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4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4권 12장 의역 (완) (만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8. 17. 17:29

ㅡ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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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4권 12장 만찬


         
12장 개괄

 

 

12장은 주요한 내용이 전개된다기 보다는 흐름상 삽입된 장으로 보여 진다.

 

차라투스트라가 초대한 저녁인데, 11장에서는 차라투스트라와 우측 왕의 진지한 이야기만 너무 오가게 된다.

이에 대해서 절망을 예언하던 예언자가 나서서 진지함에 빠져든 상황을 깨뜨린다.

 

그러면서 식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차라투스트라는 평소 말하던 검소한 모습이 아니라, 여유롭게 호화롭게 식사를 즐기려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고독 속에 있던 차라투스트라조차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기분내며 저녁을 즐기려하는 것을 보게 된 부를 버리고 가난으로 나아간 설교자는 차라투스트라의 태도에 대해서 지적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행동은 잔치를 벌이고픈 기분에서 나타난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의도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이야기한다.

 

우측 왕은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지 않고 또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말하지 않는 모습에 감탄한다.


 

 

본문

 

 

이 지점에서 예언자가 차라투스트라와 그의 손님들의 인사를 중단시켰다.

그는 시간이 없다는 듯이 앞으로 나섰고, 차라투스트라의 손을 붙잡고 외쳤다.

 

    “차라투스트라여,

     너는 지금 주어진 것보다 다른 어떤 것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구나.

     하지만 내게도 지금 주어진 것보다 다른 어떤 것이 더 필요하다.

 

     너는 너를 찾아 먼 길을 떠나온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았나?

     그런데, 말 잔치만 하고 저녁 식사를 끝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여기 모인 너희들도 고독, 부조리, 절망에 따른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할뿐이다.

     아무도 배고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예언자가 이렇게 말하자, 차라투스트라의 동물들은 멈칫거리다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왜냐면, 그들이 가져온 것들이 한 명의 예언자를 배불리 먹이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언자가 이어 말했다.

    “목이 마른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기서 물이 지혜의 말처럼 끊임없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와인이다.

 

     모두가 차라투스트라처럼 물만 마셔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은 피곤하고 시름하는 사람들에게도 적합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와인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즉각적으로 우리를 회복하게 한다.”

 

예언자가 와인을 바란다고 하자, 말을 아끼던 좌측 왕이 말을 했다.

    “와인에 대해서는 나와 나의 형제, 우측 왕이 준비했다.

     나귀에 가득 싣고 왔으니 걱정마라.

     다만 빵이 없구나.”

 

차라투스트라가 웃으며 대답했다.

    “빵 말입니까?

     종교를 벗어난 은둔자가 빵*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종교적 의미에서 빵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빵은 '농사를 짓는, 사회에 정착한 자들'의 먹거리라고 보는 듯하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고기로도 먹고 삽니다.

     마침 제게 두 마리의 어린 양이 있습니다.

     그것을 도살하여, 샐비어로 양념하여 요리합시다.

     저는 이를 좋아합니다.

 

     곁들일 뿌리채소와 과일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또한 깨어 먹을 견과류나 대화 중에 나눌 수수께끼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식사를 준비하도록 합시다.

 

     식사 준비는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왕들도 저와 함께하는 자리에선 그래야만 합니다.”

 

이 제안을 모두가 반겼다.

하지만 검소한 생활을 바라는 설교자는 고기와 와인, 향신료를 거부했다.

 

만찬을 준비하는 사람들

차라투스트라와 그의 손님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의견을 나눈다.


 

설교자가 농담조로 말했다.

    “미식가가 따로 없구나.

     이러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 고독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너가 전에 ‘소박함은 찬양 받을 지어다’ 라고 한 것을 나는 이해한다.

     그리고 왜 거지를 없애고 싶어하는지도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을 하려고 그런 것이었나?”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기분을 내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당신이 당신의 습관을 고수하고 싶다면, 그래도 됩니다.

