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3권 의역

차라투스트라 - 3권 7장 의역 (완) (지나치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TO 2024. 7. 5. 20:04

ㅡ소개
이하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읽히게끔 의역한 내용입니다.
기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쓴 거라서, 기존 직역본을 읽으면서 참고해서 보시면, 이해하는 데 좋다고 생각됩니다.
 
의역 내용 밑에는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서 적어두었습니다.
이것들은 직역본을 본 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요시 참고 바랍니다.
 
ㅡ의역시 참고한 것들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등재된 독일어본과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영어본에 대한 정보만 있네요.
해석에 대한 초벌 번역은 ai를 활용했습니다.
 
- 독어본 :
Pileface 사이트의 자료

https://www.pileface.com/sollers/pdf/Zarathustra.pdf
Internet Archive 사이트의 자료
https://archive.org/details/alsosprachzarat00nietgoog/page/60/mode/2up?view=theater

 
- 영어본 :
Thomas Common의 번역

https://www.gutenberg.org/files/1998/1998-h/1998-h.htm#link2H_4_0012

 
-  AI

Chat gpt 4

 
- 한국어 번역본도 참고 했습니다.

백승영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진우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윤순식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현(박성현)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김신종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 제 의역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웠지만, 한국 해설본도 참고 하였습니다.

백승영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김동국 : 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취미로 철학하는 남자

 


3권 7장 지나치기


         
7장 개괄

 

 

7장은 차라투스트라를 따라 사회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해서 비평하는 장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도시에 오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자가 나타나는데, 이 존재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도시가 부조리에 가득 차 있으므로, 차라투스트라에게 도시로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도시에 대해서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인용하면서 비판하는데, 정작 이 도시를 비판하는 당사자는 도시를 떠날 생각이 없다.

 

이는 곧 도시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채우려는 심산임을 알아차린 차라투스트라는 이 사람의 맹목적인 비판에 대해서 지적한다.

또한 이 사람은 사회를 맹목적인 비판을 할 때 차라투스트라를 인용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차라투스트라 역시 맹목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존재처럼 인식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같이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니체는 자신에 따라서 사회적 비판을 하는 것은 자신과 전혀 다르다는 점,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7장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문

 

 

차라투스트라는 많은 사람들과 도시를 천천히 둘러보려고, 자신의 산과 동굴을 우회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차라투스트라는 우연히 큰 도시의 성문에 도달했다.

그러자 입에 거품을 문 어떤 광인이 나타나서 차라투스트라의 앞을 막았다.

이 광인은 <차라투스트라 흉내쟁이> 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는데,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은 물론 그의 어투도 흉내내는 사람이었다.

 

광인은 차라투스트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여기는 대도시로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가 그득한 곳이다.

     그러므로 네가 이곳을 지나치면, 너가 찾는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되려 너는 여기서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너는 이 곳을 지나가려고 하는가?

     굳이 불만스러운 곳으로 나아갈 이유가 없다.

     너 자신을 불쌍히 여겨 이 성문에 침을 뱉고 돌아가라.

 

     이곳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지옥과 같다.

     여기서 올바른 생각들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할 뿐만이 아니라, 평가절하 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너가 가지고 있던 이상 사회를 향한 희망과 그에 대한 고양감도 사라지게 된다.

     왜냐면 이 도시에서는 오직 부조리를 견디게 해주는 감정들만이 대우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의 정신이 그릇된 이해로 점철되어진 것을 모르겠는가?

     그렇게 그릇된 이해들이 규율로서 미덕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을 모르겠는가?

 

     이곳의 사람들의 영혼이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에 따라 굉장히 피폐해진 것을 보지 못하나?

     이들은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에 근거하여 글을 쓰고, 그것을 신문에 싣는다.

 

     그러한 글들은 그야말로 사변적이며 궤변과 말장난에 불과하다.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에 따라서 괴상한 글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도시에서 말하는 신문이다.

