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4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4권 13장 의역 (완) (더 높은 인간 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8. 19. 14:57

ㅡ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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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4권 13장 더 높은 인간 - 1


         
13장 1~10절 개괄

 

 

13장은 동굴에 모인 손님들을 두고서 이야기를 하는 장이다.

그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가볍게 살펴보도록 하자.

 

1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올바른 이해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귀한 존재가 굳이 자신의 가치를 잃어가면서 사람들 앞에 있을 필요도 없다.

 

2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신의 사라짐을 통해서 가치와 규율이 흔들리게 되었을 때, 위버멘쉬들의 시대가 온다고 이야기를 한다.

 

3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현재의 천박한 자들과 자신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한다.

현재의 존재들은 어떻게든 현재의 것들을 보존시키려고 하지만, 자신은 어떻게 현재를 극복하고 나아지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래의 존재, 고귀한 자들에게 현재의 부조리한 것들을 극복해달라고 이야기한다.

 

4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고귀한 자들이 과연 자신의 운명을 살아갈 용기가 있는 자인지를 살핀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도 나아갈 수 있는 존재, 평탄치 않음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존재일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존재만이 용감한 자라고 말한다.

 

5절에서 사회는 악함을 멀리하라고 하지만, 자신은 악함을 가까이하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악함은 범죄를 저지르라는 이야기보다는 사회적 규율에 반대하는 존재로서의 악함이라고 할 수 있다.

 

6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고귀한 자들에게 왜 말을 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고귀한 자들의 선생으로서, 감정을 살펴주기 위해서, 쉬운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미래를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미래의 존재의 아픔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해 보인다.

 

7절의 경우, 올바른 앎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올바른 앎을 통해서 세상을 개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이 그릇된 이해 속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한다.

 

8절의 경우, 위대한 척하는 사람들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한다.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이 주는 혜택을 바라면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속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9절의 경우,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은 대체로 그릇된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따른다는 점을 말한다.

혹여나 올바른 앎이 사회에서 주장되고 지켜지더라도, 그것은 우연히 오류로 인하여 받들여지는 것이지, 올바른 근거를 바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올바른 앎을 갖지 못하는 학자들에 대해서도 주의하라고 말하며 비판한다.

 

10절에서는 스스로 사고하며 성장하라고 말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

 

-1-

 

제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로 나아갔을 때, 저는 은둔자가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곧바로 ‘시장*으로 나아간 것’이죠.

*여기서 시장은 올바른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말한다.

 

시장에서 저는 모든 사람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제 말을 듣지 않아서, 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올바름을 추구하다 실패한 자가 죽은 존재로서 제 동료가 되었고, 저 자신도 거의 죽은 존재나 다름없었습니다.

 

새로운 아침이 오자 깨달았습니다.

    "올바름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무어라 하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가?"

 

고귀한 자들이여, 이것을 제게서 배우길 바랍니다.

우리는 올바름에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바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다면, 좋습니다!

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눈을 껌뻑거리며 말할 것입니다.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 누가 더 낫고 못함이 없다.

      그런데 너가 우리 앞에서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신 앞에서라니.

그들이 말하는 신은 이제 죽어 사라져 버렸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자들 앞에서 우리는 평등한 존재로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고귀한 자들이여, 시장으로 나아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시장

차라투스트라는 초기에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앎을 전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2-

 

사람들은 ‘신 앞에서’를 외치지만, 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고귀한 자들이여,

이 신은 원래 여러분에게 가장 큰 위험이었습니다.

그가 무덤에 누운 후에, 비로서 여러분이 세상에 바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올바름이 지배하는 시점이 올 수 있게 되었고,

이제야 고귀한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시점이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이해하였습니까?

나의 형제들이여.

 

놀라셨습니까?

혼란스러우십니까?

절망에 빠져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향해 비난하고 있습니까?

 

좋습니다, 고귀한 자들이여.

이제야 비로소 인간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에서 신은 죽고 위버멘쉬가 살기를 바랍니다.

