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4권 14장 우울의 노래
14장 개괄
14장은 3절로 구성이 되는데, 1절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손님들에게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차라투스트라가 애초에 저들 개개를 두고서 만족하지 않았기에, 각각의 독립적인 존재가 한데 모인다고 하여도 사실 만족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투스트라가 저들을 초대한 것은, 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앞으로 저들의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절에서는 늙은 배우(마술사)가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하고자 하는 모습을 담는다.
이 늙은 배우는 남들 앞에 나서서 위대한 존재인 척하는 존재인데, 차라투스트라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을 드높이고 싶어하는 충동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 좀 더 확실하게 동굴에 모인 손님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주면 좋았을 테지만, 손님들에게 스스로 노력하고 스스로 갈고 닦아라 하는 이야기만 하고 있기에, 이처럼 늙은 배우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절에서는 늙은 배우의 관점에서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을 사회적 관점에서 비평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차라투스트라는 체계도 없고, 본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된다.
따라서 사회적 관점에 따른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제대로 하는 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일하게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평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늙은 배우는 이러한 차라투스트라에게 자신이 왜 끌리게 되었는지, 왜 자신이 그에게 불만을 갖는지를 설명한다.
본문
-1-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그의 동굴 입구 근처에 있었다.
그가 마지막 말을 하고 나서, 자신의 손님들을 피해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아, 이 맑은 내음과 고요함이여!
그런데 나의 동물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리 오라, 나의 독수리와 뱀이여!
나의 동물들이여,
이 고귀한 자들, 이들에게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지 않았나?
저들과 함께 있다 보니, 이 맑은 내음과 너희 동물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정말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동물들이여.”
이때, 독수리와 뱀이 차라투스트라의 곁에 가까이 와서 그를 올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셋은 함께 조용히 밤공기를 마셨다.
왜냐면, 이 바깥의 공기가 저 고귀한 자들 사이에 있는 공기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달빛이 비추는 밤의 산
차가운 공기의 내음에 차라투스트라는 만족하고 있다.
-2-
차라투스트라가 동굴 밖으로 나가자마자, 늙은 배우가 일어나서 주변을 살피더니 교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투스트라가 나갔구나, 고귀한 자들이여!
차라투스트라가 너희를 칭송하던 이름으로, 나도 너희를 칭송해본다.
아, 너희에게 나서서 말하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충동,
그를 깎아 내림으로써 나 자신을 드높이고 싶은 충동 말이다.
나의 이러한 충동을 용서해달라.
이제 나는 너희들 앞에서 이 충동에 따라 말하고 싶구나.
지금이 딱 차라투스트라를 비방할 적절한 때인 것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자제하고 있지만, 부질없는 듯하다.
너희가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 진실한 자들, 자기 영혼을 돌보는 자, 규율로부터 해방된 자들, 이상적인 미래를 갈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더라도,
결국 우리는 삶에 대한 혐오를 지니고 있지 않나?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의 옛 신이 죽어 사라졌음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신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새로운 신을 따르고자 하는 너희들을 나의 충동은 좋아한다.
선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너희를 안다, 고귀한 자들이여
내가 본의 아니게 좋아하게 된 저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우리가 나아갈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괴물 같은 차라투스트라,
그는 종종 나에게 아름다운 성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적인 존재를 따라하려는 충동이 답습할 만한 모습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내가 차라투스트라를 좋아하는 것은 앞으로 따라할 아름다운 성자의 모습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아, 이제 차라투스트라를 비방하고자 하는 충동이 나를 덮친다.
이 비관적인 충동이!
고귀한 자들이여, 이 비관적인 충동이 원한다.
눈을 떠라!
너희를 매혹하려고 나체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감각을 열고 받아들여라!
하루가 저물고, 이제 저녁이 다가온다.
가장 좋은 것을 두고도 저녁이 다가오면, 우리는 우울에 젖어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보라, 고귀한 자들이여.
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이 어떤지 말이다.”
늙은 배우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하프를 집어 들었다.
