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4권 11장 정오
11장 개괄
11장은 앞서 차라투스트라가 마주 쳤던 인물들과 동굴에서 다시 만나는 상황이 그려진다.
차라투스트라는 「차라투스트라, 4권 2장」에서 올바름 추구자의 외침을 듣고서 그를 찾으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다.
동굴 앞에 있으니 다시 올바름 추구자의 외침이 들리는데, 자신이 조우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섞이면서 난 소리였다고 말한다.
이는 곧 「차라투스트라, 3권 12장 7절」에서 언급되었던 내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로써 차라투스트라가 찾고 도우려는 존재가 단순한 특징을 지니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 복합적인 특징을 지니는 존재라는 점이 다시금 언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동굴 손님들은 차라투스트라의 통찰력에 대해서 칭송한다.
이 과정에서 차라투스트라를 경배하려고 하지만, 이를 바라지 않는 차라투스트라는 그들로부터 물러선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찾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진정 자신이 바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말한다.
또한 자세히 보면, 영원회귀를 통해서 후대의 자신이 어떤 환경 속에서 나타나게 될 지도 언급하고 있다.
즉 현재 모인 자들의 후손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곧 「차라투스트라, 3권 13장」에서 언급되는 영원회귀 속에서의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이 좀 더 현실적으로 서술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본문
늦은 오후가 되어서,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자신의 동굴로 돌아왔다.
동굴 앞에 다다라서, 차라투스트라는 이전에 들었던 외침을 듣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외침은 동굴에서 나는 소리였다.
외침은 자세히 들어보니 다양한 비명이 섞인 것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처음 들었던 외침이 많은 소리들로 구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동굴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는 그가 지나쳤던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두 왕, 올바른 존재처럼 보이려는 늙은 배우, 늙은 교황, 자기 경멸자, 되새김을 배우려는 설교자,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 절망의 예언자, 그리고 당나귀가 있었던 것이다.
자기 경멸자는 왕관과 자주색 띠를 두르고 있었다.
자기 경멸자들은 자기 경멸을 함과 동시에 자신을 꾸며대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독수리는 이 음울한 무리들 사이에서 털을 세우고 불안하게 서있었다.
왜냐면, 올바름을 추구하는 긍지가 대답할 수 없는 이상하고도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뱀은 독수리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모든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 하나하나를 살펴보고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놀랐다.
사람들은 차라투스트라가 말하기를 경건하게 기다렸다.
동굴
올바름 추구자의 외침을 쫓던 차라투스트라는 마침내 동굴로 돌아온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절망하는 자들, 유별난 자들이여,
제가 들은 외침은 여러분들의 외침이었던 것입니까?
이제 알겠습니다.
제가 찾던 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는 제 동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존재가 말입니다.
*이는 현재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에 모인 존재들이 하나의 존재가 될 때에만, 차라투스트라가 찾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교에 단순히 반감을 갖거나 자기 경멸만 하는 존재는 차라투스트라가 찾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제 동굴 안에 있다는 건 놀랄 일은 아니긴 합니다.
제가 행복에 이르는 앎을 세상에 뿌려 그가 제게 오도록 유혹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여러분은 서로가 불편한 듯하군요.
절규하는 자들이여,
여러분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누군가 와야 겠군요.
여러분을 웃게 하고 즐겁게 만드는 자,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자, 바람과 같이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자, 바보라 불리는 노인 저 차라투스트라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을 앞에 두고서 이런 오만한 말을 하는 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왜 이런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지 공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모습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절망하는 자의 모습은 이를 보는 누구든 자신을 더 나은 자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자를 위로하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나은 존재라고 여기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괜찮은 존재라고 느끼는 것, 이건 여러분이 제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자, 제 말에 너무 화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도 제가 선물을 드릴 테니 말입니다.
여기 이곳은 제가 다스리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과 밤에는 여러분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제 동물들이 여러분을 섬길 것이며, 제 동굴은 여러분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제 집에선 누구도 절망하게 두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공격받지 않게, 올바름을 추구하는 운명 속에서 좌절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안전, 이것이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첫번째입니다.
다음으로는 사회적 규율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여러분을 도우려고 뻗는 제 손입니다.
