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3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3권 12장 의역 (완) (서판 3/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7. 26. 16:53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3권 12장 서판 -3-


         
12장 21~30절 개괄

 

 

21절~30절까지의 개괄이다.

 

21절의 경우, 지나치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절이다.

즉 이상을 위해서 노력한답시고 허튼 데에 에너지를 쏟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조리에 따르는 사람은 많고, 부조리의 원흉을 상대하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고, 그 양에 압도되어 지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투스트라는 부조리의 원흉인 사회적 규율을 갈아치우려고 노력해야지, 부조리에 물든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22절의 경우, 대중의 관심사에 대해서 말한다.

대중은 생계와 관련된 것, 돈벌이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찾지만, 인간적인 성숙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게 편리를 추구하면서 기술이 발달하고, 동물들만이 지녔던 유익한 능력을 얻는데 성공한다.

아직 비행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는데, 과연 하늘을 나는 능력까지 얻고 나면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인간이 보다 인간다워지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23절의 경우, 남녀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말한다.

이는 「차라투스트라, 1권 14장/18장/20장」에서 다룬 주제를 다시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올바른 것을 추구하면서 남자는 그릇된 것과 싸워 나가기를 바라고, 여자는 미래를 위하여 출산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한다.

즉 올바름을 추구하는 존재들이 되면서 각자의 성역할에 맞춰 살라는 이야기다.

 

24절의 경우,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결혼은 인생에서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너무 급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니체는 서로 잘 맞을 수 있을지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점검하고 결혼을 해야, 결혼이 불만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키워내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25절의 경우, 사회는 올바른 가치를 찾기 위해서 나아가는 여정이지 고정된 규율에 따라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맹목적으로 고정된 규율에 따라 살지 말고, 그 규율을 점검하고 평가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26절과 27절의 경우, 사회적 규율에 따라 사는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에 대해서 비판한다.

이들은 사회적 규율을 맹목적으로 따름으로써, 올바른 가치와 이해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니체에게 비판받는다.

 

28절의 경우,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앞선 이야기를 보면, 사회와 선하다고 여겨지는 자들을 비판하라고 하는데, 이는 듣는 사람에게는 너무 급진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해서, 듣는 이들이 왜 급진적으로 느끼게 되는지 설명하며 의지를 다잡으라고 이야기를 한다.

 

29절의 경우, 이상을 위한 강한 의지를 가지라고 이야기를 하는 절이다.

다이아몬드와 같이 강한 의지를 지니고, 이상 사회를 위해서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하라고 말한다.

 

30절의 경우, 자신의 의지를 다잡는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이해를 갖추면서 사람들과 다툴 때,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향해서 묵묵히 나아갈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본문

 

 

-21-

 

저는 올바른 것을 위해 용기를 내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단지 용기내서 부조리한 것들과 다툴 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자신이 노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올바른 것을 위해서 큰 용기를 내는 사람들 중에는 모든 부조리와 맞서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소한 부조리를 지나치면서 용기를 낼 가치가 있는 부조리에 전력을 다하죠.

 

우리는 부조리의 원흉, 부조리를 설파하는 자와 다퉈야 합니다.

단순히 부조리에 따르는 자들과 다퉈도 덧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맞설 만한 가치가 있는 자와 다투고, 그러한 적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저는 전에 한 번 그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

 

올바름을 위한 더 가치 있는 싸움을 하기 위해서, 사소한 부조리를 지나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부조리한 것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유행을 견뎌야 하죠.

 

올바름을 추구하지 않는 자들, 이 어수룩한 자들의 논의를 지켜볼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자신들의 정당함과 타인들의 부당함이 언급되는데,

그걸 지켜보고 있자면, 올바르게 잡아주고 싶어서 참기 힘들 겁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보기에, 사람들은 정당한 것을 부당하게, 부당한 것을 정당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 면밀히 알기 위해 질문하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비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주장을 보고 듣더라도, 의문을 품지 말고 홀로 조용히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저들을 도우려 하지 말고, 여러분은 목표를 위해서 여러분의 길을 가길 바랍니다.

