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4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4권 3장 의역 (완) (왕들과의 대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8. 5. 18:49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4권 3장 왕들과의 대화


         
3장 개괄

 

 

3장은 차라투스트라가 두 왕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두 왕은 사회에서 왕으로서 잘 살다가 사회의 그릇됨과 부조리에 염증을 느끼고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이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 왕들은 사회의 허영심과 그릇됨들을 혐오하고 있으며, 오히려 올바름을 위해서 노력하는 자들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들의 이야기에 감복하게 된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역시 이들이 아직 올바름을 선호할 뿐 올바름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고서,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다가 참는다.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동굴에 초대한다.

 


 

 

본문

 

 

-1-

 

차라투스트라가 숲을 돌아다닌지 1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 이상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화려한 장식을 한 두 명의 왕이었는데, 짐을 잔뜩 실은 나귀를 앞세우고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놀라며 덤불 속으로 몸을 숨기며, 생각했다.

    ‘이 왕들이 나의 영역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지?’   

 

왕들이 그에게 점차 다가오자, 차라투스트라는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어떻게 왕이 둘인데 나귀는 하나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왕이 둘이므로 왕을 수행하는 나귀도 둘이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즉 사회적 예절과 다른 상황에 어리둥절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왕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다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우측에 있던 왕이 말했다.

    “우리 중에서도 다른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보통은 그걸 말로 꺼내지는 않는다네.”

 

좌측에 있던 왕이 말했다.

    “우리보고 이상하다고 말한 저 자는 염소치는 목자이거나, 산에서 오래 산 은둔자인 것 같군.

     사회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일수록 예의라는 걸 전혀 모르니 말이네.”

 

두명의 왕과 나귀

차라투스트라는 두 명의 왕을 마주하고 숨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우측에 있던 왕이 불쾌해하며 말했다.

    “예의라고?

     우리가 누구를 피해 여기까지 왔는지 잊었나?

     예의와 이를 중시하는 사회를 피해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저 예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사느니, 차라리 은둔자나 염소치는 목자 사이에서 살고 싶구나.

     우리의 거짓되고 과장된 모습을 보이는 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진 않아.

     그들이 자신들을 고귀한 사람이라고, 자신들의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사회는 모든 것이 그릇되고 부패하였다.

     특히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렇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질병, 편리와 실리를 중시하던 문화 때문이다.

 

     오늘날 내게 있어서 가장 좋고 사랑스러운 것은 건강한 농부 같은 자다.

     그들에게 예의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지만,

     그들은 영리하며, 끈기 있고 오래 견디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이것이 고귀한 자의 특징이다.

 

     오늘날, 미덕을 갖춘 자라면, 농부 같은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농부의 미덕을 갖춘 자가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천한 사람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고, 사회는 그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나는 더 이상 이것을 두고서 고귀한 자들의 사회라고 여기지 않는다.

 

     현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천한 사람의 유형이다.

     성자도, 악당도, 귀족도, 종교인들도, 종교신자들도 모두 천한 사람에 속한다.

 

     예의를 중시하는 이 사회는 모든 것이 그릇되고 부패했다.

     이제 아무도 올바름을 쫓거나 그것을 경외할 줄 모르니.

 

     우리는 이런 사회와 이런 사회 속에서 머무는 자들을 피해 다니고 있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아첨을 하는 존재들로, 무의미한 것에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고 한다.

 

     우리가 왕이 된 것이 그릇됨이 작용한 결과라는 점이 혐오스럽다.

     낡고 오래된 것들, 어리석은 자들과 교활한 자들, 부패한 자들을 뛰어난 것인양 칭송하는 것도 혐오스럽다.

 

     우리는 으뜸가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우리는 으뜸가는 존재인 척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기극에 싫증이 났고 혐오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천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그릇된 이야기를 외치는 사람들과 자기 생각 없이 글을 쓰는 사람들, 이득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 악한 사람들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이런 천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이런 천한 사람들 사이에서 으뜸가는 존재가 된다는 것!