제 손을 잡고 일어서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환영합니다, 나의 손님들이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며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환영인사 이후로, 손님들은 다시 한번 인사하고 경건하게 침묵했다.
웃으며 인사하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동굴에 온 손님들에게 웃으며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이로써 언급되는 것이 안전과 희망이다.
우측 왕이 그들을 대표해서 차라투스트라에게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고 인사를 건네 주는 것을 보고, 너가 차라투스트라임을 확신했다.
너는 우리 앞에서 너 자신을 낮추었다.
그래서 우리의 존경심이 무색해지게 되었지.
그러나 너처럼 긍지를 가진 자 중에 누가 스스로를 낮출 수 있겠는가?
그러한 겸허함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눈과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이러한 겸허한 태도를 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너를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너를 보기 위해 왔다.
음울한 우리의 눈을 희망차게 만들어주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너를 보았고,
이로써 우리의 모든 절규가 끝이 났다.
이제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활짝 열린 채로 기뻐하고 있다.
이제 곧 우리에게 용기가 솟아날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여,
지구상에서 올바름을 향한 의지보다 더 기쁘게 자라나는 것은 없다.
이 의지의 자라나는 것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올바름을 향한 의지로 인하여, 세상이 생기롭게 된다.
차라투스트라여,
너와 같은 사람은 소나무로 비유할 수 있다.
말없이 오랫동안 강인한 모습으로 외로이 서있는,
가장 멋지고 유연한 줄기를 지니고 있는,
끝끝내 초록의 가지를 뻗어내는,
폭풍과 뇌우가 있는 높은 곳에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뛰어난 답을 하는,
명령하는 자이자 끝내 승리하는 자로서의 소나무로 말이다.
아, 누가 이러한 존재의 성장을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인가?
너란 존재로 인하여,
절망한 자나 실패한 자도 감동하여 생기를 되찾고,
혼란을 겪던 자도 안정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란 존재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자가 대체 누구입니까?'
너가 언젠가 아포리즘과 앎을 나눠준 자들
홀로 또는 둘이서 은둔하던 자들 모두가 자신의 심장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아직 살아 있는가?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면, 삶에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왜 그는 오지 않는가?
오래전부터 영원회귀를 통해 세상에 다시 온다고 말을 해놓고는 말이다.
고독이 그를 삼켜서 나타났음에도 우리가 그를 찾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를 찾으러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사람들이 너를 찾음으로써, 너의 고독이 허물어지고, 이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올바름 추구자들이 다시 생기를 찾는 것이 보인다.
사회가 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사람들의 화두 속에 머무르게 되겠지.
우리 절망하던 자들도 너의 동굴에 온 후로 더는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가 올바른 길로 나아갔고, 그리하여 너의 말대로 더 나은 자들이 올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더 나은 자들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신과 같은 자들, 올바름을 갈망하며, 그릇됨을 혐오하고, 노력의 헛됨을 느끼게 되는 자들.
그래서 세상에 절망했지만, 다시 너를 통해 희망을 배우는 자들이 말이다!”
우측 왕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손을 잡고선 입을 맞추려고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깜짝 놀라며 왕을 물리치고 뒤로 물러났다.
높은 산까지 차오른 바다
우측 왕은 사회의 이슈로서 차라투스트라가 다뤄질 것을 두고서, 차라투스트라의 산에 물이 차오를 것이라고 표현한다.
잠시 후 손님들 앞으로 다시 돌아왔고, 시험하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손님들, 고상한 존재들이여,
독일어로 명확하게 말하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기다린 존재는 여러분이 아닙니다."
이 말에 좌측 왕이 속삭였다.
“독일어로 명확하게 말을 한다고?
독일어는 섬세한 것을 표현함에 있어서 좋지 못한 것인데?
오 신이 자비를 베풀기를!
이 현자는 독일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그러나 그는 독일어로 명확하고 직설적이라고 했으니,
좋다! 그러한 취향은 그리 나쁜 취향은 아니다.”
차라투스트라가 계속 말했다.