     곡물을 씹고, 물을 마시며, 당신만의 방식을 칭송해도 됩니다.

     그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저와 같은 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지요.

 

     저와 같은 의식을 지닌 사람은 강한 존재이면서도 가볍게 거니는 존재입니다.

     올바름을 위한 싸움과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축제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음울하거나 헛된 상상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일에도 준비되어 있는, 건강한 의식을 지닌 온전한 사람이어야합니다.

 

     최고의 것*은 저와 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속합니다.

     만약 그것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구해올 테죠.

     역겹지 않은 생각, 그릇된 이해가 없는 앎, 그릇된 이해를 물리칠 생각들, 가장 아름다운 진리들을 말입니다.”

*올바르고 이상적인 것들을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우측 왕이 놀라며 말했다.

    “정말 놀랍다.

     현자의 입에서 강압적이지 않은, 이런 지혜로운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현자에게서 가장 놀라운 경우는,

     그가 영리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고하지 않는 경우*다.”

이때 나귀가 악의적으로 “예-”하고 울었다.

*사회에서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자들은 대체로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잘 하였기 때문에, 우측 왕은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에 놀라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최후의 만찬이라 불리는 긴 잔치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종교에서 언급된 최후의 만찬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올바름 추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최후의 만찬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기려고 한다.


생각해볼 거리들

 

차라투스트라는 다른 것보다 더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ㅡ「차라투스트라, 4권 11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바라는 존재가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자신과 함께 올바름을 위해서 노력할 존재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ㅡ이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동사, 익사, 질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건 뭘 말하나?

ㅡ동사는 고독에 따른 고통, 익사는 부조리에 따른 고통, 질식은 절망에 따른 고통을 말한다.

ㅡ이들 모두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정신적인 고통인데, 현재 차라투스트라와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에만 신경 쓰고 있다며 지적하는 것이다.

 

왜 예언자는 포도주를 마시고 싶어하나?

ㅡ예언자는 절망을 예언하는 자인데, 포도주를 통해서 자신의 절망, 시름을 잊고 싶어서다.

ㅡ지친 자와 시든 자에게 물이 소용없다는 것은 이들에게 활력을 주려면, 취하게 만드는 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홀로 있는 자에게 없는 것이 빵이라고 하나?

ㅡ여기서 말하는 빵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빵, 생명의 빵이나 성체와 관련 지은 듯하다.

ㅡ은둔자는 사회적/종교적 규율을 벗어난 존재기에, 종교와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빵이 없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기로도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ㅡ고기는 수렵 생활에 따른 산물을 말하고, 이는 도시 외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ㅡ그런 점에서 고기로도 산다는 것은 도시 외에서 스스로 규율을 가지고서도 살 수 잇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양념과 뿌리식물과 과일을 언급하게 되나?

ㅡ예언자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충분히 대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ㅡ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대중적 방식이라서, 부를 버린 설교자에게 지적 받는다.

 

깨뜨릴 호두와 풀어야 할 다른 수수께끼도 부족하지 않다는 건 뭘 말하나?

ㅡ호두의 경우, 정말 견과류를 말하거나 사람들의 선입견이 강한 그릇된 이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수수께끼의 경우, 의문이 생기는 화제를 말하는 걸로 보인다.

ㅡ결국 저녁 식사에서 우리가 함께 떠들 재밌는 주제도 많다는 이야기다.

 

자발적 거지는 왜 고기와 포도주, 양념을 반대하는가?

ㅡ자발적 거지는 설교자로, 이 존재는 소박한 삶을 살면서 지혜를 추구하는 자다.

ㅡ그런데 현재 차라투스트라가 보이는 모습은 소박하지 않고 되려 대중적이다.

ㅡ이를 지적하는 것으로, 결국 차라투스트라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대중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냐 묻는 것이다.

 

ㅡ이에 대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이 모여 기분을 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며, 자발적 거지의 의문을 일축한다.