하프
늙은 배우는 사람들에게 차라투스트라에 대하여 불을 제시하려고 노래를 부른다.
-3-
우리의 시야를 가리던 그릇된 것들이 사라지고,
차라투스트라의 위로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와닿았던 이유는
위로해주는 것들이 늘 그러는 것처럼, 우리의 맘을 위로해주는 부드러운 속삭임이었기 때문이다.
기억하는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자, 차라투스트라여
이상적인 미래가 펼쳐지기를,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또다른 자를 바라며 노력하다가 지쳤던 때를 말이다.
그때 사악한 운명의 태양이 너에게 이렇게 비웃으며 말하지 않았나?
“진리를 구하는 자라고? 너가?
아니! 넌 그저 바보이자 시인일 뿐이다!”
한 마리의 짐승이고,
마을의 가축을 약탈*하며, 살금살금 다니는 존재 말이다.
남들에게 자신을 숨기고 거짓말해야 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사회에 순응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두고 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너가 진리를 구하는 자라고?
아니 넌 그저 바보이자, 시인일 뿐이다.
사람들에게 흥미로울 것들만 말하는 바보이자 시인 아닌가?
거짓되고 과장된 말을 하면서 이상을 논하지 않는가?
그저 이리저리 방황하며 떠도는 바보이자 시인 아닌가?
그런데 너가 진리를 구하는 자라고?
시끄럽게 소리치기만 하고, 어떤 체계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복잡하고 난해하게 말하며, 이성적이거나 냉정하지도 않고,
우리가 따를 만한 신적인 것도 제시하지 않는데?
오히려 너는 진리의 이런 특징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지 않는가?
우리에게 신적인 것, 어떤 체계적인 것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우연으로 나서라고 말하며,
문명화된 것을 넘어서 본래의 인간을 살피라고 말하며,
야생적 존재가 되어 그 속에서 뛰어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사회화된 이들을 노리며 그들을 꾀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하늘 높은 곳에서 대지를 응시하는 독수리처럼,
사회를 응시하며 있다가 사회에 순응한 이들 중 누군가가 취약한 상태에 놓이면,
그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서는 이 어린 양들을 탐하지 않는가?
그렇게 이 어린 양의 무지함에 대해 무섭게 화를 내지 않는가?
너는 이런 독수리 같고 표범 같다.
시인의 모습을 하며 수천가지의 모습을 보이지만, 이것이 너의 진정한 모습 말이다.
너는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보고, 양과 같이 순종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너는 너의 고유함을 위해서 신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인간을 보면
그가 신적인 존재로 거듭나게끔 돕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라고만 하며 곤란하게 하고,
사회에 순종적인 존재를 보면, 이를 비판한다.
너는 이렇게 모두를 비판하고 곤란하게 하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너의 행복 아닌가?
표범과 독수리의 행복, 시인과 바보의 행복 말이다.
시야를 가리던 것들*이 사라지고,
그렇게 밤이 되어 사색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일상의 부조리를 적대시하며 은밀하게 사색하였다.
*그릇된 이해와 생각을 말한다.
현자에 대한 집착, 사람들 사이에서 위대한 존재로 군림하고 싶던 동경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부조리에 지치고 병들어 사색하다가 나 자신에 대한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부조리하게 사는 내 모습이 역겹다는 것.
차라투스트라여 기억하는가?
나 스스로 사회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면서
모든 사회적 진리로부터 벗어나게 되면서
내가 그때 너의 가르침과 위로를 얼마나 원했었는지 말이다.
그런데 너는 내게 명확한 방법을 제시해주지 않는구나.
너는 바보이자 한갓 시인에 불과하다.
표범과 독수리
일반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차라투스트라가 야생적인 존재로 보일 뿐이다.
생각해볼 거리들
왜 좀 더 높은 인간들은 모두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나?
ㅡ차라투스트라 입장에서는 저들 모두가 자신의 기준에 뭔가 완전히 부합되지 않는 모습의 존재로 보인다.