저들은 그릇된 길로 나아가는 흐름 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 나오지 않는 한 우리가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들의 잘못된 이야기를 보더라도, 제 갈 길을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돈을 중시해도, 그렇게 하게 두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명예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진정으로 명예로운 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저들의 행동은 모두 실리와 물질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저들은 어떻게든 이득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염탐하고 훔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서로 좋은 이웃이라고 부르죠.

 

그런 면에서 옛날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때는 서로 자신을 최고라 말하며 지배하려고 했으니까요.

세상은 어찌되었든 최고의 것이 지배해야 하는데, 요즘은 최고의 것이 아니라 음흉한 것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것이 지배해야 한다는 저와 다른 가르침을 말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최고의 것이 자리하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기

차라투스트라는 모든 부조리에 맞서기는 힘들다고 보기에,

부조리의 원흉에 대해서 맞서기 위해서, 사소한 부조리는 참고 견딜 필요도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22-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하여 갈등과 이슈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의 삶에 흥미로운 것은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쉽게 해결이 된다면, 저들은 이제 무엇을 위해서 노력할까요?

 

사람들은 맹수 같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주로 하는 것은 약탈이고, 이를 위해서 기만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갈등과 이슈가 있어야 저들은 만족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것, 올바른 것을 사냥하는 맹수가 되어야 합니다.

더 정교하고 영리해져서 인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인간은 이러한 올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존재이니까요.

*위버멘쉬, 인간다운 인간을 말한다.

즉 사회적 규율과 가치를 벗어나서 올바름을 추구하는 인간 말이다.

 

인간은 동물들의 능력을 자신들도 갖추려고 했습니다.

인간이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도 힘든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러 동물의 능력을 정복하면서, 인간에게는 이제 새들의 능력만이 정복해야 할 능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새의 나는 능력까지 정복한다면, 이제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 될까요?

 

맹수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은 다른 맹수들의 능력을 가지려 하는 것보다,

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23-

 

저는 남자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는 올바름을 위해서 다투는 존재가 되고, 여자는 미래를 위해서 출산을 하는 존재가 되기를.

그러면서 둘 모두 올바른 걸 추구하고, 행할 수 있기를.

 

만약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던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자기 자신을 잃은 날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긍정할 수 없게 하는 앎은 올바른 앎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춤을 추는 사람들

차라투스트라는 춤을 추는 존재로서 남녀가 결혼하기를 바란다.


 

-24-

 

결혼을 하고서 후회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성급하게 결혼하고, 그 결과가 이혼으로 드러나니 말입니다.

 

자신을 옥죄면서 결혼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결혼이 파국에 이른 여자가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 결혼 생활을 깼지만, 결혼 생활이 먼저 저를 부쉈습니다!”

 

저는 좋지 못한 결혼을 한 사람들이 세상에 불만을 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더는 혼자가 될 수 없어지기에, 그에 따라서 세상에 복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바른 사람들이 서로 결혼하기에 앞서서 이렇게 말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분명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우리가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사랑이 실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 한번 일정 기간 동안만 같이 결혼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결혼해서 둘이 함께 지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조언합니다.

이상적인 결혼을 위해서 이러한 조언을 하지 않는다면,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결혼이 단지 자손을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으로서, 

긍정적으로 여러분에게 작용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남녀

행복한 결혼을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일정 기간동안만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25-

 

누군가 옛 가치의 원천, 사회적/종교적 규율이 나타난 배경*에 대해서 잘 알게 된다면

올바름을 추구하고 이로써 이상적 가치가 구현된 사회를 그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종교적 규율은 구성원의 행복을 목적하면서 나타나게 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하고 사회적/종교적 규율을 바라보면, 무엇이 더 개선되어야 하는지 어떤 규율이 생겨나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형제들이여,

이상 사회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이제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에 따른 규율들이 나타나고, 이를 다시금 고찰하는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기존 가치를 검토하는 일을 하면,

문제가 있는 규율과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그에 따라서 사람들은 혼란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올바른 것들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치를 검토하는 일은 순간마다 올바른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누군가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체계를 주장한다면, 그 주장이 옳은지 살피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이때, 정말 따를만한 것인지 아닌지 평가되죠.