 

     이들은 서로 다투고 있지만, 이 대화가 무얼 위해서 시작되었고, 자신들의 대화가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저 흥분하며 서로 다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요란하게 다투며, 돈을 매만질 뿐이다.

 

     저들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따라 행동하는데,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는 것에서 따뜻함을 찾고,

     그러다 이성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면 온전한 인식을 하지 못하는 자들,

     대중적 의견을 제시하는 자들의 의견을 찾는다.

 

     고양감은 감정적 고양이 아니라 이상 사회를 그리면서 찾아야 하고,

     이성적인 분석은 사회적 규율과 대중에 따르지 않는 자들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데도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를 막는 광인

바보는 도시에 대하여 경멸하며, 차라투스트라가 도시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모든 욕망과 악덕이 이 도시에서 허용되고 있다.

 

     물론 이 도시에도 나름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교리를 연구하면서 도시의 부조리와 그릇됨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올바른 이해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이 도시는 부조리와 그릇됨을 견디고 긍정하는 것에 대한 경건함을 강조하며,

     이러한 것들을 두고 사람들은 아첨하며 독실하게 따른다.

 

     그렇게 부조리와 그릇됨을 잘 견디고 따르면, 도시는 그를 위대한 자로 인정하고,

     도시에서 아끼는 존재가 되는데,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어쨌든 사람들은 도시에서 인정받기를 바란다.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고, 그리고 이것을 미화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를 사람들은 추종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사회적 규율과 질서를 섬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고 한다.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가 허용되는 것은 세속적인 잇속들 때문이다.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가 경제적 이득을 주는 건 아니지만, 세속적인 잇속을 챙기려는 자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활용하는 것이다.

     선동하면서, 자극하면서 사람들을 다루고, 거기서 이득을 창출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여,

     너는 빛나고 좋은 것들을 지녔으니, 실리를 추구하는 이 부조리한 도시에 침을 뱉고 돌아가라.

 

     여기서는 모든 생각이 부조리와 그릇된 이해에 빠져 썩어 있다.

     이것이 사람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이 구역질 나는 도시에 침을 뱉어라.

     억압된 정신, 좁은 포용력, 비판적인 시선, 더러운 합리화가 가득한 도시에 침을 뱉어라.

     간섭하고, 뻔뻔한 모습으로 글을 쓰고 소리 지르는 격앙된 자들이 있는 이 도시에 침을 뱉어라.

     부조리하고 추잡한 것들, 향락적이고 음흉한 것들, 강단 있지 못하고 선동적인 것들이 가득한 이 도시에 침을 뱉고 돌아가라.”

 

열변을 토하는 광인

바보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여기까지 듣더니, 이 광인의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가 외쳤다.

    “이제 그만 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말과 태도는 저를 역겹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도시가 썩어빠졌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째서 당신은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왜 스스로 이 도시의 일원으로서 살고 있냐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사람들을 벗어나지 않습니까?

     아니 벗어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람들을 계몽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 사이에 머무를 수 있겠죠.

     그런데 왜 이 곳은 어떤 노력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당신이 이 도시를 경멸하는 것을 경멸합니다.

     당신은 이 도시를 경멸한다면서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경멸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지금처럼 이 도시를 대해선 안 됩니다.

     저는 이 도시의 사람들을 사랑하기에, 도시를 비판하면서도, 도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그러지 않지 않습니까?

     그저 경멸하기 위해서만 경멸을 하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당신을 저의 가르침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자라고 하지만,

     당신은 저와 다르게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맹목적인 사회 경멸로 인해서, 사회를 비판하고 저항하라고 하는 제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그릇되게 이해되고 있습니다.

 

     왜 당신은 이렇게 맹목적으로 사회를 경멸하고만 있는 걸까요?

     아무도 당신에게 귀 기울이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고, 이 도시를 관찰하면서 비판점을 찾고, 그에 따라 마음껏 경멸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은 이 도시에 대해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저를 인용하며 도시를 비판하고 있죠.