ㅡ그렇기에 같이 있으면서도 뭔가 이질감을 주는 상태로 보여 진다.
ㅡ이를 냄새로서 표현한 것 같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이제야 자신의 짐승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고 느끼게 되나?
ㅡ차라투스트라의 짐승들은 긍지와 지혜를 말한다.
ㅡ차라투스트라의 동굴에 온 손님들의 경우, 이러한 긍지와 지혜가 부족한 상태다.
ㅡ그런 면에서 차라투스트라에게 더 흡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히 긍지와 지혜인 독수리와 사자다.
늙은 마술사는 왜 차라투스트라가 나가자마자 말을 하는가?
ㅡ「차라투스트라, 4권 13장」에서 차라투스트라가 했던 말은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고,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가며 살아가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ㅡ물론 큰 틀에서의 방향은 정해주었지만, 정확한 행동 지침은 주지 않은 것이다.
ㅡ하지만 늙은 마술사와 다른 사람들은 정확한 행동 지침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추종자형 인간이기에, 불만이 생기게 될 수 있다.
ㅡ그런데 늙은 마술사의 경우, 사람들 앞에서 선동하거나 아는 체하는 삶을 살아온 자이기에,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고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끌리게 만드려는 경향이 충동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왜 마술사의 악마는 차라투스트라의 적대자인가?
ㅡ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하며 비방을 하는 악마이기 때문이다.
ㅡ이를 통해서 차라투스트라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드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ㅡ그렇기에 차라투스트라의 적대자이다.
왜 늙은 마술사의 악마는 자신의 때를 만났다고 하나? 왜 늙은 마술사는 사악한 정신과 부질없이 싸우고 있나?
ㅡ차라투스트라가 이야기를 마치고, 마침 자리를 비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ㅡ이제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자신의 속내를 말해도 될 시점인 것이다.
ㅡ늙은 마술사는 자신의 역겨운 모습에 질려서 차라투스트라를 찾으러 왔다.
ㅡ그렇기에 지금 자신의 충동, 차라투스트라를 비방하고 위대한 존재인양 말하려는 충동에 시달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남들 앞에 나서려는 충동, 남들에게 관심을 받으려는 충동이 작용하기에, 이 충동을 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왜 그대들 모두 자신처럼 커다란 구역질로 고통받고 있다고 하나?
ㅡ여기서 말하는 구역질은 혐오감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ㅡ즉 동굴에 모인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사회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ㅡ모든 노력이 덧없게 됨에 따른 혐오감, 노력을 해도 알아주는 이들이 없다는 점에서 오는 혐오감, 왕으로서 생활하면서 얻는 혐오감, 부자로서 살아가면서 얻는 혐오감 등등이 각각의 인물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옛 신은 죽었지만, 어떤 새로운 신도 요람에 있지 않다는 것은 왜 늙은 마술사의 사악한 정신이 좋아하는가?
ㅡ옛 신이 죽었지만, 어떤 새로운 신도 요람에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따르던 종교적 신이 사라졌는데, 이를 대체할 존재가 없다는 이야기다.
ㅡ이는 곧 따를 대상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인데, 현재 모인 사람들은 스스로 사유하고 자립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절대적으로 자신들이 추종할 만한 대상을 찾는 사람들이다.
ㅡ추종자형 인물들인 이들은 현재 「차라투스트라, 4권 13장」에서 언급된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따를 무언가를 제공해주기를 바랐는데, 차라투스트라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ㅡ물론 차라투스트라 입장에서는 제시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바라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ㅡ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따를 대상이 부재된 상태고, 그런 점에서 늙은 마술사의 충동,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불만을 말하려고 하는 이 충동은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ㅡ그래서 마술사의 사악한 정신이 지금 상황을 좋아하는 것이다.
늙은 마술사는 왜 차라투스트라를 본의 아니게 사랑하게 된 괴물이라고 말하나? 왜 차라투스트라를 사랑한 것은 사악한 정신 때문인가?