주장하고 검증하고 실패하고 학습하여 다시 도전하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러한 시도와 도전의 연속인 것입니다.

사람들과 사회는 올바른 가치를 제공하는 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는 사회와 계약을 맺고 그 계약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회란 자고로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서 올바른 가치를 찾고 이를 위해 노력하며 사는 곳입니다.

이 점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가치의 샘

지하 깊은 원천에서 샘이 솟아오른다.

사회적/종교적 규율에서 가치가 솟아오르듯이.


 

-26-

 

형제들이여!

인간의 미래에 가장 위험한 것은 어떤 인물들입니까?

사회적 규율에 따라 사는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는 자들 아닙니까?

    “우리는 이미 무엇이 선하고 정의로운지 알고 있으며, 선과 정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과 정의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답을 찾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악한 자들보다 <선한 자들>이,

세계를 비방하는 자들보다 <선한 자들>

사람들과 사회에 더 큰 해를 끼치는 자들 같습니다.

 

형제들이여

예수는 사회적 규율에 따라 사는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을 보고,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들은 규율에 따라서만 살며 올바른 인식을 할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죠*.

*사람들은 선한 사람은 올바른 인식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선한 자들을 비판하는 예수의 말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게 된다.

 

사회적 규율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이미 그들의 정신은 사회적 규율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들의 어리석음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정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선한 자들>은 규율을 벗어나는 이를 박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의 규율을 지켜야만 하기 때문이죠.

 

다음으로 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선한 자들>에 대해서 탐구한 자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정말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규율을 의심하고 부정하며, 새로운 규율을 창조하는 자를 미워합니다.

그들은 이런 자를 범죄자라고 하죠.

 

사회적 규율에 따라 살며 선하다고 여겨지는 자들

그들은 올바른 이해를 구할 수 없고, 그렇기에 올바른 규율을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규율에 따라 사는 이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언제나 그릇됨의 시작을 알리는 징표이자 쇠락의 징후입니다.

 

이들은 가치를 점검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이들을 기존의 것들을 위해서 희생시킵니다.

그렇게 오래되어 낡은, 그릇된 가치를 존속시킴으로써 미래의 세대도 희생시킵니다.

규율에 따라 사는 이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언제나 그릇됨의 시작을 알리는 징표이자 쇠락의 징후란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창조자의 처벌

사회적 규율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존 가치를 파괴하는 자를 규율 강화를 위한 제물로 삼으려고 한다.


 

-27-

 

나의 형제들이여,

제 말을 이해하셨습니까?

제가 전에 말한 <최악의 인간>에 대해서 이해하셨습니까?

 

인류의 미래에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이 아닙니까?

이런 자들을 부숴주시길 바랍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제 말을 이해하셨습니까?

 

규율을 지키는 자들

이들은 사회적 규율을 지키면서 미래 사회에 부조리를 물려준다고 차라투스트라는 지적한다.


 

-28-

 

여러분,

제 이야기를 듣고 놀라셨습니까?

 

제가 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선하고 정의로운 자들>과 그들의 규율을 부숴달라고 하여,

여러분이 제 말에 따르게 되었을 때,

비로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야 여러분은 이 여정이 주는 두려움과 혼란을 경험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사회적으로 <선한 자들>은 여러분에게 그릇된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자들의 거짓말 속에서 태어나고 보호받으며 자라났죠.

여러분이 생각하고 사유하는 모든 것이 근본부터 왜곡되어 졌던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배운 것들을 넘어서 인간을 이해한 저는 인간이 어떤 미래를 살게 될지에 대해서도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 제 말에 따라 이상적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용감하고 끈기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는 중에 사람들이 여러분을 전복시키고, 가만두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저항에 버틸 수 있도록,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합니다.

 

자, 우리의 등장으로 사회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사회는 규율을 지키고 강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낡고 그릇된 규율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상 사회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사회의 저항보다 우리의 이상 사회를 향한 의지가 더 강하게 몰아칩니다.

 

폭풍 속을 항해하는 범선

차라투스트라는 사회를 바다로 보고, 이상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배를 타고 출항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29-

 

다이아몬드를 향해서 석탄은 말합니다.

