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정의
예술은 "내가 느끼고 체험했던 것을 다른 사람도 체험하게 하고 싶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서 "내가 느끼고 체험한 것(이를 영감이라 한다)을 체험하게끔 구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ㅡ단순 정의
예술은
1) 자신의 영감을 사람들이 체험하게끔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정의의 근거 : 예술은 왜 위와 같이 정의되어야 하는가?
예술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는 생소한 것이므로, 납득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정의가 나타나는 근거에 대해서 먼저 다루도록 하겠다.
우선 위 정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표현 방식에 대한 이해가 마련되어야 한다.
인간은 어떤 표현 방식을 가질까?
ㅡ표현에 대한 기초
표현의 네 범주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이 욕구에 따라 행동하면서 크게 두 가지의 표현 방법을 갖는다고 분류하는데, 그것은 바로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간단히 특징에 대해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언어적 표현 | 말이나 문자를 통해 표현하는 방법 |
비언어적 표현 | 말이나 문자를 통하지 않고 표현하는 방법 이미지나 소리, 행동 등을 통해 표현함 |
이러한 분류는 인간의 표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분류다.
여기에 더해서 인간의 표현이 갖는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목적성이다.
인간은 크게 두 목적 하에 표현을 하는데, 그 특징을 간단히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정보 전달 목적 | 정보를 빠르게/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 목적 |
체험 목적 | 자신이 체험한 바를 체험시키려는 목적 |
위 두 분류는 생소할 것이므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ㅡ표현의 목적 : 정보 전달 목적 표현에 대하여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 표현 방법이다
정보 전달을 목적하며 나타나는 표현은 대체로 실시간의 소통을 목적한다.
따라서 주로 대화하는 상황에서 주로 나타나는 표현의 특징이다.
이 목적에 따른 표현들은 정보를 빠르게/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장황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핵심적 정보만을 간추려 전달하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지난 달 A지역의 부동산 시세가 30% 하락했다"
위 주제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사항은 " A지역의 부동산이 상승했는지 하락했는지, 하락했다면 몇%가 하락했는지"이기 때문에 해당 정보만 표현에서 드러난다.
구체적인 부분은 해당 표현 외에서 더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이를 일상적인 화법으로 바꾼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지난달 A지역 부동산 시세가 30% 떨어졌다고 하더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대화가 정보 전달을 목적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대화함에 있어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아래 상황을 보자.
갑 "어제 강원도 갔었다며?"
을 "강원도 가서 회 먹고 왔어."
갑 "요즘 회 먹기 괜찮나? 난 좀 걱정되던데"
을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먹겠어. 나중 되면 더 못 먹지."
갑 "그 카페는 가봤어?"
위 대화를 보면, 갑은 어제의 을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고, 그에 따라 을은 갑에게 자신의 정보를 제공한다.
이처럼 정보를 교환하는 대화가 주를 이루고, 또 더 많은 것을 대화로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질문을 잘 나누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강원도 가서 무얼 느꼈어? 풍경은 어땠고, 기분은 어땠어? 사람들은 어떠했고?"
그 이유는 이러한 개인적 체험은 굳이 알고 싶은 내용이 아니고, 또한 이러한 정보를 요청하고 나누는 것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상에게 핵심적인 사항에 대해서만 묻고, 그에 답하는 식의 대화를 주로 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그 상대가 체험한 것에 대해 같이 체험하기 힘들다.
앞선 예의 을이 강원도에서 체험한 것을 갑이 전혀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ㅡ 표현의 목적 : 체험 목적 표현에 대하여
내가 경험한 것을 타인이 체험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닌 표현이다
반면 체험 목적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상대가 나와 같은 체험을 하게끔 유도한다.
따라서 앞서 다뤄지지 않았던 것들, 자신이 체험한 것들이나 느낀 것들에 대한 구체적 서술이 이뤄진다; 정보 전달 목적 표현인 경우,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만 다뤄졌었다.
예시
체험 목적 표현 방식에 해당되는 다음의 구절을 보도록 하자.