 

신의 죽음과 고귀한 자들의 등장

신의 죽음을 통해서 고귀한 자들이 세상에 올바른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3-

 

걱정이 많은 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현재의 인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인간은 자신을 극복할 수 있을까?”

 

위버멘쉬*는 제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을 관심에 두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고통받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도 관심에 두지 않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려고 하며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를 말한다.

 

오 나의 형제들이여,

제가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올바름을 향해 나아가는 과도기적 존재이자,

후대를 위해서 앎을 나눈다는 점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제가 사랑하고 희망하게 하는 특징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귀한 자들이여,

여러분이 부조리를 경멸한다는 것은 제게 희망을 줍니다.

부조리를 경멸하는 자들이야말로 올바름을 따르려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절망했다는 것은 존경할 만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회의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릇된 지혜를 배우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오늘날은 천박한 자들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그들은 모두 순종하라고, 겸손한 하라고, 약간은 부조리해도 실리적 지혜를 배우라고, 부조리한 이웃을 이해하고, 전통을 유지하라며 그릇된 덕들을 설교합니다.

 

모든 걸 포용하는 여성적 성향, 복종하고 따르는 노예적 성향, 천박한 자들의 잡다한 성향,

이것들이 모두 인간의 미래를 지배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혐오스럽지 않습니까?

 

이러한 천박한 것들은 이렇게 계속 묻습니다.

     “어떻게 인간에게서 여성적/노예적/잡다한 성향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답을 통해서, 천박한 것들이 현재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현재를 지배하는 이 천박한 자들을 극복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들이 위버멘쉬에게 가장 큰 위협입니다.

 

고귀한 자들이여,

천박한 덕들,

실리를 추구하는 지혜들,

서로를 상처주지 말자며 부조리를 눈감아주는 배려들,

그렇게 펼쳐지는 사소한 부조리들,

사람들의 안일함,

개인의 행복보다 다수의 행복을 지향하는 것들

이것들을 극복하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것에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절망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현재의 풍토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른다는 것,

이 점에 따라 저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고귀한 자들이여.

 

천박한 것들이 지배한 도시

차라투스트라는 천박한 것들을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유지되길 바란다.


 

-4-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용기를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용감한 존재입니까?

 

여러분의 본성을 목격한 자 앞에서의 용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은둔자와 독수리의 용기*를 가지고 있냐는 것입니다.

*사회를 벗어나서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의 용기를 말한다.

 

냉소적인 자들, 짐을 잘 지는 자들, 멀리 볼 줄 모르는 자들, 어떤 하나의 입장에 도취된 자들,

저는 이런 자들을 용감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진정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두려운 일을 향해 나아가는 자,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 올바른 긍지를 가질 줄 아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자신의 본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가 가장 용감한 자입니다.

 

두려움과 맞서는 존재

차라투스트라는 자신 앞에 놓인 두려움과 맞설 수 있을 때, 용감한 자라고 말한다.


 

-5-

 

현자들은 제게 이렇게 위로합니다.

    “인간은 악한 존재입니다.”

 

아, 이게 정말 진실이기를!

왜냐면, 악함은 부조리한 사회적 규율을 넘어 올바름을 향해 나아간다는 징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더 나아져야 하고, 더 악해져야 한다”

이것이 제가 가르치던 바가 아닙니까?

악은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갈 때 필요합니다.

 

천박한 자들에게는 인간이 자신의 죄로 고통받고, 그 죄를 짊어지며 살아가는 것이 훌륭하다고 여겨졌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가 죄를 지었다는 것*이 건강함의 징후로 보여 위안으로 삼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죄를 사회적 규율에 저항했다는 점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말은 사회적인 존재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이야기가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 순 없을 테니 말입니다.

제 이야기는 섬세한 것이고, 아주 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이야기가 순종적인 자들에게 닿아 망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서지기 쉬운 종이 위의 글씨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이야기가 사회에 순종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언을 통해 이야기하게 된다.


 

-6-

 

고귀한 자들이여,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서 여기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제가 고통 받는 여러분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까?