"여러분은 분명 다른 이들보다는 수준 있는 존재들일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가 찾는 충분한 자는 저와 같은 자로,
현재는 나타나지 않아서 침묵하고 있지만, 언젠가 올바름을 위해서 침묵하기도 하고 주장하기도 하는,
그릇됨에 대해서 가차없는 자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저와 같은 부류의 특징을 지닌다고 해도, 저를 위해 노력해줄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죠.
여러분처럼 병들어 약해진 상태의 사람들은 우선 보호를 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자들은 올바름을 위해서 그릇됨과 다툴 수 있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제가 바라던 자들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릇됨과 다툰다면, 승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 다투는 상황이 벌어지면, 여러분들은 두통에 시달려서 자리를 피하고 싶어할 가능성도 높죠.
여러분은 충분히 훌륭한 품성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제 앎을 공유하기에는 순수하고 매끄러운 거울이 필요한데,
여러분은 여러 사회적 경험과 앎으로 인하여 제 이야기가 왜곡됩니다.
여러분 안에는 여전히 올바르지 못한 가치관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판단하거나 생각할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겠죠.
여러분이 고상한 유형의 존재일지라도, 많은 것들이 올바르지 못하게 뒤틀려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틀린 것을 바로 잡을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을 넘어서는 올바름 추구자에게 화를 내지 말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후손 중에서 언젠가 저와 같은 올바름 추구자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올바름 추구자의 혈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함께 하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온 것은 제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조입니다.
여러분은 올바름을 갈망하는 존재, 그릇됨을 혐오하는 존재, 올바름을 추구하다 지친 자가 아닙니다.
몇 번을 말해도 여러분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며, 그들이 오지 않는다면,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더 고상하고, 더 강인하며, 사회적 규율에 맞서 승리한 자들,
그래서 삶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는, 육체와 영혼이 모두 올바른 자들 말입니다.
올바른 가치를 위해서 노력하고 웃을 수 있는 용맹한 사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표면이 거친 거울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손님들이 부조리에 순응한 경험이 있기에,
자신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의 손님들, 별난 자들이여,
여러분은 미래의 차라투스트라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제게 오고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까?
아름다운 현생, 이상이 실현된 곳에 대해서, 이상적인 인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이에 대해서는 제게 말하지 않는 겁니까?
저는 여러분이 제게 미래에 다가올 저와 같은 존재들에 대한 소식을 들려주길 바랍니다.
저는 이 미래의 존재들로 인해서 충만해지기도 하지만,
미래를 바라기에 현생에서 저는 올바름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로 인해 고독했습니다.
미래의 존재들을 위해서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이 미래의 존재들, 성숙한 존재로 거듭나려는 이 존재들,
이상과 올바름에 대한 의지와 최고의 희망인 이 존재들을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연설을 멈추고는 눈을 감고 있었다.
왜냐면 그는 심장의 격동, 미래의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이러한 모습에 손님들은 당황한 채로 서있었다.
단지 절망을 말하던 예언자만이 손과 몸짓으로 무언가 신호를 보냈다.
어린 나무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미래의 존재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존재에 대한 소식을 듣고자 한다.
생각해볼 거리들
동굴에서 여러 목소리가 한 목소리처럼 어울러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ㅡ차라투스트라가 초대한 존재들이 동굴 안에서 내는 소리가 한 존재의 소리로 들렸다는 이야기다.
ㅡ그리고 이 존재의 소리는 차라투스트라가 돕고자 하던 존재의 소리다.
ㅡ즉 각각의 존재들의 소리는 차라투스트라가 별로 돕고 싶어하지 않는, 조금 안쓰러워하는 존재라면, 이 모든 존재들의 특징을 가진 것은 차라투스트라가 돕고자 하는 존재 유형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 3권 12장 7절」에서 나오는 구절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진리가 탄생하려면, 선한 자들이 악이라고 부르는 것 모두가 한데
모여야 한다.
가장 추악한 자는 왜 변장하고 그럴싸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나?
ㅡ가장 추악한 자는 자기와 사회를 경멸하기만 하는 자다.
ㅡ이러한 자들은 자신과 사회를 경멸하면서, 그 경멸하는 행위를 통해 자존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
ㅡ즉 이 경멸 행위가 자신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 이는 경멸 행위를 자기 치장의 효과로서 이해하고 있음을 말한다.