     그로 인해 저 역시도 복수를 위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존재로 여겨지게 되는 겁니다.

     제 말이 백 번 옳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제 말을 부당한 일에 쓰는 것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큰 도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더니 오랫동안 침묵했다.

마침내 다시 말했다.

 

    “저는 지금 당신과 더불어 이 도시에 대해서 역겨움을 느낍니다.

     이 도시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도시에 화가 닥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이 도시의 부조리가 극에 달해서 문제가 터져 사람들이 괴로워하길 바랐습니다.

     부조리가 터져 괴로워해야 이상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까요.

     하지만 부조리가 극에 달아 터지는 것도 제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운명처럼 나타날 테죠.

 

     당신에게도 작별의 말로 하나의 가르침을 주겠습니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은 그냥 지나치시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고 광인과 이 도시를 지나쳤다.

 

 

불타는 도시

차라투스트라는 부조리로 인한 혼란이 도시를 휩쓸길 바란다.

그래야 사람들이 부조리를 벗어나서 올바름을 추구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볼 거리들

 

위대한 감정은 무엇인가? 또 메마른 감정은 뭘 말하나?

ㅡ위대한 감정은 이상사회를 바라면서 갖는 감정을 말한다.

ㅡ메마른 감정의 경우, 부조리를 견디게 하는 감정, 부조리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부조리 속의 행복 말이다.

 

정신의 도살장과 요릿집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사회적 규율이나 관습 등을 통해서 사람들의 정신이 도살당하거나 억압당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ㅡ즉 사회에 알맞게 정신이 훼손되고 요리된다는 이야기다.

 

도륙된 정신이 내뿜는 증기는 무엇인가?

ㅡ사회화 된 정신은 올바름에 대한 배척이 있게 되는데, 이를 증기라고 보는 듯하다.

 

영혼들이 누더기처럼 걸렸다는 건 뭘 말하나?

ㅡ피폐해진 정신을 의미한다.

 

양철판을 두들기고 자기들의 금화를 쩔렁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양철판을 두들기는 건 소란을 일으키거나 사람들의 주목을 일으킨다는 것으로 보인다.

ㅡ선동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듯하다.

 

ㅡ금화를 쩔렁거린다는 것은 금화를 매만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이는 곧 돈을 염두하고서 그런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ㅡ즉 사회는 돈을 위해서 뭔가 이슈를 만들고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왜 저들은 추워하면서 화주에서 온기를 얻나? 왜 얼어붙은 정신에서 냉기를 얻나? 왜 여론에 중독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나?

ㅡ우선 여론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여론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ㅡ그런데 여론에 중독된 대상은 신문사다.

ㅡ그런 면에서 신문사는 사람들이 무언가 고독하거나 냉혹해 진다면, 따스함을 제공해줄 것을 사람들에게 기사로 써서 보여주고, 사람들이 또 너무 따듯해 진다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분석을 제시하는 글을 쓴다는 걸로 보인다.

ㅡ즉 언론이 대중들의 입맛에 맞춰서 뭔가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올바른 인식이나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게 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ㅡ즉 여론을 중시하는 세상에서의 신문사들의 양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솜씨 좋은 고용된 덕은 무얼 말하나?

ㅡ이것은 「차라투스트라, 1권 11장」을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국가, 이 새로운 우상은 영웅들과 영예로운 자들을 자기 주변에 들러리로 세우고 싶어 한다!

     기꺼이 양심이라는 햇볕을 쬐고자 하는 것이다.

     이 냉혹한 괴물이!

 

     그대들이 국가를 숭배하면, 국가는 그대들에게 무엇이든 주려 한다.

     이 새로운 우상은!

     그렇게 국가는 그대들의 덕의 광채와 그대들의 긍지어린 눈길을 매수하는 것이다.

 

     그대들을 미끼로 국가는 많은 너무나도 많은 자들을 꾀어내려한다!