아니면, 운명에 따라 나아가다 불안에 시달리고 방황하고 절망한 여러분에게 더 쉬운 길을 보여주려고 그런 것이라고 보이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사람들, 올바름을 향해 나아가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시련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은 올바른 앎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저 멀리 있는 이상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제게 여러분이 빠진 비참함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아직 충분히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면, 여러분은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을 뿐, 부조리한 세상과 맞섬으로써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러분이 이와 다르게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모두 제가 느꼈던 고통, 노력의 헛됨을 느낌에 따른 고통을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고귀한 자들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미래의 이상 사회이다.


 

-7-

 

올바른 앎을 지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올바른 앎들이 사람들에게 흘러 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퍼져서 제 목적을 달성시키기를 바라죠.

 

제 지혜는 구름처럼 모여서, 이제 곧 언제라도 사람들에게 번개처럼 내려쳐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려는 자들은 모두 이렇게 합니다.

 

저는 현재의 사람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저들이 그릇된 것을 더는 보지 못하게 하고 싶습니다.

나의 앎이여, 저들의 그릇된 눈을 멀게하기를!

 

아주 강한 번개

차라투스트라는 그릇된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번개가 되려고 한다.


 

-8-

 

여러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원하지 말길 바랍니다.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원하게 되면, 이를 위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속이려 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능력한 자들이 위대해지기를 바랄 때 자주 그렇습니다.

 

이 무능력한 자들, 위대한 존재인 척하는 자들은

올바른 것을 그릇된 걸로 바꾸고, 그릇된 걸 올바른 것으로 바꿔, 올바른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마저 속이면서, 그렇게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위대헌 존재인 척합니다.

 

고귀한 사람들이여,

이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저는 정직함보다 더 희귀한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천박한 자들의 시대 아닙니까?

천박한 자들은 무엇이 위대한 것이고 무엇이 천박한 것인지,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정직한 것인지를 모릅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배운 왜곡된 시선에 따라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시무시한 척하는 난쟁이

사회의 위대한 자들은 실제로는 조그맣지만 거대하고 위대해 보이게 자신을 꾸민다.


 

-9-

 

고귀한 자들이여, 용감한 자들이여,

사회가 알려주는 것을 의심하길 바랍니다.

 

정직한 자들이여,

여러분의 의심을 천박한 자들 앞에서 비밀로 하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현재는 천박한 자들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천박한 자들이 이유도 모른 채 믿고 배운 것들,

누가 그것을 뒤엎을 수 있단 말입니까?

 

천박한 자들은 사회에서 체험한 것을 통해 설득됩니다.

근거를 대며 이성적으로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되려 이상한 존재로 의심받게 될 뿐이죠.

 

만약, 사람들 사이에서 올바른 것이 주장되고 지켜진 적이 있다면, 이렇게 의심해도 좋을 겁니다.

    “얼마나 강력한 오류가 이 진리에 작용한 것일까?

      분명 이 진리가 사람들에게 진리로 여겨진 이유는 진리가 제대로 이해되어서가 아니라, 어떤 오류로 사람들에게 긍정된 것일테다.”

 

학자들을 조심하길 바랍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같이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들을 미워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앎을 생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호기심도 열의도 없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앞에서 모든 현상은 제대로 비춰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은 자신들이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며, 스스로들을 자랑스레 여길 수 있지만,

하지만 이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자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조심하시길!

 

감정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인식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처럼 열의가 식어버린 영혼들을 믿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자신을 올바른 존재로 꾸며 문제라고 했지만,

학자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존재, 자신을 올바른 존재인 양 거짓말로 속일 수 없는 존재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 자신을 올바른 존재로 속이려고 한다면, 올바른 존재가 무언지를 알아야 할텐데,

이 사람은 올바른 건 전혀 알지도 못하니 속이지 못한다는 것 아닙니까?

 

죽은 새를 살피는 학자

차라투스트라는 학자들이 올바르게 탐구하고 있지 않다고 여기며, 죽은 새/털이 빠진 새를 두고 탐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10-

 

올바른 인식을 얻어 성장하고 싶다면, 자기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타인의 도움을 통해서 생각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하였습니까?