10월 중순으로, 수확물은 잘 보관되어 있다. 날씨는 9월 첫 주처럼 덥지만, 바람 앞에 큰 구름이 몰려오며 때때로 태양을 가린다. 태양이 가려지면 겨울의 약속이 공기 속에 느껴진다. 그러나 이 날씨는 마법 같으며, 한 해의 끝을 달래주는 선물과 같다. 아직도 즙이 가득한 블랙베리가 있지만, 이제는 먹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악마가 거기에 침을 뱉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들이 마음껏 먹고, 땅과 블랙베리 나뭇잎은 보라색 배설물로 뒤덮여 있다. 물의 반은 그늘졌고 반은 반짝이며, 산과 고사리의 색깔을 반사하여 마치 금과 구리 동전처럼 바위 위에 뿌린다.
Barbara Willard's 「The Sprig of Broom」
위 글을 보면, 작품 속 인물이 무엇을 보고 있고,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를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이 바라보고 있는 풍경에 대해서, 느낌에 대해서 구현해 볼 수 있다.
일반 대화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표현은 일반적으로 대화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이러한 표현으로 대화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은 요점을 묻거나, 말을 너무 장황하게 한다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즉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고 평가될 것이다.
따라서 친밀한 관계이거나 서로 이런 대화를 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자주 이뤄지는 대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ㅡ표현에 대한 정리
표현의 네 범주와 실제
이제 표현에 대하여 정리해 보도록 하자.
표현 방법에 따라, 크게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으로 나뉘고, 표현의 목적에 따라, 정보 전달 표현과 체험 목적 표현으로 나뉜다.
이 두 척도를 바탕으로 표를 만들어, 실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구성해 볼 수 있다.
정보 전달 목적 소통의 효율을 중시 |
체험 목적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을 중시 |
|
언어적 표현 말과 언어로 표현 |
일상적 대화 / 신문 / 학술 자료 등 | 소설 / 시 / 수필 등 |
비언어적 표현 말과 언어가 아닌 시각적/청각적 표현 |
수신호 / 제스쳐 / 기호 등 | 그림 / 연주 / 조각 / 행위(춤) 등 |
이에 따라 보면,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간에 체험 목적에 따른 인간의 표현들이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일반적 정의 살피기 : 왜 예술은 저렇게 규정되어야만 하는가?
위와 같은 예술 정의는 아마 일반적인 정의와 크게 다를 것이기에, 반감이 클 수 있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두 입장들과 이 입장들이 왜 정의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두 입장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 자신의 자기표현이다
각각의 입장은 왜 예술의 정의로서 부적절할까?
ㅡ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인가
아름답지 않은 것도 표현하는 예술
예술에 대해서 논할 때,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간단하게 부정이 가능하다.
먼저, 사드 후작의 소설 「소돔의 120일」의 경우, 작가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체험시키려고 했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인간의 타락'이나 '인간 본성의 추함'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제시한다.
따라서 아름다움과 관련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이 된다.
다음으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는 아름다움을 체험시키지 않고, '잔혹성'이나 '거북함'을체험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움과 관련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이 된다.
누군가에겐 아름답지 않아도, 또 다른 이에겐 아름다울 수 있지 않나
이렇게 표현하면, 누군가는 "모든 사람에게 아름답지 않더라도,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고, 그래서 예술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사드 후작은 「소돔의 120일」에서 언급되는 내용이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에게 체험시키려 한 것일까?
프란시스코 고야는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의 이미지가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에게 체험시키려고 한 것일까?
이 외의 다른 여러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표현한 예술가들은 모두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다고 여겨서 그랬을까?
예술가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기도 하고, 외로움을 표현하기도 하며, 추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초기 목적 자체가 "추악함에 대한 체험"이라면, 그 작품은 아름다움과 무관하다.
이러한 점에 따라 예술을 아름다움의 표현이라고 보는 관점은 수용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아름다움과 관련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피도록 하겠다.
ㅡ 예술은 예술가 자신의 자기표현인가?
자기 표현을 하지 않는 예술들도 있다
혹자는 "예술가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작품을 만들고, 그것이 예술이 된다"라고 한다.
이에 따라 자기 자신의 표현을 예술로 취급하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관점은 최근 추세에 따른 관점이라 보면 쉬울 듯하다.
사진기의 등장과 더불어 여러 예술과 관련된 운동을 통해서, 예술가들의 표현 대상이 점차 변화된다.
이에 따라서 개인의 감정이나 자신을 억눌러오던 어떤 것에 대한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반박하는 건 간단하다.