ㅡ늙은 마술사의 경우, 사람들 앞에서 위장하는 존재, 위대한 존재인 척 연기하는 존재다.
ㅡ이 존재의 경우,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 척 연기를 하려면, 연기하려는 대상에 대해서 연구가 필요하다.
ㅡ그런 측면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연기하고자 하는 캐릭터, 아름다운 성자의 캐릭터로서 손색이 없었고, 그래서 그를 관찰하고 배우면서 나중에 자신이 연기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래서 그를 추종하고 따르고 있는 상태이며, 이를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ㅡ차라투스트라가 괴물로 인식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따를 만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ㅡ그래서 괴물이 성자의 탈을 썼다고 말하는 것이다.
ㅡ물론 늙은 마술사는 자신의 연기가 역겹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타고난 본성이기에 또 역겨운 짓을 하려고 차라투스트라를 찾은 것이다.
왜 늙은 마술사의 악마는 발가벗은 채 다가오기를 갈망하나?
ㅡ늙은 마술사는 사람들을 선동하려고 하는데, 그때 선동되게 해야 하므로 유혹적이어야 한다.
ㅡ이 유혹적이려는 경향을 발가벗은 상태로 말하는 걸로 보인다.
ㅡ그리고 각각의 존재들이 어떤 것에 유혹되는지 모르므로, 사내다운지 여자다운지 모른다고 말한다.
왜 늙은 마술사는 눈을 떠보라고, 감관을 활짝 열라고 하나?
ㅡ자신의 충동에 따른 이야기를 잘 살펴보고 들어보라는 이야기다.
날이 저물고, 모든 것에게 저녁이, 최고의 것에게도 저녁이 온다는 건 뭘 말하나?
ㅡ날이 저물면 저녁/밤의 시간이 오는데, 이 순간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시간이다.
ㅡ그래서 인간은 하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ㅡ따라서 저녁과 밤은 사색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ㅡ이 시간이 되면 하루에 있었던 모든 것은 사색의 대상이 된다.
ㅡ그리고 하루 중 가장 좋았던 최고의 존재나 최고의 순간 역시 사색의 대상이 된다.
ㅡ이에 대한 표현으로 보인다.
ㅡ그런 면에서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역시 사색의 대상이 되고, 이에 늙은 마술사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차라투스트라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사색하는지를 제대로 봐달라고 말하는 중인 것이다.
맑게 갠 대기에 이슬의 위로가 땅에 내려 앉은 것은 무얼 말하나?
ㅡ이슬에 대해서 먼저 말한다면, 이슬은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ㅡ이에 대해서는 「차라투스트라 4권 10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대는 언제, 지상의 모든 것 위에 떨어져 내린 이 이슬방울을 마시려는가?
언제 이 별난 영혼을 마시려는가?
언제쯤인가, 영원의 샘이여!
그대 명랑하면서도 소름 돋는 정오의 심연이여!
언제쯤 그대는 내 영혼을 그대 속으로 되마시려는가!"
ㅡ여기서 그대/영원의 샘은 이상적인 미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상적인 미래가 언제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거두어 들일 것이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ㅡ왜냐면,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지만, 아직 이상적인 미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ㅡ어떻든 이슬이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면, 이슬의 위로는 차라투스트라가 세상을 향해 위로하고 가르침을 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ㅡ맑게 갠 대기의 경우, 구름이 끼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고, 구름은 태양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태양은 올바른 이해를 말하므로, 맑게 갠 대기는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상태를 말한다.
ㅡ즉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상태, 정신이 맑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때 이슬의 위로가 땅에 내려 앉았다고 하니, 정신이 맑아진 상태에서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 늙은 마술사에게 전해진 것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왜 이슬의 위로는 눈에 띄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게 내려 앉았나? 왜 온화한 위안자가 모두 그러듯이 보드라운 신발을 신고 있다고 하나?
ㅡ이슬의 위로를 차라투스트라의 위로/가르침이라고 한다면, 늙은 마술사가 이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저항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ㅡ그럼 왜 차라투스트라의 위로/가르침을 저항없이 잘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ㅡ이유는 간단하다.