    “너는 왜 그렇게 단단한가?

     우리는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닌가?”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렇게 마음이 무릅니까?

여러분은 저와 형제 아닙니까?

왜 그렇게 쉽게 물러나며 자신을 양보합니까?

여러분은 왜 그렇게 사회적 규율에 따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부인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왜 이상을 향하는 운명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상을 향하는 운명이 되지 않고, 부조리한 규율들에 대해 무자비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러분과 제가 함께 이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의지가 단단하지 않고,

부조리한 가치와 규율들을 점검하거나 비판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상 사회를 같이 만들 수 있겠습니까?

 

가치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자들은 의지가 강합니다.

그 강한 의지로 과거를 의미 있게 만들고, 미래에 이바지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규율을 제시합니다.

     “이상을 향한 강한 의지를 지녀라.”

 

다이아몬드와 숯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을 의지가 강한 다이아몬드, 자신의 형제들을 의지가 약한 숯으로 비유하며,

단단한 의지를 가지라고 이야기를 한다.


 

-30-

 

고난이 승화된*, 이상을 향한 나의 의지여

나의 운명이여,

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하고 이기면서 이에 도취되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기를!

*여기서 언급되는 의지는 올바름을 향하려는 의지인데, 이 의지는 부조리를 겪으면서 강화된다.

그래서 고난이 승화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나의 운명이여,

위대한 목적을 위해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저를 지키고 아껴주기를!

 

올바름에 대한 나의 의지여,

부조리와 싸워 승리하면서도 도취하지 않기를!

누가 자신의 승리에 도취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승리에 도취하고 안주하여, 올바른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언젠가 올바른 이해를 갖추게 될 때, 내적 성장도 함께 이뤄져 있기를.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 이상적인 존재가 되려는 의지도 준비되어 있기를.

 

올바른 이해를 갖추고, 이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된 성숙한 존재,

그릇된 것을 파괴하고, 올바른 것을 향해 나아가며 자신 안의 그릇된 것이 부숴지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존재이기를.

 

올바른 이해를 선사하는 자이자,

그릇된 것과 다투고 파괴할 준비가 된 존재이기를,

 

오 고난이 승화된, 이상을 향한 나의 의지여,

너는 나의 운명이다!

이상 사회를 위해서 나아가는 나를 살펴달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별을 향해 나아가는 화살

차라투스트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화살로서 잘 나아갈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생각해볼 거리들

 

왜 검객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나? 누구를 벨 것인가도 왜 알아야 하나?

ㅡ후술되지만, 상대해야 할 적을 잘 골라서 에너지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이상 사회를 구현하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찬성과 반대로부터 그대들의 눈을 깨끗하게 지켜내라는 건 뭘 말하나? 왜 거기에는 정당함과 부당함이 많이 있나? 왜 그것을 주시하는 자는 화가 차오르나?

ㅡ찬성과 반대는 논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거기에 정당함과 부당함이 있다는 것은 논의 속에 올바른 것도 있고 그릇된 것도 있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이로 볼 때, 사람들의 논의에는 올바르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그릇된 것이 올바른 것인 것 여겨지며 진행되기도 해서, 사람들이 논의하는 걸 보고 있자면, 답답해지는 상황으로 가는 듯하다.

 

들여다보는 것과 검으로 베어버리는 것, 여기서 이것은 하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사람들의 논의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 질문을 할 수 있다.

ㅡ문제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장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내뱉는 질문이 되려 비판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ㅡ그래서 의견을 알기 위해서 질문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비판하는 것/검으로 베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왕들이 지배하던 시대가 지났고, 대중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왕이 될 자격이 없다는 건 뭘 말하나?

ㅡ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명예를 중시하는 시대를 왕이 지배하는 시대로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ㅡ왜냐면 후술되는 걸로 볼 때, 최고 존재가 지배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존재를 왕이라고 한다면,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가 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가장 명예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ㅡ그런 면에서 명예를 중시하는 시대가 지났고, 대중들은 가장 명예로운 자로서 자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최고 존재가 지배해야 한다고 말하나?