 

     아 역겹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왕이라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쳐버린 왕

왕은 아첨하는 자들, 부조리한 자들, 그릇된 이해를 말하는 자들 사이에서 지쳐 버렸다.


 

좌측에 있던 왕이 말했다.

    “사회에 대한 혐오가 다시 끓어올라 너를 덮쳤구나.

     나의 가엾은 형제여.

     하지만 누군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이 말을 들은 차라투스트라는 덤불에서 일어나 왕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차라투스트라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때 ‘왕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외쳤던 차라투스트라입니다.

     몰래 듣던 것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이야기에서 ‘저들 사이에서 왕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말했을 때,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제가 다스리는 영역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저는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를 찾고 있는데, 혹시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를 들은 왕들은 가슴을 치며 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여,

     당신의 말은 우리가 그릇된 인식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게 해주었다.

 

     보라, 우리는 왕이긴 하지만,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를 찾기 위해서 여행 중이다.

     우리는 그에게 이 나귀를 데려가려고 한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이 고상한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모든 운명에서, 으뜸가는 존재가 권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보다 더 가혹한 것은 없다.

     으뜸가는 존재가 권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릇된 것들이 지배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가?

     만약 권력을 지니는 자가 최악의 인간이라면, 그래서 짐승에 가까운 존재라면,

     천한 사람들이 득세하게 되고, 마침내 천한 사람들의 모습이 미덕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면서 천한 사람들의 미덕이 오로지 유일한 미덕인 양 여겨지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와 두 왕

차라투스트라는 왕들의 이야기에 감명받고 자신을 드러낸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가!

     왕들에게 이런 지혜가 있다니!

 

     저는 여러분의 이야기에 완전히 감동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시를 짓고 싶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에게 듣기 좋은 시는 아닐 지라도.

     저는 주변을 의식하며 이야기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좋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나귀도 “예-” 라고 긍정하는 소리를 내었다.

 

          옛날, 기원후 1년 이었을 것이다.

          포도주 없이 취해버린* 시빌라가 말했다.

              “아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깊이 몰락한 적이 없었다!

               로마는 창녀들이 넘치는 창녀 소굴이 되어버렸다.

               천한 사람이 로마의 황제가 되었고,

               창조자는 종교인이 되고 말았다.”

*혼란에 빠진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로마의 몰락

차라투스트라에 의하면, 로마는 천한 사람이 지배하고, 사회적 가치와 규율이 종교적으로 변하면서,

여기에 사람들이 향락적으로 변하면서 몰락하게 된다.


 

-2-

 

차라투스트라의 시에 왕들은 만족했다.

우측에 있던 왕이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가 너를 보러 길을 나선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너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말에 따르면, 너는 그야말로 사람들을 조롱하며 비웃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너를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사회적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귀와 마음이 너의 잠언에 공명했으니.

     그래서 우리는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평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너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부조리를 지적하기 위해서 사회 속에서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부조리가 생겨도 묵묵히 이해해주기 보다는,

     부조리가 발생할 때만 다투고, 부조리가 없으면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고 하는 너의 이야기를 말이다.

 

     이처럼 올바름을 위해서 투쟁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올바름을 위해서 다투는 용기, 이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남의 일에 간섭해도 신성하다고.

 

     차라투스트라여,

     너의 이러한 말에, 우리에게 흐르고 있던 창조자의 피가 반응했다.

     그것은 낡고 낡은 오래된 와인통이 생기를 부여한 것과도 같았다.

 

     올바름과 관련하여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논쟁할 때, 우리의 선조들은 삶을 사랑했었다.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올바름에 대한 의지를 가진 자에게 인간을 쇠약하게 하는 미적지근한 것/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평화를 위한답시고 올바름을 위해 다투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의 선조들은 얼마나 한숨을 쉬었는지.

