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4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4권 9장 의역 (완) (그림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8. 13. 12:50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4권 9장 그림자


         
9장 개괄

 

 

9장은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운명을 살아가는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림자는 진리와 이상을 쫓기 위해서 나아가다가 차라투스트라와 같이 세상에 실망하고,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목표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회의감과 절망감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들이 우울해질 때마다 가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왜냐면, 미래의 이상 사회는 분명 다가올 것이라고 기대하기에, 충분히 노력할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삶은 곤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즉, 언제 올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서 지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 역시 이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그렇기에 그림자와 함께 저녁을 보내면서 막연함에 지친 그림자가 안정을 취하게 하려고 한다.

 


 

 

본문

 

 

설교자가 차라투스트라의 지팡이를 피해 도망치고,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혼자 남았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차라투스트라여,

     멈추어 달라, 잠깐만 기다려 달라!
     나다.

     너의 그림자, 미래의 차라투스트라다!”

 

차라투스트라는 소리를 듣고도 기다리지 않았다.

산 속의 많은 사람이 있는 것에 불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아 나의 고독은 어떻게 된 것인가?

     내가 머물던 이곳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고, 너무 시달리고 있다.

     나 홀로 머물 새로운 곳이 필요하다.

 

     미래의 나가 날 부른다는 게 무슨 대수인가?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지 나는 관심이 없다.

     난 나의 길을 갈 뿐이다.”

 

그렇게 차라투스트라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림자도 차라투스트라를 향해 뛰기 시작했고, 그래서 결국 설교자,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 순으로 달리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달리던 중,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우스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깨달았고, 진심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은둔자와 성자들 사이에서는 고독과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곤 하던데,

     나도 고독 속에서 우스운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이렇게 도망치고 쫓는 우스운 상황에 놓이다니.

*은둔자들과 성자들이 홀로 있기 위해서 옹색한 변명을 대거나 쭈뼛대는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 역시 너무 사람을 겪다보니 자신을 쫓는 그림자를 피하려고 달리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왜 그림자로부터 달아나는가?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왜 그림자를 두려워해야 하나?

     게다가 그림자는 나보다 앞서 나갈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그림자를 피해 달아나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여러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서 피로감을 느껴 달아난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우스운 행위에 웃었고, 재빠르게 멈춰섰다.

빠르게 멈춰선 차라투스트라에 놀란 그림자는 땅에 쓰러질 뻔했다.

그림자가 너무 빠른 속도로 바짝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차라투스트라가 그림자를 보았을 때, 그는 유령을 본 것처럼 놀랐다.

그림자는 검은 형체였는데, 속이 빈 채로 굉장히 야윈 모습이었으며, 생기를 잃은 듯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가 격하게 놀라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죠?

     왜 당신은 자신을 미래의 차라투스트라라고 하는 겁니까?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림자가 말했다.

    “내가 이러한 모습인 것을 용서해달라.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너의 취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상을 쫓아 떠도는 자다.

     항상 이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마땅히 나아갈 곳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

     떠돌아다닌 걸로 치면, 나는 예수처럼 되기에 모자란 게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영원하지도 유대인도 아니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는 영원히 떠돌아야 하는 것인가*?

     머무는 곳 없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올바름을 추구하는 운명에 따라 살며 노력하지만, 그 노력에 따른 성과가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곧 차라투스트라가 2권 22장에서 겪은 상태와 같은 것이다.

그림자는 절망하는 상태의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 이 세상에 내가 머물 곳이 없구나.

     나는 이미 나는 이미 모든 곳에 머물러 봤었고, 언제 떠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내게서 받아가기만 할 뿐, 아무것도 내게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모든 것을 주었고, 남아있는 것이라곤 없는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와 그림자

그림자는 절망에 빠져서 앙상한 몰골로 차라투스트라와 마주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여,

     나는 오랫동안 너가 나아간 길을 따라 나아가고 있다.

     너와 같은 운명을 사는 것을 두고, ‘다른 삶을 살까’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너와 같은 운명에 따라 살고 있다.