그렇게 앎을 지닌 자가 되었습니까?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제 스스로 생각하려고 하면, 제대로 생각하지 못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남들 앞에서 당신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자임을 증명해야 할 때, 당신은 비틀거리게 될 것입니다.

 

비틀거리는 남자

남의 도움을 통해서만 성장한 사람은 홀로 나아가야 할 때 비틀거리게 된다.

 


생각해볼 거리들

 

왜 모두에게 말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셈이 되나?

ㅡ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바람소리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줄타기 곡예사와 송장이 그의 동무였나? 왜 차라투스트라는 송장이나 다름이 없나?

ㅡ줄타기 곡예사는 원숭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밧줄을 타던 자이다.

ㅡ올바름 추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올바름 추구자는 차라투스트라보다 먼저 인간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다가 죽게 된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역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게 되면서, 죽어버린 줄타기 곡예사처럼 무의미한 존재가 된다.

 

"시장과 천민과 천민의 소란, 천민의 귀가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차라투스트라, 서문 9장」에서 했던 이야기와 같은데, 차라투스트라는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자기 주장을 해보고 나서, 자기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기게 된다.

     나는 목자여서도 안 되고 무덤파는 자여서도 안 된다.

     나는 다시는 군중과 말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에게 말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신이 무덤에 눕고 나서, 왜 그대들이 부활했다고 하나?

ㅡ신은 기존 가치를 말하는데, 이것들이 사라지면서, 올바름 추구자들이 가치를 제공하게 된다는 의미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정오란?

ㅡ위대한 정오는 해가 가장 높이 뜬 상태를 말하는데, 해/태양은 올바른 이해를 전하는 것이므로, 올바른 이해가 세상의 중심에 서는 시점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심장이 어지럽다는 건 뭘 말하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은? 지옥의 개가 짖는다는 건 뭘 말하나?

ㅡ심장이 어지럽다는 것은 혼란에 빠졌음을 말한다.

ㅡ심연이 입을 벌리는 것의 경우, 심연은 어둡고 깊은 연못인데, 절망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쓴 표현으로 보인다.

ㅡ지옥의 개의 경우, 지옥에 사는 존재, 악마적 존재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부조리에 따르는 자들을 지칭하려고 쓴 표현 같다.

 

“인간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는가”와 “어떻게 해야 인간이 극복될 수 있는가”는 어떤 차이가 있나?

ㅡ인간의 보존과 관련된 것은 “현재 규율과 가치의 보존”을 논한다.

ㅡ인간의 극복과 관련된 것은 “현재 규율과 가치의 극복”을 말한다.

ㅡ현재를 지키려는 자의 마음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자의 마음이 대비되는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가 사랑하는 인간은 하나의 과정이자 몰락인가?

ㅡ과정의 경우, 모든 인간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ㅡ인간다운 인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곧 올바른 판단을 하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므로, 차라투스트라가 바라 마지 않던 것이다.

ㅡ몰락의 경우, 태양이 지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빛을 세상에 뿌리며 사라지는, 자신의 앎을 세상에 선사하며 죽음에 점차 이르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ㅡ즉, 올바른 이해를 추구하다가 나누는 상태인 것이므로, 차라투스트라 자신의 행동이자 성숙한 자가 갖는 행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경멸했다는 것이 왜 차라투스트라에게 희망을 주나?

ㅡ여기서 말하는 경멸은 사회 부조리/그릇됨에 대한 경멸이기 때문이다.

 

절망하는 것은 왜 존경할 만한 것인가?

ㅡ사회의 부조리와 그릇됨에 절망했다는 이야기는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것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왜소한 인간들이 순종, 겸손, 꾀, 열심, 배려, 길게 이어지는 것을 설교하는 이유는?

ㅡ기존 사회 질서에 순종하고, 사회를 위해서 겸손하고, 실리적 지혜를 긍정하며, 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주변 관계를 위해서 배려하며, 전통을 길게 잇는 것을 말한다.

ㅡ즉 현재의 사회를 유지하라고 설교하는 것이다.