ㅡ차라투스트라의 말이 자신을 달래주는 데 있어 특효였기 때문이다.
ㅡ보드라운 신발을 신고 내려앉는 것처럼 자신에게 부드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대 뜨거운 심장은 천상의 눈물과 이슬방울에 햇살에 그을리고 지친 채 목말라했다고 하는데, 무얼 말하나?
ㅡ여기서 말하는 그대 뜨거운 심장은 차라투스트라를 말한다.
ㅡ차라투스트라가 올바름에 대한 열의를 가졌던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ㅡ천상의 눈물과 이슬방울에 목말라 했다고 표현이 되지만, 실제로 차라투스트라가 바라던 것은 천상의 눈물과 이슬방울이라고 할 수 있다.
ㅡ여기서 천상의 눈물은 이상적인 미래를 향하게 하는 운명이 아닐까 싶다.
ㅡ이렇게 보면, 이상적인 미래/이상을 쫓는 운명이 차라투스트라를 불쌍히 여기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의미가 전개된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운명이 자신을 살피고 돌보면서, 차라투스트라에게 이상적 미래의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길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ㅡ관련된 내용으로, 「차라투스트라, 3권 15장」의 내용을 참고해볼 수도 있다.
오, 그대 신나서 들떠 있는 자여,
넘어져서 자비를 구하는 나를 보라!
내 기꺼이 그대와 함께 더 사랑스러운 오솔길을 걷고 싶으니.
한적하고 다채로운 덤불을 지나는 사랑의 오솔길을!
아니면 저기 황금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춤을 추는 호숫가를 따라서
ㅡ이에 따르면, 천상의 눈물은 이상적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운명이 자비를 베풀길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ㅡ이슬 방울의 경우, 이슬을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존재로 취급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슬 방울을 바란다고 했으므로,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존재를 바랐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과 함께 수확할 동료를 찾고 싶다고 말한 구절을 떠올리면 좋다; 「차라투스트라, 서문 9장」.
창조자는 길동무를, 함께 추수할 자를 찾는다.
그의 곁에서 모든 것이 무르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백 개의 낫이 없어서, 이삭을 손으로 쥐어뜯으면서 짜증을 내고 있다.
(중략)
차라투스트라는 함께 창조하는 자들을 함께 추수하는 자들을, 함께 축제를 벌이는 자들을 찾는다.
무리나 목자나 송장과 함께 해서 무엇을 창조해 낼 것인가!
ㅡ차라투스트라는 이상적 미래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자신과 함께 할 동료가 나타나길 바라면서 지치게 된다.
ㅡ이를 언급하는 구절로 볼 수 있다.
저녁 태양이 악의 어린 눈길로 차라투스트라의 주변에 떨어져서는 조롱한 이유는 무엇인가?
ㅡ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동료와 이상 사회를 구현하려고 분주히 노력하다가 좌절하게 되는데, 이때 자신은 동료와 이상 사회를 구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차라투스트라, 2권 22장」.
ㅡ이때 자신의 능력 부족을 생각하며 자기 비하적 상태가 되는데, 이를 태양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묘사하고 있다.
ㅡ그런 점에서 태양은 이상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운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고, 저녁의 태양이 언급되는 이유는 저녁이라는 사색하는 시간에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운명이 자신의 무능력을 조롱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한 사람의 시인이자 짐승이라고 불리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판단력을 갖춰서 노력하라고만 할 뿐, 사람들이 따를 만한 명확한 가치나 규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ㅡ그런 면에서 사람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시인적 존재로 인식된다.
ㅡ그리고 또 차라투스트라는 사회적 규율과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 중에서 취약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다가가 비판하고 개선되게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짐승/표범과 같다고 인식된다.