ㅡ차라투스트라가 지배를 권장하는 인물은 오직 올바른 이해를 추구하고, 그에 따라서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자다.

ㅡ이러한 자가 지배를 해야만 이상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빵을 거저 얻는다는 것은 뭘 말하나? 왜 생계유지가 저들에게 진정한 즐거움이 되나?

ㅡ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ㅡ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에 따라서 행복해하고 만족해한다.

ㅡ그런 점에서 생계유지가 진정한 즐거움으로 언급되는 듯하다.

 

왜 저들은 맹수라고 하나? 왜 저들의 노동에는 강탈이 있고, 벌이에는 책략이 있나? 왜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나?

ㅡ여기서 저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ㅡ일반적인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뭔가를 취하는 형태로 세상을 살아간다.

ㅡ왜냐면 스스로 가치나 뭔가를 생산하는 능력이 적기 때문이다.

ㅡ그래서 저들의 노동은 강탈이라고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ㅡ그리고 그렇게 강탈하는 과정에서 책략/기만/속임수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강탈하고 서로를 기만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니 삶이 힘들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인다.

 

왜 저들은 더 뛰어난 맹수, 인간을 닮은 맹수가 되어야 한다고 하나?

ㅡ인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인간적이라고 한다면, 올바른 것을 찾고 사유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 같으며, 그에 따라서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전제하는 듯하다.

 

인간이 온갖 짐승들로부터 덕들을 빼앗아 왔다는 이야기는 왜 나오고 어떤 의미인가?

ㅡ징승들로부터 덕을 빼앗아 왔다는 것은 동물들의 능력을 따라했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이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외부의 좋은 능력을 가져오려고 하는 경향성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나는 것마저 배우게 된다면, 인간의 약탈욕은 어디까지 날아오르게 될 것인지라는 말은 왜 나올까?

ㅡ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능력이 새의 비행 능력인데, 이것마저 정복하게 된다면, 인간은 과연 어떤 것을 약탈하려고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이다.

ㅡ모든 짐승의 능력을 약탈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신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남자 여자 모두 머리와 발로 추는 춤에 능하길 바란다는 건 뭘 말하나?

ㅡ춤은 이상을 몸짓으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ㅡ그런 점에서 머리와 발이 춤을 추는 것은 생각과 행동이 모두 이상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ㅡ결국 생각과 행동이 모두 이상적이길 바란다는 문장이다.

 

한 번이라도 춤을 추지 않은 날은 왜 잃어버린 날로 치나?

ㅡ춤을 춘다는 건 이상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러지 못한 날은 잃어버린 날로 친다는 이야기다.

ㅡ이때 잃어버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다.

 

한 번도 큰 웃음을 선사하지 않았던 진리는 왜 모두 그릇되었다고 하나?

ㅡ웃음을 선사한다는 것은 낙관하게 하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런 면에서 사회적/종교적 진리의 경우, 개인을 힘겹게 하므로, 웃음을 선사하지 않는 진리로 취급할 수 있을 듯하다.

ㅡ그런 면에서 웃음을 선사하지 않은 진리, 사회적/종교적 진리는 그릇된 것이라고 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ㅡ또한 ‘웃음을 선사하는 것만이 옳다’는 것은 삶을 낙관시키는 것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보인다.

 

왜 고약하게 짝지어진 자들은 고약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자들이 되나? 혼자 지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보복을 온 세상에 한다는 것은 뭘 말하나?

ㅡ고약하게 짝지어진 자들은 서로 다른 성향의 존재들이 결혼한 경우를 말한다.

ㅡ이들은 상대를 떠나서 홀로 있고 싶어하지만, 결혼을 했기에 홀로 있을 수 없다.

ㅡ성향이 다른 존재와 함께 한다는 것은 다름에 따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ㅡ이에 따라서, 고통에 시달리기에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하는 등의 활동으로 삶을 일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앞을 향해서 뿐만 아니라, 위를 향해서도 자신을 심어야 한다고 하나? 혼인이라는 정원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건 뭘 말하나?

ㅡ앞을 향한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단순히 미래로 향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위/성장/성숙함을 향해야 한다.