 

여자 부류, 노예 부류, 천민 잡탕은 뭘 말하나?

ㅡ여자의 경우, 모든 것을 포용하는 특징을 나타낸다고 보인다.

ㅡ이를 통해서 올바른 것과 부조리한 것이 무분별하게 포용되는 현상을 언급하는 듯하다.

 

ㅡ노예의 경우, 순종하는 특징을 말한다.

 

ㅡ천민 잡탕의 경우, 천박한 모든 것을 나타낸다고 보인다.

 

왜소한 덕과 자잘한 꾀는 무얼 말하나?

ㅡ천박함에도 불구하고 덕이 된 것들과 자잘한 꾀는 실리에 따라 부조리를 긍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보인다.

 

모래알 같은 배려는 뭘 말하나?

ㅡ모래알의 경우, 둥글게 지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 3권 5장」

     저들은 서로 둥글둥글 잘 지내고 공정하며 친절하다.

     마치 작은 모래알이 다른 모래알과 둥글둥글 잘 지내고 공정하고 친절하듯이

 

개미처럼 우글대는 잡동사니는 뭘 말하나?

ㅡ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개미들의 집단성/사회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즉 맹목적인 집단성/사회성을 극복해달라는 이야기다.

 

왜 측은한 안일을 극복해달라고 하나?

ㅡ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안일하게 올바름을 거부하며 살아가는데, 이를 극복해달라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행복은 왜 극복해달라고 하는가?

ㅡ다수의 행복을 우선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무시하면, 인간은 행복에 이를 수 없고, 올바른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목격자 앞에서의 용기와 홀로 사는 자의 용기, 독수리의 용기는 무엇을 말하나?

ㅡ목격자 앞에서의 용기는 자신의 부조리함이나 그릇됨을 목격한 자를 두고 나타나는 용기로 보인다.

ㅡ이는 범죄를 저지르는 용기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ㅡ홀로 사는 자, 독수리의 용기는 세상에 맞서는 용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용기로 이해 가능하다.

 

차가운 영혼, 노새, 눈먼 자, 술 취한 자는 왜 담대하지 않나?

ㅡ차가운 영혼은 냉정한 자/계산적인 자를 나타내는 것 같은데, 이들이 담대한 것을 하더라도 용감해서가 아니라 계산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볼 수 있다.

ㅡ노새의 경우, 무거운 짐을 지고 나아가는 존재인데, 이는 본성에 따라서 견디는 능력이 좋은 것이지 용감하다고 할 수 없다.

ㅡ눈먼 자의 경우,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나아가는 것이므로, 용감하다 할 수 없다.

ㅡ술 취한 자의 경우, 도취되어 나아가는 것으로 보이므로, 진정한 용감함이라고 보기 어렵다.

 

심연을 보면서도 긍지를 갖는 자가 담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ㅡ심연은 자신의 부조리/그릇됨, 절망 등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이에 따라서 보면, 절망과 부조리함을 합리화하는 모양새로 볼 수 있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긍지는 각각의 것들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려고 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ㅡ이를 독수리의 눈으로 응시하고 독수리의 발톱으로 움켜잡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왜 더 나아져야만 하고 더 악해져야만 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기를, 올바름을 추구해 나가기를 바란다.

ㅡ그런 점에서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사회적 규율과 관습에서 악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ㅡ그런 점에서 악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소한 설교자들은 왜 죄로 인해 고통받고, 죄를 짊어지는 것이 훌륭하다고 여기나?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왜 큰 죄가 큰 위안이 되나?

ㅡ천박한 설교자들의 경우, 죄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적 규율에 따르기를 원한다.

ㅡ그래서 사회적 규율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ㅡ하지만 차라투스트라의 경우, 이상과 행복을 위해서 사회적 규율에 벗어나서 살기를 바라므로, 사회적 규율을 벗어나는 죄를 저지르는 것은 위안이 된다.

 

불안정한 자, 길 잃은 자, 잘못 오르는 자는 무얼 말하나?

ㅡ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 방황하는 사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왜 고귀한 자들은 계속해서 파멸해야 하나?