ㅡ그래서 가장 추악한 자가 꾸며대는 모습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다.
독수리는 왜 손님들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나?
ㅡ차라투스트라의 긍지인 독수리는 자신의 긍지로는 답할 수 없는 이상한 질문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 뱀은 독수리의 목을 휘감고 있나?
ㅡ뱀과 독수리가 함께 어울린 상태를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ㅡ뱀은 지혜이고 독수리는 긍지인데, 긍지에 따라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지혜가 작용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의미는 알기 어렵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영역에 머무는 동안 누구도 절망해서는 안 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자신과 같은 이가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로 영원회귀까지 이르게 되었다.
ㅡ그런 점에서 자신과 같은 운명에 대한 길라잡이가 되려고 하고 있으므로, 절망을 허용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영역에 있는 거친 짐승은 무얼 말하나?
ㅡ차라투스트라의 영역은 사회에서 벗어난 영역, 고독의 영역이다.
ㅡ사회에서 벗어난 상태로, 이러한 상태는 두 가지 요소로부터 공격받는다.
ㅡ먼저 사회적 존재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운명이 주는 절망감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 두 가지를 거친 짐승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작은 손가락은 무엇을 말하나? 왜 손과 심장을 언급하나?
ㅡ작은 손가락은 도움의 손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이는 「유고 (1884년 가을~1885년 가을)」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31[62]
내 뱀은 은밀하게 물에 빠진 자들에 대해 내게 말한다 : 바다가 그들을 끌어당겼구나 — 거기서 그들은 기꺼이 힘차게 수영하는 어떤 자에게 달라붙는다.
참으로, 이렇게 맹목적으로 거칠게 물에 빠진 자들은 팔과 다리로 구조하는 자와 선한 의지를 가진 자를 찾으며, 그래서 그들은 가장 강한 자를 그들의 심연으로 함께 끌어당긴다. 그대들은 — 그러한 물에 빠진 자가 되려 하는가?
나는 이미 작은 손가락을 그대들에게 내밀었다. 슬프구나! 그대들은 이제 나에게서 무엇을 더 취하고자 하며 그대들에게서 무엇을 잡아 찢으려 하는가!”
ㅡ즉, 물에 빠진 자들을 건지기 위해서 손가락을 내미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렇게 건져내고 나면, 이 사람들이 설 수 있게 손을 잡아줄 것으로 보인다.
ㅡ즉 스스로 서게끔 말이다.
ㅡ그렇게 스스로 설 수 있게 된다면, 이제 자신과 뜻을 같이 하길 바라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심장을 잡으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우측의 왕은 자신들에게 손과 인사말을 내어주는 방식에서 차라투스트라임을 알아차리나? 언제 차라투스트라가 저들에게 낮추었나?
ㅡ직역본에서 후술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겸허한 자세로 그들에게 대우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ㅡ문제는 언제 차라투스트라가 겸허했냐는 것이다.
ㅡ사실 차라투스트라의 손님들은 차라투스트라를 통해서 뭔가 혜택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다.
ㅡ물론 차라투스트라가 동굴에서 보자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ㅡ그래서 사실 차라투스트라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것을 마련해서 가야 겠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의 방문이 자신에게 의미있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ㅡ그리고 안전과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하고 있으므로, 손님들은 차라투스트라에게 얻으려고만 왔음에도 정중히 대우받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ㅡ물론 차라투스트라의 발언을 보면, 절망하던 자들이 와서 조금 우쭐한 모습을 담고 있는데, 사실 차라투스트라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이기에, 여기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겸허함은 손님들의 외경심에 상처를 입힐 뻔 했나?
ㅡ차라투스트라가 너무 겸허하게 대하니,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자신들의 외경심이 무색해지는 것 같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의 겸허함은 왜 손님들의 눈과 가삼을 상쾌하게 하나? 왜 차라투스트라의 겸허함을 보려고 차라투스트라를 찾아 나서나?
ㅡ대체로 사회에서 긍지를 지닌 자들은 겸허하지 않다.
