존재이다.
- 그렇기에 여자는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다가도 사랑에 의해서 다른 방향으로 새어나갈 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 따라서 이를 바라보는 남자가 채찍을 통해 말을 다루듯 여자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는 여자를 체벌하라는 것이거나 제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자를 잘 통솔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 따라서 "여자를 잘 리드하는 남성이 되어라"는 이야기로 해석해야 맞아 보인다.
 
ㅡ「차라투스트라, 3권 12장」에서 채찍의 의미에 대해서 참고할 자료가 있다.
     하지만 그대들, 세상에 지친 자들이여! 
     지상의 게으름뱅이들이여! 
     그대들은 채찍질을 당해야 한다! 
     채찍질로 그대들의 발을 다시 생기있게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