ㅡ이렇게 미래를 향하고 성숙해짐을 향할 때, 결혼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으로 보인다.

ㅡ이는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고 더 나은 삶을 사는 방향으로 결혼이 도움을 주길 바란다는 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옛 원천을 잘 알게 된 자는 왜 미래의 샘과 새로운 원천을 잘 아나?

ㅡ여기서 말하는 옛 원천은 옛 가치의 원천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ㅡ여기서 옛 가치는 사회적 규율이나 종교적 규율이라고 볼 수 있다.

ㅡ그런 면에서 옛 원천을 잘 알게 된 자는 사회적/종교적 규율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이때, 사회적/종교적 규율에 대해서 함몰되었다기 보다는, 본질을 잘 파악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ㅡ그런 경우, 사회적/종교적 규율의 부조리를 파악하게 되고, 이에 따라서 올바름에 대한 추구가 나타나며, 그러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규율들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ㅡ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민족의 발현과 새로운 샘이 새로운 심연으로 흘러내리는 건 뭘 말하나?

ㅡ새로운 민족의 발현은 새로운 규율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ㅡ새로운 샘은 새로운 가치/규율을 나타내고, 이것이 새로운 심연으로 흘러내린다는 것은 이 가치과 규율이 새로운 존재들에 의해서 점검받고 평가받는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즉 ’기존 가치에 대한 고찰 > 새로운 가치 창출 > 새로운 가치 고찰 > 또 새로운 가치 창출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진이 일어나 많은 샘을 파묻고, 갈증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건 뭘 말하나?

ㅡ지진은 가치의 전복을 말한다.

ㅡ이 과정에서 부조리한 규율과 그에 따른 가치가 전복된다.

ㅡ그렇게 가치가 전복되면, 기존 가치를 긍정하던 사람들은 괴로움이나 혼란에 빠질 수 있다.

ㅡ이를 갈증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한 걸로 보인다.

 

옛 민족들의 지진 속에서 새로운 샘이 솟구친다는 것은?

ㅡ옛 규율과 가치를 평가하여 전복시키면서 새로운 가치가 솟구친다는 이야기다.

 

누군가가 샘에 대하여 외친다면, 왜 수많은 시도하는 자들이 운집하나? 왜 누가 명령할 수 있고 복종해야 하는지 시험된다고 하나?

ㅡ어떤 이가 올바른 가치를 주장한다면, 기존 질서에 불만을 갖던 사람들이 몰린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그리고 이때, 정말 따를 만한지 아니면 따르기엔 부족한지가 갈린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그렇게 따를만 하면, 처음 새로운 가치를 주창한 사람은 명령하는 자가 되고,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왜 일종의 시도인가? 왜 사회는 계약이 아닌가?

ㅡ인간 사회는 결국 가치를 제시하고, 그 가치에서 올바른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는다고 보는 것 같다.

ㅡ그런 면에서 사회는 규율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공간이라 보기 어려운 듯하다.

 

왜 선한 자와 의로운 자는 인류 미래의 최대 위험인가?

ㅡ이들이 선하고 의롭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사회적 규율에 따라서 좋은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ㅡ이는 곧 사회적 규율을 옹호하고 지키는 존재를 말하는데, 이러 경우 부조리한 규율을 지키고 옹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이러한 부조리한 규율을 옹호하고 지키게 되면, 이것이 후대에 이어지게 되는 상황이 생기고, 이는 미래 세대에게 좋지 못한 것을 물려주는 것이기에 위험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이 선한 자와 의로운 자들의 심중을 꿰뚫고 바리새인이라고 했는데, 이건 뭘 말하나?

ㅡ선한 자와 의로운 자가 사회적 규율에 잘 따르고 올바른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라는 걸 지적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선한 자들의 우매함은 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략적인가?

ㅡ우매한데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왜 종말의 시작인가?

ㅡ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선한 자들은 부조리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며, 그릇된 것을 양산하게 되기 떄문에, 종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ㅡ즉 그릇됨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선한 자들과 선한 자들의 서판을 부수라고 할 때, 차라투스트라는 왜 그제야 비로소 인간을 태우고 높은 바다를 향해 출항했다고 하나?