 

     나는 너처럼 고독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올바름을 향해 차가운 고독 속을 걸었던 것이다.

 

     나는 너처럼 사회에서 금지한 것, 사회에서 고약하다고 칭하는 것, 저 먼 미래의 것을 향해서 나아갔다.

     이런 내가 덕을 갖췄다고 한다면, 금지된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 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너처럼 숭배물을 부쉈고, 모든 가치와 규율을 전복시켰으며, 개인의 행복을 쫓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범죄를 넘어서는 가장 위험한 짓을 한 것이다.

 

     나는 너처럼 사회에서 말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다.

     악한 것도 잘 살펴보면 선한 것이 되지 않던가?

     사회에서 부여한 의미와 가치는 그저 사물에 부가된 껍데기일 뿐이다.

     어쩌면 악한 것 자체가 인간이 부여한 껍데기일지도 모른다.

 

        ‘고정된 참은 없고, 모든 것이 상황 속에서 참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고, 이성적이려고 노력했다.

     아,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나 자신과 인간이 부끄러웠나?

 

     이성적인 사색 속에서 선함과 수치심, 이에 대한 믿음은 모두 사라졌다.

     아, 내가 한때 가졌던 거짓된 순수함, 선한 자들이 지녔다는 거짓된 순수함과 그들의 고귀한 거짓말은 사라졌다.

 

     나는 최대한 진리를 쫓아 나아갔다.

     그러다 결국 진리가 내 머리를 차버렸다.

     세상은 진리를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진리가 나를 강타했을 때, 나는 영원회귀의 진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너무도 많은 것이 나에게 밝혀졌다.

     더 이상 어떤 것도 나와 상관이 없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더는 살아있지 않다*.

     그러니 어떻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뜻이 같은 존재들은 과거에 존재하여 지금은 죽은 사람이란 것을 말한다.

 

     나는 원하는 대로 살거나, 아예 살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가장 성스러운 자도 원하는 것이다.

 

     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의욕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향할 곳이 있는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 순풍이 있는가?

     아,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안다.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피곤함과 안주하려는 마음, 흔들리는 이상을 향한 의지, 허우적대는 날개, 절망이 아닌가?

 

     이상 사회를 구현하려는 것,

     차라투스트라여 너도 알다시피, 이것이 나의 시련이었고, 나를 갉아먹었다.

     어디에 이상 사회가 있는가?

     나는 묻고 찾았지만, 그것을 찾지 못했다.

 

     아, 영원한 반복 속에서 느껴지지만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상 사회를 향한 노력은 어쩌면 헛된 것이 아닌가?”

 

순풍이 부는 바다

목표를 지니는 존재만이 자신에게 이로운 것과 그릇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림자의 이야기에 차라투스트라의 얼굴은 침울해졌다.

차라투스트라가 슬퍼하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나의 그림자였군요*.

     당신이 겪을 위험은 결코 작은 것들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방랑자여!

 *차라투스트라는 그림자의 진술에서 자신과 같은 운명을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인정한 것이다.

 

     당신은 오늘 끔찍한 낮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더 끔찍한 저녁이 오지 않게 합시다.

 

     당신의 상태에서는 차라리 현생에,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축복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저 붙잡힌 범죄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편안하게 자며, 안전을 즐기지 않습니까?

 

     조심하십시오.

     그릇된 생각이 당신을 저 붙잡힌 범죄자들처럼 편협한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편협하면서도 확실한 것들이 당신을 유혹할 테니 말입니다.

 

     당신은 목표를 잃었습니다.

     아 당신에게 어떻게 상실의 아픔을 견디게 하고 보상해야 할지.

     당신은 목표를 잃으면서 노력할 의지도 잃지 않았습니까?

 

     이 가엾은 올바름 추구자여,

     이상을 찾아 헤매는 자, 지친 나비*여!

     오늘 저녁에 휴식과 안식을 취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제 동굴로 오십시오.

     저 길이 제 동굴로 가는 길입니다.

*1권 7장에서 언급되는 나비와 같다.