우선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 자기표현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분명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풍경화나 선사시대 동굴 벽화, 초상화, 왕의 행차도와 같은 것들은 자기표현적 성격이 적다.
민화의 경우도 보면, 자기를 표현한다기보다 당시 시대를 표현한다.
음악의 경우도 보면,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위해서 작곡했고, 체르니는 학생들을 위해서 연습곡을 작곡하게 된다; 체르니의 경우는 학생들에게 예술적 표현의 방법을 체험하게 한다.
이런 점들로 보면, 예술가의 일부는 자기표현을 주제로 삼고 작품 활동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예술 전체가 자기 표현을 위해서 나타난다고 보기 어렵다.
예술의 의미의 변천에 대하여 - 예술과 아름다움, 참신함은 무슨 관계인가?
예술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예술에 대해서 우리가 갖는 인식들을 하나로 취합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술은 아름다움과 관련짓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주 아름다운 것을 보고 "예술적이다/작품이다" 등의 표현을 쓰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술이 아름다움과 관련되고, 이에 따라 이러한 표현을 쓴다고 이해하게 된다.
예술이 아름다움과 관련된다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
또 사람들은 창조적인 것/참신한 것/새롭고 과감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왜 이런 이해가 생기게 된 것일까?
ㅡ 예술과 아름다움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체험을 타인에게 체험시키려 나타난 예술
예술이 갖는 의미의 변천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예술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에 대하여 체험하게 하려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흉내 내거나 그에 비슷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림의 경우, 최대한 닮게 그리려 하고, 조각의 경우도 최대한 닮게 조각하려 하며, 음악의 경우, 자신이 표현하고픈 분위기를 최대한 구현하게끔 작곡하려 한다.
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느낀 그 에너지나 분위기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한다.
정교함을 향해 나아가는 예술
이처럼 예술은 예술가 자신이 느낀 어떤 것에 대한 구현이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그것을 최대한 닮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노력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대상과 가장 잘 닮게 구현할수록 유능한 예술가로 인정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섬세한 표현을 하고,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예술가의 목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제공하게 되는 예술
그렇게 연마하는 예술가들이 노력 끝에 정말 사실적으로 구현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그 작품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경이로움은 만족에서 비롯된다.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이로운 것을 보고 우리는 아름답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두고 말한다.
그래서 자연이 아름답다.
예쁨과 아름다움의 구분
이에 따라서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다르다.
예쁜 것은 어느 정도 보기 좋다면 예쁘다고 할 수 있다.
소유하고 싶게 한다면 예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예쁜 것이 아름다운 것은 될 수 없다.
예쁜 것에는 경이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에 예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쁘기만 해선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이로움의 정의 - 아름다움의 조건
경이로움을 가지려면, 남달라야 한다.
뛰어나야 하며, 그 뛰어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은 어렵다.
조화로움과 아름다움
아름답기 위해서는 정교해야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이치/조화에 맞아떨어져야 하며, 그제야 우리는 아름다움을 목도하게 된다.
예술가들의 노력의 결과, 아름다움
그런데 예술가들은 섬세한 표현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그 정교함과 그 정교함을 구현하는 뛰어남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우리는 그 작품이 아름답다고 판단하게 된다.
예술은 비단 아름다움만을 목적하는가
이러한 것으로 보면,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핀 것처럼, 모든 예술가들이 예쁜 것을 구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다양한 면을 사람들에게 체험시키려 하고, 그에 따라서 추함을 구현하기도 한다.
다만 사람들에게 호평을 얻으려면 예쁜 것을 해야 하고, 따라서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예술에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긴다.
예술 작품이 제공하는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아름다움 외에도 여러 자극을 받게 되는데, 이는 예술의 입지 변화에 영향을 주는 듯하다.
ㅡ 예술과 참신함/창조적임의 관계에 대해서
예술의 정체성, 사실성과 고양성
예술은 사람들에게 사실적인 묘사를 선보였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을 자극시키고 고양시키는 역할을 했다.
뛰어난 재능과 정교한 작품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고양되었던 것이다.
즉, 예술은 사실적임과 고양시킴이라는 두 특징을 정체성으로 삼는 것이다.