ㅡ그런 점에서 남다른 모습, 성숙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ㅡ차라투스트라의 모습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그런 성숙한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손님들은 왜 감각과 가슴이 열리고, 부족한 게 거의 없어 기분이 방자해질 것 같다고 하나?
ㅡ감각과 가슴이 열린다는 것은 성숙한 모습을 보면서 감동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ㅡ기분이 방자해진다고 표현이 되어져 있는데, 기분은 용기로 번역할 수 있는 Muth의 번역어로 보인다.
ㅡ부족한 게 거의 없다는 것도 Wenig fehlt: 라는 표현이 번역된 것인데, 이것은 거의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양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ㅡ그런 점에서 기분이 방자해진다는 표현보다는 “곧 용기를 가지게 되다”, “곧 고양되어지다” 라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 지상에서 높고도 강인한 의지보다 더 기쁘게 자라나는 것은 없다고 하나? 왜 가장 아름다운 식물이며, 그것을 통해 땅 전체에 생기가 도나?
ㅡ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올바름을 향한 강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ㅡ올바름을 향한 강한 의지는 결국 올바름을 구현하려고 하게 되고 이로써 부조리한 사회와 맞서게 된다.
ㅡ이 과정에서 이상 사회로 나아가게 되는데, 이는 현생을 노력할 가치가 있는 순간으로 이해하고 긍정하게 한다.
ㅡ그리고 이러한 이상 추구, 올바름의 구현을 통해서 부조리로 인하여 절망적이던 세상이 노력할 가치가 있는 생기로운 곳으로 바뀌게 된다.
ㅡ이러한 점을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를 소나무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인가? 각각의 표현은 무엇을 상징하나?
ㅡ장구하게 말없이 단단하게 외로이 있다는 것은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데, 홀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버티며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보인다.
ㅡ즉 강인한 의지의 묘사인 것이다.
ㅡ가장 멋지고 유연한 재목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하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ㅡ즉 맹목적으로 올바름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ㅡ예를 들면 지나칠 문제와 맞설 문제를 분류해서 다투는 것을 말한다.
ㅡ강하고 푸른 가지를 뻗어낸다는 것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푸른 생기로움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ㅡ바람 뇌우 높은 곳에 거처하는 것에게 질문을 해댄다는 것은 그릇됨을 지적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강력한 질문보다 더 강력한 답을 준다는 것은 올바름을 제공하는 특징을 말한다.
ㅡ명령하는 자라는 건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것과 그릇됨에 맞설 때 근거를 마련해준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승리를 구가하는 자라는 건 부조리나 그릇됨과의 다툼에 있어서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차라투스트라는 어떻게 음울한 자와 실패한 자에게 생기를 되찾아 주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영원회귀를 통해서 운명에 절망하지 않게, 자신의 전생애에 따른 도전과 그에 따른 실패를 무의미하지 않게 해준다.
ㅡ즉, 운명에 절망하여도 그 의미와 가치를 후대의 존재가 이해해줄 것이란 이야기다.
ㅡ이로써 절망한 자와 실패한 자는 생기를 얻는다.
ㅡ물론 여기서 말하는 절망하는 자와 실패한 자는 일반적인 대중을 놓고 하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 오늘날 차라투스트라의 산으로 많은 눈이 향하나?
ㅡ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가 사회에 퍼져 흥미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이 녹초가 되어 허물어진다는 건 뭘 말하나?
ㅡ현재의 상황을 정리해 보면, 차라투스트라의 경우, 앎을 설파했고, 그러다 사람을 피해 고독해지기로 한다.
ㅡ문제는 이제 사람들이 차라투스트라를 찾고 있기에, 차라투스트라의 고독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ㅡ이에 따라 고독은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게 되는,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존재가 된다.
ㅡ이를 부활한 자들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물결이 올라온다는 건 무엇을 말하나?
ㅡ물결은 바다의 물결로 보이며, 사회적 관심이 올라오는 것을 말하는 걸로 보인다.
ㅡ이는 곧 차라투스트라가 사회 속에서 언급되고 다뤄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왜 절망하는 자들이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에 와서 절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더 나은 자들이 온다는 징표이자 조짐이 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이 현생에 절망하지 않고 긍정할 수 있게끔 하려고 가르쳤다.