     그렇다.

     그러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요지경, 신적인 영예로 장식되어 쩔렁거리는 죽음의 말이 고안되었다.

ㅡ여기서 영웅이나 영예로운 자들이 국가를 미화시키는데 활용된다.

ㅡ솜씨 좋은 고용된 덕도 뭔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어떤 뛰어난 기술을 갖춘 존재로 볼 수 있다.

ㅡ따라서 솜씨 좋은 고용된 덕은 영웅이나 영예로운 자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솜씨 좋은 덕은 글 쓰는 손가락을 가졌다고 하는데, 뭘 말하나?

ㅡ솜씨 좋은 덕이 영예로운 자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도시/사회를 위해서 글을 잘 쓰는 자라고 할 수 있다.

ㅡ이는 곧 도시/사회를 미화하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솜씨 좋은 덕은 앉아 기다리느라 굳은 살도 박여 있다는 건 뭘 말하나? 왜 가슴에 작은 별을 장식하고 있나? 그리고 엉덩이가 빈약한 박제된 딸들을 낳는 축복을 받나?

ㅡ솜씨 좋은 덕은 영예로운 자를 말한다.1

ㅡ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라는 이야긴데, 이러한 자가 앉아서 기다리느라 굳은 살이 박였다는 것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 책상에 오래 앉는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ㅡ그리고 이는 공부를 하느라 책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곧 현실성이 부족한 탐구, 교리만 중시하는 탐구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ㅡ이들이 가슴에 작은 별을 갖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ㅡ엉덩이가 빈약한 박제된 딸들을 보자.

ㅡ엉덩이가 빈약하다는 것은 아이를 낳기 좋지 못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ㅡ이에 따르면, 영예로운 자는 아이를 낳기 좋지 못한 딸들을 낳는다.

 

ㅡ그런데 영예로운 자들이 사회를 미화하고 긍정하는 말을 하는 자들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낳는 딸은 사회를 미화하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ㅡ그러면 사회를 미화하는 생각은 뭔가를 낳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ㅡ사회를 미화하는 생각의 특징을 보면, 그릇된 사회를 긍정하므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게 한다.

ㅡ이는 곧 사회를 미화하는 생각은 올바른 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ㅡ이를 엉덩이가 빈약한 박제된 딸로 표현한 것 같다.

 

ㅡ또한 딸들이 박제되었다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 존재, 죽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ㅡ즉 이 영예로운 자들이 남기는 앎/평가는 잘못된 평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ㅡ결국 영예로운 자들이 내놓는 결과물은 모두 올바른 통찰을 제공하지 못하단 이야기다.

 

만군을 주재하는 신은 무엇인가?

ㅡ만군은 군대를 의미하는데, 군대의 경우, 자의식에 따라 움직인다기 보다는 어떤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 1권 10장」에서의 병사들이 이에 해당된다.

     많은 병사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많은 전사가 보고 싶다!

     사람들은 병사들이 걸친 옷을 "유니폼"이라고 부르지.

     저들이 그 유니폼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 유니폼하지는 않기를!

ㅡ그러므로 어떤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을 관리하는 신이란 건데, 이는 곧 그 규율 자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ㅡ그러므로 만군을 주재하는 신은 사회적 규율/부조리/그릇된 이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만군을 주재하는 신 앞에서의 경건이 많다는 건 뭘 말하나? 독실하게 알랑대는 아첨은 뭘 말하나?

ㅡ여기서 신은 사회적 규율/부조리/그릇된 이해를 나타내고, 이것 앞에서의 경건이므로, 사회적 규율에 잘 따르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그리고 독실하게 알랑대는 아첨이란, 사회적 규율/부조리를 독실하게 따르고 미화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ㅡ즉 사회 내에서는 사회적 규율/부조리를 잘 지키려고 하고 미화한다는 이야기다.

 

위로부터 별과 자비로운 침이 떨어진다는데, 위는 무엇인가? 자비로운 침은 뭘 말하나?