ㅡ그러면서 사회를 벗어나서 인간의 본래 본성을 살피라고 하는 점 역시 문명 속의 인간을 야생으로 되돌리는 모습과 같아져서, 짐승같다고 평가된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알록달록 소리치며, 거짓 하늘과 거짓 땅 사이를 헤메는 바보로 여겨지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어떤 체계적인 가치와 규율,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기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대로 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고, 떠돌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ㅡ그렇기에 사람들은 차라투스트라를 따를 만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듯하고 이에 따라 바보로 불린다고 볼 수 있다.
침묵하는, 단단하고 매끄럽고 차가운 형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 신의 기둥과 신의 문지기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왜 나오나?
ㅡ침묵함은 근엄함을 말하는데, 차라투스트라의 올바름을 추구하는 방법은 근엄하고 위엄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가볍고 경박스럽다.
ㅡ그렇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리의 특징과 다르다고 보여지는 듯하다.
ㅡ또 진리라는 것은 체계를 이루어 쌓아가고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투스트라는 맥락 속에서, 조건 속에서 진리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므로, 차라투스트라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발전해가는 느낌보다는 매순간 조심해야 하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매끄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ㅡ게다가 단순히 이성적으로 진리에 접근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신체의 반응에 초점을 두고서 앎을 판단해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진리에 대한 접근법과는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ㅡ또 신적인 뭔가를 제시하고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진리에 대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입장과 비교한다면, 많은 차이가 있다.
ㅡ즉 진리에 대한 일반적 특징과 다른 진리론을 제시하고 있는게 차라투스트라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진리의 입상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신전보다 황야에서 편안해하고, 고양이처럼 우연 속으로 뛰어드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ㅡ여기서 언급되는 것은 기존 진리와 반대되는 차라투스트라의 진리론을 말하는 것이다.
ㅡ차라투스트라는 기존 진리관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어떤 규율이나 고정된 가치 속에서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ㅡ그런 면에서 고정된 가치와 규율을 제시하는 신전이나 도시를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ㅡ그리고 매 순간 속에서 숨겨진 필연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순간들은 그 속에 숨겨진 필연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우연한 것으로만 남게 된다; 「차라투스트라, 3권 12장 3절」과 「차라투스트라, 3권 5장」을 참고하자.
「차라투스트라, 3권 12장 3절」
나는 저들에게 내가 심혈을 기울였던 것 전부를 가르쳤다.
인간에게서 파편이고 수수께끼이자 가공할 우연인 것을 하나로 압축하고 집
약하는 것을.
시인이자 수수께끼를 푸는 자이자 우연의 구원자로서 나는 저들에게 미래를
창조할 것을, 그리고 이미 존재했던 것 전부를 창조를 통해 구원할 것을 가르
쳤다.
「차라투스트라, 3권 5장」
나는 차라투스트라, 신을 부정하는 자다.
나는 내 그릇 속에서 모든 우연을 요리한다.
우연이 거기서 잘 요리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을 내 음식으로 반긴다.
실로 많은 우연이 당당하게도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내 의지는 더 당당하게 우연에게 응수했지.
그러자 우연은 애원하며 무릎을 꿇었다.
내 곁에서 머물 곳과 내 마음을 얻기를 애원하고,
그리고 아부조로 "보라,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저 벗이 벗을 찾아온 것이니!"
라고 설득하면서.
ㅡ하지만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접근은 오히려 혼란스럽고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ㅡ사람들에게는 어떤 현자들이 딱 정해준 진리를 보고 따르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원시림의 냄새를 맡고, 맹수들 사이에서 다채롭게 근사하게 달린다는 것은 뭘 말하나?
ㅡ원시림은 문명을 벗어난 영역으로 볼 수 있고, 이에 따라서 문명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탐구하고 있다고 말하는 구절로 볼 수 있다.
ㅡ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비문명적 존재, 야생적 존재로 보여지는 것이다.
왜 독수리는 오랜 심연을 응시하는가?
ㅡ여기서 심연은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러면서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사회적 존재를 대상으로 삼아 급습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듯하다.
