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1권 15장 천개이자 하나인 목표
15장 개괄
15장은 선악/사회적 규율에 대해서 살피는 장이다.
니체는 선악이 고안된 것 자체에 대해서 문제삼기 보다는 선악이 지나치게 개인을 간섭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한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의 일원들이 올바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사회적 규율이 있음으로 해서 사회가 원활히 운용되어질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사회가 개인보다 규율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지던 이유도 납득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한다.
결국 사회적 규율 자체는 인간에게 나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회적 규율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이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며, 우리가 사회적 규율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보는 듯 하다.
본문
저는 여러 국가와 민족*을 보면서, 각 집단에는 사회적 규율에 따른 선악에 대한 개념이 있고,
사회적 규율이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고 느낀 것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나라와 민족은 앞서 1권 11장에서 다룬 개념이 연속되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와 민족을 살폈는지 알 수 없지만, 각 집단들의 가치와 규율을 살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집단의 가치관과 규율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가치관과 규율은 인간을 억압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집단의 가치관과 규율은 구성원에게 특정 행동을 강제하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집단에게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집단이 있고, 이 집단이 다른 집단과 마주쳤을 때 또는 집단이 한 개인을 마주쳤을 때,
그 대상이 집단에게 있어 좋은 존재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그 대상과 함께 생활하기 전에 대상의 가치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상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한 후에 판단하게 될 텐데,
그러면 그 집단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판단 기준, 대상이 구성원으로서 좋은지 나쁜지, 대상이 선한지 악한지 미리 판단할 수 있는 기준/척도를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규율의 이러한 유익함에 따라서, 어떤 민족이 스스로를 위한 규율을 가지려 한다면, 이웃 민족의 규율을 가져선 안 됩니다.
왜냐면 이웃의 규율이 자신들에게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자신들에게 올바른 것이 다른 민족에게는 수치스러운 것이자 조롱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이웃민족의 규율을 따르게 된다면, 자신들에게 올바른 것을 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과연 이 민족은 건강한 민족으로서 존속될 수 있을까요?
각 민족에게는 저마다의 규율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들은 타민족으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닌, 자신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만든 가치관과 규율들이죠.
즉 자신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의지, 자신들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힘에 대한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타민족이 보면, 웃음거리가 되고 모욕이 될 것이 규율로 정해진 경우들도 있죠.
*스스로 자립하고 지킬 수 있는 힘에 대한 의지를 말한다.
이렇게 각자를 위한 가치관과 규율이 생기게 되니, 각 민족들은 서로를 이해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가치관과 규율의 차이에 놀라워하며, 다른 이의 가치관과 규율을 망상이자 악한 것으로만 취급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서로 전혀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다른 민족의 가치와 규율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저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죠.
민족의 가치관과 규율에는 그 민족이 가진 지리적 조건과 역경이 반영되어져 있습니다.
민족의 가치관과 규율은 결국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하여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고자 나타난 것인 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민족이 가진 이런 조건들을 잘 이해한다면, 그 민족의 가치관과 규율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단의 가치와 규율은 집단이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으뜸이 되어야 한다는 규율, 친구가 아니라면 누구도 사랑해선 안 된다는 규율을 지닌 그리스 민족은
이를 통해 위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국가를 위해서 충성하라고, 국가를 위해 명예도 버리고 목숨도 걸라는 규율을 가르쳤고,
그에 따라서 전체주의 국가가 되었죠.
집단의 가치와 규율이 역경을 반영한 경우를 보도록 합시다.
진실을 말하고 궁술에 능하라고 말하던 페르시아 민족은
진실을 말하고 궁술에 능하는 것이 소중하고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 이를 규율화하여 대대로 이어가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와 선조의 뜻을 이어 받아 민족성을 유지하라고 말하던 유대민족은
역경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예들은 가치와 규율이 국가의 조건에 따라 가치와 규율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사회의 규율이 담긴 돌 서판
사회마다 저마다의 조건에 따른 가치관/규율들이 있다.
선악과 같은 사회적 가치관과 규율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신에게서 그것을 받은 것도 아니고, 훌륭한 누군가가 어디서 찾아낸 것도 아닙니다.
가치관과 규율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며,
그렇게 사물들은 갖가지 가치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사물을 평가하여 이러한 가치과 규율을 부여하는 존재, 이를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평가하는 자라는 별칭을 갖는 것이죠.