ㅡ그렇게 현생을 긍정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제시하였다.
ㅡ그리고 현재를 보면, 절망하던 자들이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와서 절망하지 않고 고양되어지고 있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ㅡ그러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가르침도 의미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ㅡ이러한 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은 자들은 왜 위대한 동경, 위대한 구역질, 위대한 권태를 지닌 자라고 하나? 왜 이들은 희망을 배우지 못하면 더는 살려고 하지 않을 자들인가?
ㅡ차라투스트라가 미래에 온다고 말하는 존재는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신과 같은 자다.
ㅡ이 존재는 올바름에 대한 동경을 하고 있고, 그릇됨에 대해서 구역질을 한다.
ㅡ또한 올바름을 위해서 시도하다가 노력의 헛됨을 느끼게 된다.
ㅡ이 상황에 이르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되는데, 자신의 전생애를 바친 노력이 유의미함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영원회귀를 통한 희망을 깨우쳐야 한다.
ㅡ이를 말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우측 왕의 존경 표시를 거부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교조화 되는 관계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독일식으로 명료하게 말한다고 하나? 왜 좌측 왕은 독일어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중얼거리나?
ㅡ차라투스트라는 독일어를 두고서 섬세한 것을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보는 듯하다; 「유고 (1884년 가을~1885년 가을)」
“그러나 선생님”,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저열한 독일어로 말하시는군요!”
— 나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독일어, 그저 독일어지요!
내 여신이여, 돼지를 풀어주시지요!
그대는 섬세한 것을 독일어로 말하는 어려움을 낮게 평가하십니다!”
ㅡ이러한 점으로 볼 때, 독일어는 투박한 표현, 명료하지 않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ㅡ이를 통해서 차라투스트라의 발언은 “너희들이 좀 더 잘 알아듣게끔 거친 표현으로 말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좌측 왕의 경우, 독일어가 투박한 표현이기에, 명료하게 말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ㅡ하지만 직설적이란 측면에서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고 보고 수긍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기다리던 사람은 왜 내 안에서 침묵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침묵하고 있지 않을, 가차 없는 자라고 표현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의 운명 속에서 살고 있다.
ㅡ그리고 차라투스트라가 죽는다면, 그 영혼은 영원회귀에 따라서 새로운 육체에서 지금의 차라투스트라가 살았던 것처럼 같은 삶을 살며, 자신의 앎을 가르치고 주장하며 살게 될 것이다.
ㅡ그런 점에서 현재는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에 차라투스트라의 영혼이 담겼기에, 미래의 존재는 현재의 차라투스트라의 안에서 침묵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왜 손님들은 차라투스트라의 오른팔이 아닌가?
ㅡ직역본에서 후술되기는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올바름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ㅡ현재 손님들은 절망에 힘들어 하는 자들로, 치유가 필요한 자들이다.
ㅡ이들은 올바름을 위해서 다투기 보다는 지쳐 피신을 온 자들이란 것이다.
ㅡ그래서 이들은 차라투스트라의 북 소리만 듣고도 질색하고 쓰러질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왜 손님들은 매끈한 거울이 아닌가? 왜 그들은 차라투스트라의 모습마저 일그러지게 하나? 많은 짐과 많은 기억으로 짓눌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ㅡ손님들의 경우, 각자의 환경 속에서 부조리함에 적응하여 살아왔다.
ㅡ그로 인해서 개개인들의 무의식 속에 부조리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의 의견에 대한 반발감을 형성하여, 차라투스트라의 의견을 왜곡하게 된다.
ㅡ이를 난쟁이로서 표현했다.
왜 손님들은 굽어 있는 기형이며, 이들의 굽음을 펴줄 대장장이가 없다고 하나?
ㅡ굽어 있다는 것은 부조리에 적응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고, 부조리가 무의식 속에 잔재했다는 이야기다.
ㅡ문제는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흔적을 없애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ㅡ이를 펴줄 대장장이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아이들은 누구를 말하나?
ㅡ차라투스트라의 아이는 미래의 자신을 말한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영원회귀를 통해서 자신과 같은 이가 세상에 나타날 것임을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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