 

     저는 당신을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목표를 잃으면서 오는 절망감이 제게도 영향을 미치려고 하니까요.

 

     혼자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절망감이 사라지고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녁에 다시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절망을 잊고 춤을 추도록 합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먹구름이 걷히는 하늘

그림자가 뿜어내는 절망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벗어나고자 한다.


생각해볼 거리들

 

왜 차라투스트라는 그림자로부터 달아나나?

ㅡ후술되는데, 차라투스트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핑계로 달아나지만, 그림자를 두려워한다.

ㅡ그래서 달아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그림자는 영원한 반복 속에서 나타나는 후대의 차라투스트라라고 할 수 있다.

ㅡ차라투스트라가 후대의 자신인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자의 절망으로부터 자신의 안정감을 빼앗길까봐 그런 것으로 보인다.

ㅡ즉 자신을 괴롭게 할 것 같기에 피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도망치다가 은둔자와 성자의 우스꽝스러운 일을 지적하는가?

ㅡ은둔자와 성자는 고독을 지키려고 남들을 피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남들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짓을 한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그림자가 자신보다 더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겠는가?”라고 묻나?

ㅡ이 부분은 번역이 조금 다른 것 같다.

ㅡ독일어를 보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겠느냐?”라는 의미보다는 “긴 다리를 가진 것 같다”는 의미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Auch dünkt mich zu guterletzt, dass er längere Beine hat als ich.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나보다 더 긴 다리를 가진 것 같다.

ㅡ이에 따라서 살펴보도록 하자.

 

ㅡ그림자는 후대의 자신이다.

ㅡ후대이기에 현재보다 시간이 지난 상태고, 이로써 더 많은 탐구자들의 이해와 통찰을 통해 좀 더 이해력이 좋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ㅡ긴 다리의 경우, 잠언을 이해하기 위한 능력으로 볼 수 있는데, 차라투스트라보다 더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림자는 차라투스트라보다 더 이해력이 좋은 상태, 능력이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ㅡ긴 다리와 관련해서는 「차라투스트라, 1권 7장」을 참고하면 좋다.

     산맥에서 가장 짧은 길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긴 다리를 가져야 한다.

     산봉우리는 잠언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잠언은 크고도 높게 자란 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차라투스트라가 눈과 내장으로 웃었다는 건 무슨 의미로 볼 수 있나?

ㅡ눈은 표정을 나타낸다면, 내장은 본심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내장은 욕망/욕구/내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따라 본심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ㅡ이에 따라서 표정도 진짜 웃고, 본심도 진짜 웃었다는 이야기가 되며, 진심으로 웃었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림자는 왜 너무나 마르고, 거무칙칙하며, 텅 비어 있고, 간신히 견디고 있다고 하나?

ㅡ후술되지만, 그림자는 자신의 모든 앎을 남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적절한 피드백을 받지 못해서, 실망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절망하고 있다.

ㅡ이러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자는 왜 방랑자인가? 왜 목적지도 고향도 없이 길 위에 있다고 하나?

ㅡ그림자는 후대의 차라투스트라로,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는 또다른 존재다.

ㅡ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운명을 사는 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안식처, 고향으로 이상 사회가 언급된다.

ㅡ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계에는 이상 사회가 보이지 않기에, 목적지도 고향도 없다고 이야기가 된다.

ㅡ이로써 머물 곳이 없게 되는 차라투스트라의 운명을 지닌 사람들은 길 위에 머문다고 말한다.

 

영원한 유대인은 누구를 말하나?

ㅡ예수를 말한다.

ㅡ예수가 영원한 유대인인 이유는 유대인이면서, 삼위일체의 존재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왜 그림자는 늘 길 위에 있어야 하나?

ㅡ그림자는 이상사회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ㅡ차라투스트라의 운명 자체가 이상 사회를 찾는 운명이다.

 

왜 대지는 둥근가?

ㅡ언급되는 내용에 따르면, 그림자는 바람에 휘감겨 흩날리게 되는 존재다.

ㅡ그림자는 이상 사회에서 머물려고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떠돈다.