     그들은 올바른 것을 세우는 논쟁을 갈망했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는 모두로부터 자신의 생각이 올바르다 평가받기를 갈망하는 법이니.”

 

악마로 비춰지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사회의 부조리를 전복시키려 하므로,

사람들에게 사회를 망치려는 자로 오인되어 악마로 평가된다.


 

왕들이 자신들의 선조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할 때,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의 열정을 조롱하고 싶었다.

왜냐면 그들은 올바름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올바름을 위해서 행동하지는 않는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고는 말했다.

 

    “좋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아가는 길은 제 동굴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오늘 저녁을 같이 합시다.

 

     하지만 지금은 저를 급히 부르는 이가 있어, 그리로 가야 합니다.

     당신들이 제 동굴에서 저를 기다려준다면, 제 동굴에게는 영광일 겁니다.

     물론 좀 오래 기다려야 하겠지만요.

 

     하지만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일가견이 있으시겠지요?

     궁정보다 기다림이 필요한 곳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왕들에게 남은 유일한 미덕은 ‘기다릴 수 있는 능력’ 아닙니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길을 나서는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왕들에게 자신의 동굴에서 저녁을 같이 보내자고 말한 후,

울부짖던 올바름 추구자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선다.


생각해볼 거리들

 

왜 두 명의 왕과 나귀가 나타나나?

ㅡ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ㅡ두 명의 왕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니체가 인정하는 올바름을 알던 왕, 지도자가 둘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지만, 알 수 없다.

 

ㅡ나귀 역시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없지만, 후술될 때 분란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므로, 긍정적인 장치로 쓰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ㅡ이전에 말한 것처럼 나귀는 “긍정”하는 자로서 볼 수 있는데, 후에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긍정하는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왜 도시에서 모든 것이 그릇되고 썩으며, 피가 무엇보다 그렇다고 하나? 오래된 고약한 질병과 치료술사는 뭘 말하나?

ㅡ도시는 그릇된 것이 올바른 것인 양 받아들여지는 곳이다.

ㅡ그런 점에서 도시에서는 올바른 정신을 갖추기가 어렵다.

 

ㅡ나의 피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피가 썩었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각이 썩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ㅡ즉 사회의 그릇된 문화로 인하여, 그릇된 정신을 가짐으로써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ㅡ오래된 고약한 질병의 경우, 편리와 실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으로 보인다.

ㅡ이것이 부조리를 낳고, 사회는 부조리가 충만해진다.

ㅡ이런 상황에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구제책으로 종교나 향락주의를 설파하는 자들이 나타나는데, 이를 고약한 질병과 그에 대한 치료술사라고 말하는 걸로 보인다.

 

왜 왕은 가장 좋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농부를 뽑나?

ㅡ서술되는 내용으로 볼 때, 농부가 갖는 행동적인 특징에 따라서 고귀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ㅡ농부에 대해서, ‘씨를 뿌리고 거두는 사람’이란 의미로 접근이 가능하긴 하지만, 현재 내용에서는 그렇게까지 볼 여지는 없는 듯하다.

 

천민-잡탕에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온갖 가축이 언급되는데 왜 언급되나?

ㅡ여기서 가축은 길들여진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노아의 방주는 종교적 의미에서 구원받은 존재들을 담은 배다.

ㅡ그런 면에서 노아의 방주는 종교적으로 길들여진 자를 말하는 것 같다.

 

누구도 더는 경외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무엇을 놓고 말하는 것인가?

ㅡ여기서 언급되는 것은 올바름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ㅡ사회는 기본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하지 않으니 말이다.

 

왕들이 달아난 자들은 알랑대고 추근대는 개들이자, 야자나무 잎에 금칠을 하는 자라고 하는데, 어떤 존재인가?

ㅡ알랑대고 추근대는 개들은 아첨하는 자들로 보인다.