평가를 한다는 것은 가치를 파악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가치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필요한데, 그것은 평가하는 자 본인이 되겠죠.
그래서 평가는 본인만의 기준을 통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만물을 평가하는 여러분은 이미 가치를 창조하는 자들입니다.
평가된 것들, 가치를 부여받은 것들에게는 여러분의 평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이것들은 본래 가치를 지니지 않았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사물을 두고 평가하지 않았다면, 그 사물은 어떤 가치도 지니지 못한 무가치한 것으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평가가 사물들에 있어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요성은 없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치있게 여긴다는 점에서 적어도 인간들 사이에선 유의미함을 지니긴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중심적 가치판단에 대해서 자조적인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평가자가 변하면 가치도 변화합니다.
가치가 변화한다는 것은 기존 가치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의 기준에 따라 평가가 이뤄졌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평가자는 늘 새로운 평가 기준을 놓고 평가를 하게 될텐데, 이는 곧 기존 가치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기존 가치관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예전에는 민족의 특정 인물만이 가치 평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개인이란 개념이 생겨나면서, 이제 개인도 가치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단은 사회적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위한 가치관과 규율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집단을 중시하는 관점에선 사회적 평화와 질서가 개인의 평화와 질서보다 더 오랫동안 추구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수의 이익 속에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 질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이로 인해, 사회는 집단을 개인보다 중시하는 것을 장려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을 중시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기피되게 되었죠.
사회적 가치관과 규율을 창조했던 자들은 사회를 중시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가치관과 규율 속에는 사회의 안정과 화합을 중시하고 사회적 혼란을 배척하는 것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죠.
사회적 규율에 의해 계측되는 시민
사회적 규율을 만든 자는 사회가 평화와 질서 속에서 존속되기를 바랐고,
그 목적 하에 구성원들은 평가되었다.
사회에서 사회적 규율/가치관보다 가장 큰 힘을 지닌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가치관/규율에 의해 나타나는 칭찬과 비난은 괴물과 같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이 칭찬과 비난이라는 폭군의 눈치를 보면서, 통제된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를 위해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 이러한 사회적 규율의 폭압을 제압할 수 있습니까?
누가 사회적 규율의 폭압을 통제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현재에 이르러서 사회적 규율은 개인을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습니다.
칭찬받을 행동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사회적 규율에 억압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사회적 규율은 너무 지나칩니다.
하지만 사회적 규율들이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아닙니다.
각각의 사회적 규율들은 민족을 위해서 나타난 것이니까요.
사회적 규율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우리에게 가혹한 상태인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규율들을 적당히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것들을 통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각각의 규율들이 지나치게 개인을 간섭할 수 없도록,
규율들을 통제할 하나의 목표를 갖게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사회적 규율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인류는 이러한 목표를 사회적 규율보다 앞세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규율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앞선다면 생길 문제들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분명 인류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목표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인간이 사회적 규율을 통제하는 상황에 이를 테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인간다운 인간은 없고, 사회적 규율의 노예로서의 인간만 있지 않겠습니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꼭두각시인 현 인류
이들은 선악의 꼭두각시 인형이지 인간이라 하기 힘들어 보인다.
생각해볼 거리들
왜 민족들은 먼저 평가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나?
- 민족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위해서 다른 민족이나 개인이 자신들 사회에 이로운지 해로운지/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미리 판단하지 않고, 사회로 받아들이고 나서 문제가 생긴다면, 사회 질서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과 신성함, 드높은 것에 대한 이야기는 왜 나오나?
-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사회적 선이 위계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 따라서 선의 조건, 신성함의 조건, 드높은 것의 조건을 나열한 것 같다.
왜 어떤 민족의 곤란함, 지리적 조건을 알면, 민족의 가치관과 규율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나?
- 이 말이 중간에 나오는 이유는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결국 가치관과 규율은 어떤 기회에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란 점을 말하는 듯 하다.
- 즉 사회적 규율이란 것은 어떤 조건 하에서 고안된 것이란 이야기다.
그리스 민족은 왜 질투에 불타는 영혼이 벗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사랑해선 안된다고 말하나?
- 질투의 대상을 벗이 아닌 존재에 두라는 것인데, 크게 본다면 같은 시민/국민/공동체 일원을 제외하고서는 질투하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자신의 이름이 소중하면서도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나?
- 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은 낙타를 잘 다루는 사람을 말한다.