ㅡ그렇게 그 사람의 그릇됨을 비판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인간을 신으로 보고 양으로 보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신을 버리고 스스로 신이 되거나, 신에 따르는 양이 되거나 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신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차라투스트라, 4권 6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런 신이라면 꺼져라!
차라리 신이 없는 게 더 낫다.
차라리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하겠다.
차라리 바보가 되고, 차라리 나 자신이 신이 되리라!’
ㅡ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신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ㅡ그렇기에 신이 되려고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온 개인은 스스로가 신이 되는 방법을 전혀 찾지 못하므로,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ㅡ또 사회적 가치와 규율에 순종하고 있는 자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비판받으면서 찢기고 있는 상태에 놓인다.
ㅡ문제는 이렇게 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이 괴롭히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ㅡ신이 되려고 차라투스트라에게 찾아가도 답은 안 주고, 사회적 규율에 따르고 있으면 와서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ㅡ그렇기에 차라투스트라의 행복이라고, 표범과 독수리의 행복이라고 언급되는 것이다.
낫 같은 초승달은 무엇을 말하나? 초승달은 왜 낮에 대한 적의를 품나?
ㅡ낫은 수확을 위한 것이며, 초승달이 뜬 시점은 저녁/밤이다.
ㅡ사색의 시간인데, 낫이 있으므로, 생각을 하고 거두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낮에 대한 적의의 경우, 낮은 활동을 하는 시간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즉 여기서 말하는 늙은 마술사는 자신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에 대해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ㅡ왜 적의를 품는지 생각을 해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위장한 채로 속이고 있거나, 사람들의 부조리를 보더라도 감안해주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ㅡ이런 상황에서 초승달이 뜬 시간에 사색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왜 늙은 마술사는 하나의 진리로 인해서 그림자 쪽으로 가라앉나?
ㅡ늙은 마술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활동하면서 부조리한 모습을 허용해 주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위대한 척하며 산다.
ㅡ그러한 생활에 지치면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는데, 이때 얻는 진리가 이런 생활이 역겹다는 것이다; 늙은 마술사가 얻은 하나의 진리에 대해서는 「차라투스트라, 4권 5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대를 잘 알고 있다.
그대는 모든 사람에게 마술사가 되었지만,
그대 자신을 속일 거짓과 간계는 그대에게 더는 남아 있지 않다.
그대 자신은 그대의 마술로부터 풀려난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유일한 진리로 구역질을 수확했다.
그대의 어떤 말도 진짜가 아니지만,
그대의 입, 그러니까 그 입에 달라붙어 있는 구역질만큼은 진짜다."
ㅡ이에 따라서 점차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향보다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그래서 늙은 마술사가 차라투스트라를 찾게 된 것이다.
늙은 마술사가 모든 진리로부터 추방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왜 나오나?
ㅡ이 부분은 해석이 조금 다른 것으로 보인다.
ㅡ독일어를 보면, 해당 구절은 “Dass ich verbannt sei Von _aller_ Wahrheit,”에 해당된다.
ㅡ이 구절을 해석해 보면, “내가 모든 진리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로 해석할 수 있다.
ㅡ’dass’라는 단어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ㅡ이에 따라서 본다면, 차라투스트라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여 기억하는가?
나 스스로 사회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면서
모든 사회적 진리로부터 벗어나게 되면서
내가 그때 너의 가르침과 위로를 얼마나 원했었는지 말이다.
그런데 너는 내게 명확한 방법을 제시해주지 않는구나.
너는 바보이자 한갓 시인에 불과하다.
원시림과 표범에 대하여 참고할 수 있는 구절
「선악의 저편, 5장 197절」
사람들은 맹수나 맹수 같은 인간(예를 들면 체사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열대의 온갖 기이한 동물이나 생물 중에서도 가장 건강한 이들의 근저에서 ‘병
적인 것’을 찾거나 심지어는 그들에게서 생득적인 ‘지옥’을 찾고자 하는 한, 사람
들은 ‘자연’을 오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도덕주의자는 이렇게 해왔다.
도덕주의자들은 원시림이나 열대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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