ㅡ그리고 그만의 방식을 존중하는데, 이는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 모습이기에 우측 왕에게 칭송받는다.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이는 왜 강한 뼈대에 가벼운 발을 가져야 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올바름을 추구하는데, 이때 강한 의지를 지녀야 하고, 사회적 규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ㅡ강한 의지를 강한 뼈대라고 표현했고, 사회적 규율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가벼운 발로 표현했다.

 

싸움과 축제를 즐기는 자라는 건 뭘 말하나?

ㅡ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자는 올바름을 위해서 그릇됨과 싸우는 자다.

ㅡ그래서 그릇됨과의 싸움을 즐겨야 한다.

ㅡ축제의 경우, 미래의 존재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차라투스트라, 1권 21장」을 참고하여 이해하면 좋다.

     모두가 죽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도 죽음은 아직도 축제가 아니다.

     인간은 가장 아름다운 축제를 벌이는 법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완성을 가져오는 죽음,

     살아있는 자에게 자극이 되고 서약이 될 죽음을 보여주겠다."

 

     완성을 가져오는 자는, 희망하는 자와 서약하는 자에 둘러싸여 승리에 찬 죽

     음을 맞는다.

 

     이렇게 죽는 법을 사람들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죽어가는 자가 살아있는 자들의 서약을 축성하는 자리가 아니

     라면, 어떤 축제도 열려서는 안 된다!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자는 왜 음울한 자나 몽상가가 아니어야 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올바름을 추구하면서 올바름이 지배하는 이상 사회를 그린다.

ㅡ그런 면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절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희망 찬 일이다.

ㅡ그렇기에 이러한 존재들은 음울하지 않고, 절망적이지도 않다.

 

ㅡ또한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이들이 그리는 미래는 이미 영원회귀의 진리를 통해서 확실성이 확보되고 있다.

ㅡ즉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ㅡ그런 점에서 현실성 없는 몽상가여서는 안 된다.

 

최상의 것은 왜 차라투스트라와 그 부류의 몫인가? 최고의 양식, 가장 맑은 하늘, 가장 장력한 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은 무엇인가?

ㅡ최상의 것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기에, 차라투스트라와 그 부류의 몫이라고 언급한다.

ㅡ최상이 아닌 것은 그릇됨을 따르는 자들도 얻을 수 있다.

 

ㅡ최고의 양식의 경우, 우리가 먹고자 하는 양식을 말한다.

ㅡ이는 역겹지 않고, 섭취했을 때 만족감을 주는 것을 말한다.

ㅡ역겨운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할 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으므로, 최고의 양식은 올바른 이해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ㅡ가장 맑은 하늘은 구름이 없는 하늘을 말한다.

ㅡ구름은 태양의 빛을 가리는데, 태양은 올바른 이해를 선사하는 것이다.

ㅡ그런 점에서 올바른 이해가 충만한 상태, 올바른 이해만 지닌 상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ㅡ가장 강력한 사상의 경우, 그릇된 생각들을 몰아낼 수 있는 생각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ㅡ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경우, 진리를 여인으로 표현하기에, 아름다운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정리한다면,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부류는 그릇되지 않은 이해, 올바른 이해가 가득한 상태, 그릇된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생각,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측 왕은 왜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영리하면서 나귀 같지 않다고 하나?

ㅡ나귀의 경우,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존재를 말한다.

 

ㅡ이에 따라서 보면, 차라투스트라가 설교자의 지적을 듣고도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고, 설교자의 입장을 존중해 주면서, 설교자를 위해서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입장을 분명히 전하고 있기 때문에, 우측 왕은 차라투스트라를 칭송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ㅡ그릇된 자라면, 불만을 가진 상대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거나 불만을 가진 상대에 맞춰서 말을 이리저리 바꾸는 모양새를 보였을 것이다.

 

왜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면서, 만찬에서는 좀 더 높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만 전해졌다고 하나?

ㅡ기독교의 최후의 만찬의 패러디로, 차라투스트라도 최후의 만찬을 했지만, 기독교적이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