ㅡ이를 통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ㅡ즉 고독이 주는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차라투스트라의 참뜻과 동경은 왜 드문 것, 장구한 것, 멀리 있는 것으로 향하나?

ㅡ차라투스트라가 바라는 것은 먼 미래에 있는 것이다.

ㅡ이 먼 미래를 드물고, 장구하고 멀리 있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왜 고귀한 자들은 충분히 고통받고 있지 않았다고 하는가? 차라투스트라를 고통에 빠뜨렸던 문제는 무엇인가?

ㅡ여기서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고통은 노력의 덧없음에 따른 고통이 아닐까 싶다.

ㅡ차라투스트라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이 노력의 덧없음을 느끼며 나타나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번개가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나?

ㅡ번개는 깨우치는 걸 말하는데, 차라투스트라가 이 깨우침에서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ㅡ즉, 깨우침이 이제는 익숙하다,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ㅡ이로써 앎을 제대로 습득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번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말하나?

ㅡ번개가 깨달음이라면, 다른 쪽으로 번개가 나아가게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가능하다.

ㅡ하지만 이는 이상하므로, 본래 문장을 살펴야 하는데, 원래 문장을 보면 이렇다.

     Nicht ableiten will ich ihn:

     나는 그것을 피하게 하거나 무마시키고 싶지 않다.

     er soll lernen für mich - arbeiten:

     그것은 나를 위해 일하도록 배워야 한다

ㅡ이를 통해서 보면, 깨우침이 헛되게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ㅡ즉 깨우침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작용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려고 하나?

ㅡ사람들이 그릇된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멀게 하려고 하는 걸로 보인다.

 

사기꾼과 배우들은 왜 위대한 일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나?

ㅡ사기꾼과 배우들은 자신들이 위대한 일과 관련된 것처럼 보여야 하므로, 진짜 위대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믿지 않게끔, 가치 없게 여기게끔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건전한 불신을 가지라고 하면서, 근거를 비밀로 하라고 하나?

ㅡ여기서 불신의 대상은 사회적 상식이나 가치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건전한 불신을 통해서 사회적 상식과 가치에 대해서 의심하라고 말하는 중인 것이다.

 

ㅡ그런데 사회적 상식과 가치를 불신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면 안 된다.

ㅡ그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몰려 배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거동으로 설득하는데, 근거는 천민에게 불신을 당한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사람들은 근거보다는 행동,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서 설득된다는 이야기다.

 

학자들은 왜 차갑고 바싹 마른 눈을 가지고 있으며, 저들 앞에서 새들은 모두 깃털이 뽑힌 채 있다고 하나?

ㅡ바싹 마른 눈의 경우, 열의가 없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ㅡ또한 학자들 앞에서 새들은 모두 깃털이 뽑혀 있다고 하는데, 모두 생동감있는 상태가 아닌 채로 죽어있다고 말하는 걸로 보인다.

ㅡ즉 학자들은 생동감있게 대상을 탐구하지 못하고, 이미 죽어버린 것들을 놓고 탐구하고 있는, 이상한 탐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왜 학자들은 자신들이 속이지 않는다고 뽐내나?

ㅡ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보이는데, 이는 학자들이 자신들이 배운 것을 늘어놓을 뿐, 강하게 말하지 않는 특징을 언급하는 걸로 보인다.

ㅡ하지만 이러한 학자들의 상태는 기존 지식을 답습한 상태라고만 할 수 있기에, 진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열화로부터의 자유가 인식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열화를 감정적 상태로 본다면, 감정적 상태에 놓이지 않는다고 인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ㅡ즉 감정적 상태에 놓이지 않는다고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란 이야기다.

 

마비된 발 또한 말에 함께 탄다는 말은 무엇인가?

ㅡ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 생각하라는 것을 자기 다리를 사용해서 높이 오르라고 말한다.

ㅡ그러므로 다리/발은 생각을 말하는데, 말을 타며 발이 마비된다는 것은 생각이 마비된다는 것을 말한다.

ㅡ즉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