ㅡ여기서 ‘위’는 사회/도시로 보인다.

ㅡ그래서 사회로부터 별이 주어진다는 것인데, 사회로부터 별이 가슴에 주어진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으므로, 별이 주어진 것은 곧 사회적으로 칭송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인다.

 

ㅡ또한 위로부터 자비로운 침이 떨어지는데, 이 침은 더러운 것이지만 자비로운 것이기도 하다.

ㅡ’위’가 사회/도시라고 한다면, 사회로부터 자비가 주어진다는 것이고, 그것이 더럽다는 것이다.

ㅡ별을 받은 자는 사회적으로 사랑받는 이, 인정받는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자들에게 자비가 주어진다면, 사람들이 이러한 자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그런데 그릇된 이해를 가진 사람들의 사랑과 아낌은 과연 좋은 것인지 본다면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ㅡ그러므로 침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ㅡ여기에 더해서 하나 더 해석을 해본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은 사회가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서 활용하는 도구로 삼게 된다.

ㅡ즉 그를 이용하여 자신을 돋보이고 대단하게 하려는 것이다.

ㅡ이런 면에서 사회가 그를 삼켜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속셈을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달은 무엇을 말하나?

ㅡ달은 태양처럼 빛을 내지만, 태양과는 다른 것이다.

ㅡ태양은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달이 이와 다른 것이라면, 그릇된 이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ㅡ이에 따라서 본다면, 그릇된 이해를 제공하는 것, 사회적 규율을 달로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ㅡ달이 이런 것이라면, 달의 궁전은 사회 자체가 될 수도 있고, 궁전에 있는 망나니들은 사회적 규율에 충성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ㅡ그리고 거지-대중과 솜씨 좋은 거지의 덕 일체가 달의 궁전을 향해 기도를 한다는 점에서, 즉 사회적 규율에 따르는 자들, 정신이 빈곤한 자들이 달의 궁전을 향해 기도한다는 점에서 달은 사회적 규율을 의미하는 게 맞아 보인다.

 

왜 솜씨 좋은 덕은 군주를 향해서 섬긴다고 기도하며, 자신이 대가로 받은 별을 빈약한 가슴에 달라붙게 하려고 하나?

ㅡ솜씨 좋은 덕은 사회적 영웅이나 위인이라고 할 수 있다.

ㅡ이런 자들이 섬기는 것은 사회적 규율이라고 할 수 있다.

ㅡ사회적 영웅이나 위인은 사회적 규율에 따른 모범을 보이면서 위인이나 영웅으로 인정받는데, 그것을 별을 받는다고 표현한다.

ㅡ그리고 사회적 규율을 더 잘 따르게 하면서, 사회적 위인이나 영웅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하게 되는데, 이를 가슴에 달라붙게 하려고 한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달은 왜 지상적인 것 주위를 돌고, 소상인의 황금을 돈다고 말하나?

ㅡ달이 사회적 규율이라고 한다면, 이 사회적 규율이 물질적인 것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가능하다.

ㅡ사회적 규율이 세속적인 이득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타당하므로, 이러한 해석은 적절해 보인다.

 

만군을 주재하는 신은 왜 금괴의 신이 아닌가? 왜 만군을 주재하는 신은 소상인이 하나?

ㅡ만군을 주재하는 신은 사회적 규율/부조리/그릇된 이해를 말한다.

ㅡ사회적 규율/부조리/그릇된 이해는 본디 경제성이나 이득을 위해서 고안된 것은 아니다.

ㅡ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고 하게 되고, 이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왜 도시에서 피라는 피는 모두 썩어 미적지근하게 혈관 속을 흐르나?

ㅡ여기서 말하는 피가 「차라투스트라, 1권 8장」에서처럼 생각을 말한다면, 생각이 썩은 상태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ㅡ즉 그릇된 이해/부조리에 절어 있는 정신 상태를 말한 것이다.