ㅡ야자나무 잎에 금칠을 한다는 것은, 정확하진 않지만, 쓸데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한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왕은 왕들 자신이 그릇되어버렸다는 것에 대해서 왜 구역질을 느끼나?

ㅡ자신들이 왕이 될 존재가 아닌데 왕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해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오래되고 변색된 선조들의 옷을 늘어뜨려 치장하고, 어리석은 자, 교활한 자, 권력을 통해 이윤을 챙기려는 자들을 기념하는 주화를 늘어뜨려 치장하고 있다는 것은 뭘 말하나?

ㅡ오래되고 변색된 선조들의 옷을 치장한다는 것은 과거의 관습이나 전통을 의미 있는 것, 가치 있는 것으로 치장한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기념 주화를 늘어뜨리고 치장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 교활한 자,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로 추앙한다는 이야기다.

ㅡ두 경우 모두 부조리한 것을 추앙하는 태도이므로, 지적 받는다.

 

소리 질러대는 자, 쇠파리 같은 글쟁이, 소상인의 악취, 몸부림치는 야심, 사악한 숨결은 뭘 말하나?

ㅡ소리 질러대는 자는 궤변을 하는 사람이거나 감정적 토로를 잘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쇠파리 같은 글쟁이의 경우, 쇠파리는 피를 빨아먹는 존재인데, 여기서 피는 생각을 말하므로, 타인의 생각을 빨아먹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ㅡ이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으로 글을 쓰지 않는 존재를 말한다.

 

ㅡ소상인의 악취의 경우, 이윤만을 따지는 실리만을 따지며 부조리도 행하는 것을 말한다.

 

ㅡ몸부림치는 야심의 경우, 권력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ㅡ사악한 숨결의 경우, 악을 행동하는 존재를 말하는 걸로 보인다.

 

왼편의 왕이 말하는 오랜 병은 무엇인가?

ㅡ오른편의 왕이 세상의 그릇됨을 보면서 역겨워하는 것이므로, 부조리에 대한 혐오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정체가 들통나고 말았다는 말은 왜 나오나?

ㅡ사실 이 부분은 오역이 아닌가 싶다.

ㅡ우선 이 말이 나온 후의 내용을 보면, 차라투스트라로 인해서 저 왕들이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정체가 들통났다는 표현은 뜬금없는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ㅡ관련해서 자세히 보면, “Wir sind erkannt!”가 “우리의 정체가 들통나고 말았다!”로 해석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ㅡ여기서 erkannt가 “드러나다”의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어서, 정체가 들통나고 말았다고 표현한 것 같은데, 이 단어는 “깨닫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ㅡ그런 점에서 문맥의 흐름상, 여기서는 “드러나다” 보다는 “깨달았다”로 보아야 맞을 듯하다.

ㅡ왜냐면 차라투스트라로 인해서 저들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부조리를 벗어나려고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는 가라앉아 가축이 되고, 신 자신은 유대인이 되고 말았다는 건 뭘 말하나?

ㅡ로마 황제를 고귀한 자들이 했다면, 정말 으뜸가는 존재들이 했다면, 이제는 부조리한 자들, 그릇된 자들이 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ㅡ신 자신이 유대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의 경우, 신을 창조자로 치환한다면, 창조자들이 유대인이 되었다는 것인데, 유대인을 종교적 인물로 본다면, 올바른 가치를 발견하고 찾던 창조자들이 전통이나 종교적인 것을 받드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듯하다.

ㅡ즉 통치자도 수준이 떨어지고, 사회적 가치와 규율을 제시하던 존재들도 종교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차라투스트라의 적들의 거울에 악마로 보이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적들의 세계를 망치려고 드는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ㅡ그래서 악마로서 평가받는다.

 

평화를 사랑하되 새로운 싸움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랑하라는 말은 뭔 말인가?

ㅡ이 말은 「차라투스트라, 1권 10장」에서 언급된 것이다.

ㅡ가볍게 이야기를 해본다면, 사람들을 계몽시키려는 자는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아야 한다.