ㅡ여기서 바다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즉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을 데리고서 현재 사회를 넘어서 나아가려는 것인데, 이는 곧 이상 사회를 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ㅡ따라서 바다를 건너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선한 자들이 따르는 사회적 규율을 부수는 것과 같다.

ㅡ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바다를 출항하고 나서, 인간에게 큰 경악과 큰 시야와 병과 구토와 뱃멀미가 오나?

ㅡ바다로 나아간다는 것은 현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ㅡ왜냐면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ㅡ그런 점에서 사회 비판을 하는 과정은 강한 의지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래도 되나?”하는 의문을 주는 상황이 된다.

ㅡ그에 따라 불안해하고 혼란을 겪을 수 있는데, 이를 경악과 시야, 병과 구토와 뱃멀미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선한 자들이 거짓 해안과 안전을 가리켰다는 것은 뭘 말하나?

ㅡ거짓 해안의 경우, 바다의 가장자리로, 바다와 육지가 만난 상황을 말한다.

ㅡ그런데 바다는 부조리한 규율이 있는 사회를 말하므로, 육지는 이 부조리한 규율을 벗어난 곳을 말한다.

ㅡ그런 면에서 육지는 이상적인 곳을 나타내고, 부조리한 현생을 벗어난 곳/이상적인 곳을 가리켜 해안이라고 부를 수 있다.

ㅡ그런데 거짓 해안이므로, 선한 자들이 가르친 것은 그릇된 이상 사회, 그릇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ㅡ안전도 해안과 같은 의미로서 언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라는 물을 찾아냈다는 건 뭘 말하나? 인간의 미래라는 물은 뭘 말하나?

ㅡ여기서 물은 바닷물과 대비되는 것으로 보인다.

ㅡ바닷물은 마시면 죽지만, 물은 마시면 산다.

ㅡ그런 면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으로서의 물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따라서 인간이라는 물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으로서의 인간 이해를 말한다고 할 수 있고, 이에 따라서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미래를 찾아내게 될 수 있다.

ㅡ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형제들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말하나? 왜 바다는 요동치고 있나? 왜 사람들이 그대들에 기대 똑바로 서려고 하나?

ㅡ현재 차라투스트라와 형제들은 이상을 향해서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며 나아가고 있다.

ㅡ이 과정에서 사회는 당연히 저항을 하게 될 텐데, 이를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바다는 사회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ㅡ이때 바다, 즉 사회는 차라투스트라 일행을 제물로 삼아서 자신들의 올바름을 바로 세우려고 하게 된다.

ㅡ이를 그대들에게 기대 똑바로 서려고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바다보다 더 격렬하게 위대한 동경이 몰아친다는 건 뭘 말하나?

ㅡ이는 현 사회가 자신들의 규율을 지키려고 하는 것보다 더 거세게 이상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ㅡ즉 사회에서 비판하더라도, 꿋꿋하게 이상을 추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왜 사람들의 심장 속에 많은 부인과 부정이 있다고 하는가? 왜 그대들의 눈길 속에는 운명이 적다고 하나?

ㅡ여기서 말하는 부인과 부정은 자기 본성에 대한 부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여기서 말하는 운명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운명으로 보이며, 사람들 눈에 이상을 쫓으려는 마음이 적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런 점에서 운명을 마다하고 가차 없는 자이기를 마다한다는 것은 이상을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

 

단단함이 번쩍이려 하지도 않고, 가르지도 절단하지도 않으려고 한다는 건 뭘 말하나?

ㅡ여기서 말하는 단단함은 이상을 향한 단단한 의지로 보인다.

ㅡ즉 이상을 향한 의지를 보이려고 하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ㅡ가르지도 절단하지도 않으려고 한다는 건 부조리한 사회적 규율을 두고서 분석하고 파괴하려 들지 않음을 말한다.

 

수천 년 세월 위에 그대들의 손을 눌러 찍는 것을 그대들, 창조자들의 지복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은 뭘 말하나?

ㅡ가치를 점검하고 올바른 가치를 구해내는 과정이 이어지면, 선대의 오류를 후대가 바로잡고, 그러한 연속 속에서 발전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ㅡ그러면 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가치 창조자들은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즉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바지를 한 것이란 이야기고, 이를 행복으로 여기란 이야기다.