ㅡ이를 바람에 떠밀려 다니는 것으로 묘사한다.

ㅡ그런 점에서 머물 곳이 있다면, 바람은 떠돌아 다니지 않게 된다.

 

ㅡ하지만 현생에서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있으므로, 현생을 대지로 비유한다면, 대지에서 그림자가 바람에 흩날리게 될 때, 흩날리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 없다고 표현할 수 있다.

ㅡ흩날리는 것을 잡아주려면 무언가 튀어나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현생은 전혀 그런게 없는 상태기에, 둥글다고 표현하는 듯하다.

 

왜 그림자는 여러 표면 위에 앉았는데, 먼지처럼 거울과 유리창 위에서 잠을 잤다고 하나?

ㅡ그림자는 거울과 유리창을 통해 매끄러운 표면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이는 앞서 대지가 둥글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ㅡ즉 언제 닦이거나 바람에 날려갈지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림자는 왜 차라투스트라의 뒤를 따라 날고 걸었나?

ㅡ같은 운명에 처한 존재이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삶을 산다.

ㅡ그런데 차라투스트라가 더 앞서 살던 존재기에,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는 뒤를 따라 날고 걸었다고 말한다.

 

왜 그림자는 차라투스트라에게서 숨기도 했나?

ㅡ차라투스트라로서의 삶을 피하려고 했던 것을 숨으려고 했다고 표현하는 듯하다.

ㅡ하지만 결국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나아가니, 자신을 최선의 그림자라고 표현하는 듯하다.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멀고도 추운 세상을 다녔다는 건 뭘 말하나?

ㅡ멀고도 추운 세상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고독한 세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멀다는 것은 먼 미래, 이상을 말한다고 할 수 있고, 춥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키는 대로 겨울 지붕과 눈 위를 다리는 유령과 같이” 라는 말은 뭘 말하나?

ㅡ고독 속에서 올바름과 이상을 찾아 내키는 대로 다녔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금지된 것, 가장 고약한 것, 가장 먼 곳은 뭘 말하나? 왜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했다고 하나?

ㅡ금지된 것은 사회에서 금지한 것, 고약한 것은 사회에서 고약하다고 한 것, 가장 먼 곳은 먼 미래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ㅡ이에 따라서, 이상/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을 차라투스트라처럼 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말과 가치와 거창한 이름에 대한 믿음을 잊어버렸다는 건 뭘 말하나? 악마가 허울을 벗으면 그의 이름 또한 떨어져 나간다는 건 뭘 말하나?

ㅡ사회에서 제시하는 가치와 의미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ㅡ악마의 경우도, 좀 더 생각해보면, 악마가 아닌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즉 사회에서 부여한 가치나 의미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것도 참이 아니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은 뭘 말하나?

ㅡ이것은 사회에서 제공하는 어떤 것도 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ㅡ그러면서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은 가치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왜 그림자는 자주 빨간 게처럼 벌거벗은 채 있었다고 하나?

ㅡ그림자는 차가운 물 속에 머리와 심장을 담그는데, 이는 이성적인 사고와 감정을 갖는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그에 따라서 사회적 가치나 의미를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게 있는데, 이를 마주하게 되면서 그림자는 사회와 인간에 실망하여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이를 통해서 사회적 선함과 수치심, 거짓된 것들이 그림자에게서 사라지게 된다.

 

진리는 왜 그림자의 머리를 차버리나? 왜 그림자는 때로는 거짓말을 하려고 했나?

ㅡ머리를 찬다는 것은 뒤통수를 맞다, 허를 찔리다 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이는 결국 진리를 믿고 따르다가 당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진리를 파악하고 알리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가 틀려버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ㅡ이를 통해서 절망과 더불어 노력의 헛됨을 얻게 되는데, 후술되는 내용은 노력의 헛됨을 말하기 때문이다.

 

ㅡ이에 따라서 본다면, 그림자는 절망을 느꼈고, 그에 따라서 거짓된 것, 사회적/종교적 규율에 따라서 살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ㅡ이는 거짓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ㅡ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운명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고독으로 나아가 영원회귀의 진리를 얻게 된다.