 

억눌린 영혼, 옹색한 가슴, 매서운 눈, 끈적끈적한 손가락은 뭘 말하나?

ㅡ억눌린 영혼은 사회적 규율에 의해서 억눌린 정신을 말한다.

ㅡ옹색한 가슴은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한 채로 편협하게 사람을 접근하고 배척하는 감정적인 모습을 말한다.

ㅡ매서운 눈은 사회적 규율 외에는 매섭게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ㅡ끈적끈적한 손가락은 더러운 손가락 상태를 말하며, 이 손가락은 글을 쓰는데 이용된다면, 더러운 생각을 써내거나 합리화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솜씨 좋은 덕글 쓰는 손가락을 갖고 있고, 앉아 기다리느라 굳은 살도 박여 있습니다.

 

왜 바보에게는 늪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하나?

ㅡ차라투스트라가 보기에 부조리한 사회에서 계속 비난하면서 지내고 있는 모습은 올바른 모습이 아닌 병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ㅡ왜냐면 정말 이상을 추구하는 자라면, 사회를 바꾸려고 하거나 떠나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ㅡ그런데 이 사회를 떠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사회의 일원이란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왜 차라투스트라는 바다가 초록빛 섬으로 가득하지 않냐고 하나?

ㅡ현재 이야기를 하는 바보는 현재의 도시를 비판하면서 도시에 자리하고 있다.

ㅡ그런데 차라투스트라가 나타나자 경고를 하면서 돌아가라고 한다.

ㅡ이에 대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왜 너는 떠나지 않냐고 묻는다.

ㅡ또한 떠나지 않는 이유가 이 도시를 계몽하기 위해서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바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다.

ㅡ이에 따라서 도시를 계몽하지도 않으면서 비판만 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낀다.

 

ㅡ여기서 바다는 도시를 말한다; 「차라투스트라, 3권 3장」에서 바다는 소금물로 가득한 곳, 인간이 마시면 안 되는 물로 여겨지며, 부조리한 세상을 나타냈다.

ㅡ초록빛 섬은 부조리가 극복된 상태를 나타낸다.

ㅡ따라서 바다에 초록빛 섬이 없다는 건 부조리가 극복된 게 없다는 것, 즉 사회의 부조리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이 바보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차라투스트라의 경고는 왜 사랑으로부터만 날아오르나? 왜 늪에서는 날아오르지 않나?

ㅡ차라투스트라는 사회를 비판할 때, 개선시키는 것도 염두하면서 비판한다.

ㅡ그래서 단순히 맹목적으로 비난만 하지 않는다.

ㅡ이를 사회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ㅡ반면 바보의 경우, 맹목적으로 비판만 하고 있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를 어떤 감정적인 것에 의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ㅡ그리고 그 원인을 이 바보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본다.

ㅡ그래서 이 바보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사회에 머물면서 마음껏 비판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ㅡ이는 전에 「차라투스트라, 1권 8장」에서 차라투스트라가 묘사하는 인물의 모습과 비슷하다.

     저들은 '정신 또한 쾌락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저들의 정신의 날개는 부러지고 말았지.

     이제 저들의 정신은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이것 저것 갉아먹으면서 더러워지고 있다.

ㅡ지금 바보의 경우도, 사람들 사이에서 비판하는 것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왜 바보의 말이 맞더라도 차라투스트라에게 해를 끼치나?

ㅡ애초에 차라투스트라는 사회를 개선하기 위하여 비판을 하지만, 바보는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서 비판을 하기 때문이다.

ㅡ의도가 완전히 다른데, 사람들은 이 바보를 차라투스트라의 원숭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바보의 행동은 차라투스트라의 평판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도시에 불기둥을 보길 원하는데 이는 정확히 무엇인가?

ㅡ여기서 말하는 불기둥은 부조리에 의해서 혼란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ㅡ차라투스트라는 이것이 나타나야 사람들은 부조리를 거부하고 올바른 이해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