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입장들 중, 지금과 현재의 규정이 어렵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이를 살피면 아래와 같다.
지금/현재라는 시간은 규정하기 모호하니,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다음의 특징들을 지금/현재의 특징으로 삼는다.
"실시간으로 상호작용 가능하다면 지금/현재다."
즉 어떤 것이 주변의 다른 것과 서로 상호작용한다면, 이 둘은 지금 이 순간에 같이 있는 것이다.
이 규정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갖는다.
"공간상으로 멀어서 서로 상호작용이 어렵다면, 지금/현재의 규정이 모호해진다."
예컨대, 한국의 나의 지금과 아프리카의 누군가의 지금을 명확하게 규정하기란 어렵고, 서로 다른 지금만 존재할 뿐이란 이야기다.
지금/현재는 공간상 관계에 대한 표현이라 시간적 규정은 어려운 게 맞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이라는 것을 규정하려면 한국의 나와 아프리카의 누군가가 서로 지금에 대한 협의를 해야 한다.
왜냐면, 보통 '지금'이라는 것은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할 때 하는 표현인데, 이 두 사람은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 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현재란 표현은 시간적 표현이라기보다는 공간상의 관계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은 실제론 공간상 같지 않지만, 거시적으로 같은 공간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의 어려움과 복잡함에 따라서, 동시/현재/지금이란 것이 허구라고 하는 입장이 있다.
하지만 앞서 살핀 것처럼, 지금/현재라는 것은 공간상의 관계에 대한 표현이며, 시간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공간상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은 같은 시간에 있다는 것이 되므로, 시간적 표현으로 우리가 쓰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현재의 이러한 특징에 따라, 지금/현재에 대해서 시간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즉 지금이란 몇 분인가, 또는 몇 초인가 등으로 증명하려고 나아가게 되면, 이는 전혀 규명되지 않는다.
지금/현재를 규정하기 어렵다고, 시간이 모호한 것은 아니다.
또한 지금/현재의 규정이 모호하다는 것은 측정의 모호함을 말한다.
이는 시간이 모호한 것이 아니다.
시간은 정상적이나, 지금/현재를 규정하려니 모호하다는 것이다.
척도로서의 시간과 세계의 형식으로서의 시간
누군가는 결국에는 지금/현재가 시간이니, 시간이 모호한 것 아니냐고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시간은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척도로서의 시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척도가 재고자 하는 시간이다.
후자를 순수 지속이라고 말하거나, 세계의 형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거울을 보자.
거울에 상이 있으려면, 그 상에 해당되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어떤 척도를 통해서 측정을 하려면, 측정하려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하루/일/주기/시/분/초 등은 측정한 값이다.
태양이 한 바퀴를 도는 주기를 측정하여 하루란 개념이 나온다.
이 하루란 개념은 태양이 한 바퀴 도는 현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통해서 시간을 쟀다는 것을 잘 알기에, 시간이 어떤 현상이나 변화를 통해서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닌, 시간에 따른 태양의 운동에 해당할 뿐이다.
태양의 운동을 통해서 하루란 개념을 얻었지만, 이것은 시간에 따라 보여지는 태양의 운동일 뿐이다.
즉 태양이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적 특징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없다면, 태양은 운동할 수 있었을까?
태양이 졌다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시간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시간 없이 공간만 있었다면, 이는 불가능한 현상이다.
이게 바로 철학에서 말하는 시간이다.
어떤 현상이 가능하게 해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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