- 그런데 낙타는 1권 1장에서 성숙해지려는 사람을 말한다고 했다.
- 따라서 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은 "성숙해지려는 사람들이 성숙한 이가 되게끔 잘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차라투스트라 역시 이에 대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있기는 하지만, 성숙해지려는 이들이 자신의 말을 잘 수용하지 않기에 곤란해 한다.
- 이 점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민족, 페르시아 민족, 유대민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왜 마지막으로 독일 민족을 언급하는가? 하나의 가치 공유에서 위대해진 경우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문제를 갖는 경우를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는 독일 비평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충성심이 강해야 한다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 이를 통해서 어떤 가치를 사회가 공유하고 중시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치를 평가하는 자는 그저 끊임없이 기존 가치를 파괴하는 자인가?
- 이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 가치를 평가하는 자는 문제가 있는 가치에 대해서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내세운다.
- 무조건적으로 기존 가치를 파괴하는 사람은 아니다.
- 또한 1권 5장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새로 새운 가치관이 적절한지, 기존 가치관들과 모순/충돌을 일으키지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
- 따라서 단순히 내키는 대로 파괴하는 자라기보다는 특정 기준에 입각하여 가치를 평가해 나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사회적 가치관/규율을 싫어하는가?
- 니체는 사회적 가치의 필요성에 대해서 알고 있다.
- 왜냐면 최초의 입법자들이 사회적 존속을 위해서, 사회적 화합을 위해서 규율을 마련했다는 것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이익 속에서 자기 이익이나 챙기려는 사랑 없는 나. 이 '나'는 무리의 근원이 아니라 무리의 몰락이다."
- 그렇기에 이 장의 말미에서도 사회적 규율의 폭압을 저지해야지 사회적 규율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이다.
선악이 행사하는 칭찬과 비난은 왜 괴물같나?
- 칭찬과 비난의 눈치를 보면서 사람들이 강제되기 때문이다.
선악의 괴물은 왜 제압되어야 하는가?
- 선악의 잣대로 인하여 인간은 제약 받으면서 자기 자신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 그러면서 점차 집단의 행복이 우선되고, 자신의 행복은 밀리게 된다.
왜 선악의 괴물에게 족쇄를 채우나?
- 선악의 괴물이 개인에게 막무가내로 침범하면서 생기는 병폐 때문이다.
- 그런데 이 괴물을 죽이지 않고 족쇄를 채운다는 것은 이 괴물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즉 통제되지 않은 선악,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는 선악은 제압 및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왜 괴물의 목에 채울 하나의 목표가 있어야 하나?
- 선악/사회적 규율에는 통제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 이를 통제하기 위해선 선악을 제한할 우선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 그러면 이 가치에 따라서 선악은 활동을 제한받게 될 테니 말이다.
- 선악보다 우선되어야 할 가치로 제시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다.
- 이것은 니체가 주로 언급하는 것인데, 이 자유와 행복은 방종이 아닌 사회적 규율에 의한 성숙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성숙할 방법을 찾고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 따라서 방탕하게 사는 것을 사회적 규율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 혹자는 사회적 규율보다 우선시켜야 할 가치가 위버멘쉬라고 보기도 한다.
- 하지만 위버멘쉬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
- 왜냐면 위버멘쉬는 애초에 사회적 규율을 지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사회적 규율보다 우선될 가치를 제시하라고 했더니, 이미 사회적 규율을 지배하는 존재를 사회적 규율보다 우선될 것이라고 제시하면 부적절하다.
- 따라서 사회적 규율보다 우선될 가치로 위버멘쉬가 제시되어선 안된다.
인류에게 목표가 없다면, 왜 인류가 없는 셈인가?
- 사회적 규율보다 우선되는 가치가 없다면, 인간은 사회적 규율에 계속해서 지배받고 있는 상태의 존재가 된다.
- 그렇게 되면, 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인형만이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극단적으로 보면, 이 세계에는 인형만 존재하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1권 의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라투스트라 - 1권 17장 의역 (완) (창조자의 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0) | 2024.05.08 |
---|---|
차라투스트라 - 1권 16장 의역 (완) (이웃사랑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0) | 2024.05.07 |
차라투스트라 - 1권 14장 의역 (완) (친구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0) | 2024.05.05 |
차라투스트라 - 1권 13장 의역 (완) (순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0) | 2024.05.03 |
차라투스트라 - 1권 12장 의역 (완) (시장의 파리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 2024.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