사진기와 예술의 아노미
그런데 사진기가 나타남에 따라 사실적임을 정체성으로 삼기 어려워졌다.
그러니 예술은 나머지 하나의 정체성인 고양시킴에 몰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예술, 사람들을 고양시키는 것/자극하는 것에 주목하다
예술의 이러한 특징, 즉 사람들을 고양시키는 특징은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극받으려면, 우선 몇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참신함이다.
전에 봤던 것과 비슷하면, 우리는 자극받지 않지만, 처음 보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자극받을 것이다.
"저게 뭐지?" 하며 눈길이라도 한번 줄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사람들을 자극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서 복제하거나 따라 하는 것은 예술에 맞지 않게 된다.
사실적임을 사진기에게 빼앗기고, 사람들을 자극해야 하는 예술은 기존과 다른 표현법을 도입함으로써, 참신함을 확보한다.
그러면서 점차 형식의 파괴로 나아간다.
즉 과감해지는 것이다.
이로써 예술은 현재에 이른다.
ㅡ 예술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이처럼 예술의 의미가 모방/아름다움/참신함으로 나아가면서,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를 활용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아름다운 존재를 예술 또는 예술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정말 새롭고 창의적인 뭔가를 보고 예술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아름다움의 기원이 되는 경이로운 것을 보더라도 예술적이라고 하게 되는데, 따라서 어떤 수식이나 법칙의 발견, 상상하기 힘든 신체 능력 등을 보고 우리는 예술적이라고 하게 된다.
ㅡ 정리
예술은 본디 모방이었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과정에서 잘 구현하려는/인정받으려는 목표가 생기고, 그에 따라 점차 정교해지며, 그러면서 사람들은 경이로움을, 즉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예술은 아름다움을 주고 사람들을 고양시키는 것이 되었다.
그러다 사진기의 발생으로 사실적임을 정체성으로 삼기 어려웠던 예술은 고양시키는 쪽으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이로써 참신한 자극을 주는 쪽으로, 기존의 관념이나 형식을 파괴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로써 "사람들이 예술을 아름다움과 참신함을 관련지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수적 사항 : 표현의 목적에 따라 나타나는 특징들
인간의 표현은 목적에 따라 다른 특징을 갖는다.
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ㅡ 정보 전달 목적 표현의 세 가지 특징들
정보 전달 목적 표현은 고유한 특징을 지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핵심 중시
먼저 핵심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효율적 대화를 위해서는 부수적인 것들은 제외하는 것이 소통에 있어서 적합하다.
다음의 예문을 보자.
어제 전에 살던 동네의 단골식당에 가서, 맥주 한잔하고 왔어.
이 문장을 보면, 어제 뭘 했는지에 대한 핵심만을 말하고 있다.
구체적이지 않음
다음으로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핵심성에 따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넫, 부수적인 것들을 제외하다 보니 구체적인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어제 전에 살던 동네의 단골식당에 가서, 맥주 한잔하고 왔어.
예문을 통해서 보면, 영희가 무얼 했는지는 알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알기 어렵다.
관념적임
다음으로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이지 않으니 관념적인 표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어제 전에 살던 동네의 단골식당에 가서, 맥주 한잔하고 왔어.
구체적이지 않으니, 우리에게는 행위에 대한 정보만을 담을 뿐, 실제 어떤 상황이 펼쳐진 것인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
따라서 이 상황은 특정된 상황이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ㅡ 체험 목적 표현의 세 가지 특징들
체험 목적 표현이 갖는 고유한 특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구체적임
먼저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타자가 자신과 같은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최대한 구체적인 표현을 진행하게 된다.
구체적일수록 체험에 대한 정확한 안내가 가능하지만, 그로 인해서 일부는 해당 표현을 통한 체험이 어려울 수도 있다.
종합적임
다음으로 종합적이라는 것이다.
체험 목적 표현은 자신이 보고 느낀 상황이나 감상을 타자도 체험하게 해야 하므로, 자신이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사항 말고도, 감상에 영향을 줄 요소들이 모두 표현된다.
따라서 핵심과 부수적인 것들이 종합되어 표현된다.
사실적임
다음으로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 서술이 이뤄지다 보니 우리는 보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표현으로 접하던 것을 실제로 겪게 되면, 그 표현의 사실성을 보다 더 느낄 수 있다.