 

ㅡ수천 년 의지에 새겨 넣는 것을 지복으로 생각하라는 것도 같은 의미다.

 

왜 나의 의지는 고난의 전환인가?

ㅡ나의 의지는 이상 사회를 향한 의지라고 볼 수 있다.

ㅡ이러한 의지는 부조리를 겪으면서 나타난 것이고, 그에 따른 불편과 고난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ㅡ즉 고난을 통해서 이상을 향한 의지가 생겨난 것이므로, 고난이 이상을 향한 의지로 전환되었다고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위대한 운명 하나를 위해서 자신을 지키고 아껴달라고 하는가?

ㅡ여기서 언급되는 위대한 운명은 이상을 구현하려는 운명으로 보인다.

ㅡ문제는 이 과정이 순탄치 않고, 변절할 수도 있기에, 지키고 아껴달라는 것으로 보인다.

 

승리를 하면서도 가차 없음을 유지하라는 말은 왜 궁극의 것을 위한 마지막 위대함인가?

ㅡ이는 승리를 하고서도 승리에 도취되지 말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위대한 정오 속에서 준비를 마치고 성숙해 있기를 이란 표현은 왜 나타나는가?

ㅡ이는 「차라투스트라, 2권 22장」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위대한 정오 속에 있지만, 성숙하지 못했던 점에 따라 언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는 그 무언가가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의 열매들은 익었지만,

          그대 자신은 열매들에 어울릴 만큼 성숙하지 못했구나!

          그러니 그대는 다시 고독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 무르익어야 하기 때문이다."

ㅡ여기서는 위대한 정오 대신 열매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ㅡ왜냐면 위대한 정오는 올바른 이해를 갖춘 상태를 말하고, 열매 역시 알맞게 익은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은밀히 감춰져 있는 내 의지는 뭘 말하나? 자신의 화살을 갈망하는 하나의 활과 자신의 별을 갈망하는 하나의 화살은 뭘 말하나?

ㅡ여기서 언급되는 별을 갈망하는 하나의 화살은 이상적 존재/이상 사회를 추구하는 존재를 말한다.

ㅡ즉 저 이상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다.

 

ㅡ그리고 자신의 화살을 갈망하는 활은 이상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는 모습을 바라는 자신을 말한다.

ㅡ이 두 생각이 겹쳤을 때, 이상을 추구하려는 존재로서 의지가 단단히 잡히게 된다.

ㅡ왜냐면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향하는 존재의 모습을 자신에게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ㅡ이상을 향하는 이중의 의지는 개인이 흔들림 없이 이상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오 속에서 준비를 마치고 성숙해 있는 별은 뭘 말하나?

ㅡ앞서 말한 것처럼 올바른 이해를 갖추고, 성숙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모습을 말한다.

 

파괴하는 태양의 화살을 열망하고, 꿰뚫리면서 행복해하는 별은 뭘 말하나?

ㅡ파괴하는 태양의 화살부터 보면, 태양의 화살에서 태양은 올바른 이해를 갖춘 것을 말하므로, 올바른 이해의 화살이라고 할 수 있다.

ㅡ이러한 화살은 그릇된 이해를 파괴한다.

ㅡ따라서 태양의 화살을 열망한다는 것은 그릇된 이해를 파괴하는 올바른 이해를 열망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ㅡ꿰뚫린다는 것은 관통당하거나 파괴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자기성장을 바라는 것, 즉 그릇된 이해를 알고 부숴지기를 바라는 지적 성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ㅡ그런 점에서 꿰뚫리면서 행복해하는 별은 그릇됨에 따라 부서지고 성장하길 바라는 존재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태양은 뭘 말하나?

ㅡ태양은 빛을 발산하는 존재고, 빛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므로, 올바른 이해를 말한다.

ㅡ따라서 태양은 올바른 이해를 발산하는 존재를 말한다.

 

ㅡ이에 따라서 그릇된 이해들이 파괴되는데, 이때 차라투스트라는 가차없이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