ㅡ그래야 부조리를 지적하면서 사람들 곁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ㅡ그런 점에서 부조리를 지적하면서도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

ㅡ즉 부조리를 지적하기 위한 평화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긴 평화보다 짧은 평화를 사랑하라는 건 뭘 말하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평화롭게 지내게 되면, 부조리를 눈감아줘야 한다고 본다.

ㅡ그런 점에서 부조리가 있을 때는 다투고, 부조리가 없을 때만 평화로운 짧은 평화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 용감한 것이 선인가?

ㅡ차라투스트라는 타인을 위해 동정하는 것보다는 용감한 것이 많은 사람들을 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차라투스트라 1권 10장」

싸움과 용기가 이웃사랑보다 위대한 일을 더 많이 해냈다.

그대들의 동정이 아니라 그대들의 용기가 지금까지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낸 것이다.

 

'무엇이 선인가?'라고 그대들은 묻는다.

용감함이 선이다.

그러니 "선은 아리땁고도 감동적인 것"이라는 말은 어린 소녀들이나 하게하라.

 

좋은 싸움은 왜 모든 것을 신성하게 만드나?

ㅡ여기서 언급되는 좋은 싸움을 올바름을 위해서 다투는 것을 말한다.

ㅡ이는 「차라투스트라, 1권 10장」을 참고해서 보는 게 좋다.

     그대들은 전쟁조차 신성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명분이라고 말하는가?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훌륭한 전쟁이야말로 모든 명분을 신성하게 만드는 것

     이다.

 

ㅡ위 구절에 따르면, 그대들은 좋은 명분이 없으면 전쟁이 신성하지 못하다는 의식을 갖는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에 대해서, 명분이 없어도 훌륭한 전쟁을 한다면, 그냥 신성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ㅡ이는 곧 올바름을 위해서 다툴 때, 명분이 필요하지 않고, 그냥 올바름을 위해서 다투라는 이야기다.

ㅡ즉 나와 무관하면 그릇된 것을 보더라도 놔두는 것을 하지 말란 이야기인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왕들 몸 속에 흐르고 있는 조상의 피가 끓나?

ㅡ왕들은 본래 규율과 가치를 정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ㅡ물론 그것이 세습되거나 권력 다툼을 통해서 점차 그런 능력이 없어도 왕이 되었다고 차라투스트라는 본 것 같다.

ㅡ그런 점에서 현재 두 왕은 규율과 가치를 정하던 존재의 피를 지니고 있었는데,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의해서 그 피가 반응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칼들이 난무했을 때 왜 조상들은 삶에 호의적이었나?

ㅡ여기서 말하는 칼은 올바름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ㅡ이러한 올바름에 대한 생각이 난무하게 되는 과정에서 올바름을 향하는 노력을 하므로,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ㅡ만약 올바름을 향하는 노력을 못하게 되면, 삶은 덧없는 게 되기 때문에, 올바름을 향할 수 있어야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평화의 태양은 왜 쇠약과 미지근함으로, 긴 평화는 수치로 여겨지나?

ㅡ평화는 대립을 막는다.

ㅡ그런 면에서 올바름을 추구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가는데, 그렇게 되면 올바름은 점차 쇠약해지고, 그 열의도 사라진다.

ㅡ그런 점에서 긴 평화를 갖는 것은 대립이 없는 상태 속에서 그릇됨으로 빠질 수 있기에 수치가 된다.

 

칼은 왜 피를 마시고 싶어하고, 욕망 때문에 번뜩이나?

ㅡ여기서 칼은 앞서 말한 것처럼 올바름에 대한 생각이고, 개인이 자신만의 올바름을 구상한다면, 그것을 남들에게 제창하고 싶어하게 된다.

ㅡ그래서 타인과 논쟁하고, 타인들을 자신의 사상에 편승하게 하려고 하게 되는데, 이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