ㅡ이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림자에게 많은 것이 명료해졌는데, 어떤 것도 상관없게 되었나? 왜 그림자가 사랑하는 것 중에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나?

ㅡ그림자는 영원회귀의 진리를 얻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이해가 생기게 된다.

ㅡ이를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초연해지게 된다; 왜냐면 영원회귀 속에서 자신은 현생이 아니라 후대를 위한 노력만을 하고 사라지면 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ㅡ또 영원회귀 속에서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인물은 동시대에서 같이 살기 어렵다.

ㅡ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존재는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데, 동시대에서 나타나지 않으므로, 대체로 죽었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다.

ㅡ그런 점에서 살아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ㅡ이런 상황이다 보니 외로워지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왜 그림자는 ‘하고 싶음’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나?

ㅡ그림자는 자신의 현생에서 무언가를 얻지 못하므로,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듯하다.

 

지쳐버리고 뻔뻔한 심장, 불안정한 의지, 파닥거리는 날개, 부러진 척추는 무엇을 말하나?

ㅡ지쳐버린 심장은 피곤함을 말하고, 뻔뻔한 심장은 안주하려는 마음으로 보인다.

ㅡ불안정한 의지는 이상을 향하려는 의지의 불안함, 허우적대는 날개는 비상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마지막으로 부러진 척추는 제대로 활동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고 보이며, 따라서 절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고향을 찾아내려는 탐색은 재난이고, 그림자를 먹어 치우나?

ㅡ고향은 이상 사회인데, 이상 사회를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노력의 덧없음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ㅡ노력의 덧없음은 인생의 방향을 잃는 것이기에 재난이라고 부를만 하다.

 

ㅡ또 그림자는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그림자를 먹어 치우듯이 그림자가 스스로를 소모하게 만든다.

ㅡ이러한 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고향은 영원히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ㅡ영원회귀 속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운명을 지닌 자들이 계속 노력할 것이기에 이상 사회가 올 것임이 가늠되기는 하는데, 언제 올지 알 수가 없기에 막연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그림자에게 고약한 낮시간을 보냈다고 말하나?

ㅡ그림자는 현재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다.

ㅡ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부정적인 경험을 했기에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고, 이를 차라투스트라가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왜 정주하지 못하는 자는 왜 끝내 감옥조차 행복한 곳으로 여기게 되나?

ㅡ정주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정한 곳에 자리잡지 못한다는 것으로, 그림자나 차라투스트라는 이상 사회를 찾으려고 다니지만, 자신들이 머물만한 곳이 없음을 알게 된다.

ㅡ이에 따라서 고독 속에서 떠돌게 되는데, 이럴 바에는 그냥 감옥 속에 있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ㅡ여기서 감옥은 사회와 진짜 죄수들을 가둬둔 곳을 말한다.

ㅡ즉 사회 속에서 적응하며 사는 게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ㅡ왜냐면 적어도 고독이 주는 고통을 받지 않고,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된 상태로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편협한 믿음에, 경직되고 강력한 망상은 뭘 말하나?

ㅡ앞서 말한 것처럼, 고독할 바에는 사회로 돌아가는 게 더 낫지 않냐는 생각을 말한다.

ㅡ이는 그릇된 것으로, 고독을 피하기 위해서 그릇됨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ㅡ저 생각은 ‘편협하지만 확고한 모든 것’으로 다시 표현되는데, 이는 ‘그릇된 것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삶을 안정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림자는 지쳐버린 나비인가?

ㅡ나비는 중력을 이기고 나는 존재를 말하는데, 중력이 사회적/종교적 규율을 말하므로 사회적/종교적 규율을 이기고 날아다니는 존재, 즉 차라투스트라와 비슷한 존재를 지칭한다.

ㅡ그러나 현재는 절망과 노력의 헛됨을 느끼며 우울해하고 있으므로, 지친 나비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왜 동굴에서 춤판을 벌이나?

ㅡ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림자가 우울에 빠진 상태기에, 그를 고양시키기 위한 행위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